기존 키우던 고양이가 있는데 다른 한 마리를 새로 입양할 경우 서로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므로 일정 시간 격리를 시켜야 한다. 새로 입양하는 고양이의 체취를 풍기며 익숙하게 한 뒤 자연스럽게 대면을 시켜야 기존 고양이를 자극하지 않고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리를 처음 데려온 날 보리는 내 방에 격리된 채로 첫날밤을 보냈다. 내가 제리보다도 훨씬 작고 여린 보리가 신기해 상자 문을 열려고 하면 이 녀석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나에게 하악질을 해댔다. 하도 귀여워 쓰다듬어 주려 하면 그 작은 체구에서 크르르 하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마음 한 편 엄마 젖을 먹고 잠든 사이 자기도 모르게 낯선 곳으로 끌려온 녀석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보리는 제리와 다르게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아니 워낙 개냥이 과의 애교 많은 제리를 키우다 보니 지극히 평범한 고양이인 보리가 낯설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른다. 녀석은 엄마 젖이 그리운지 첫날 밤새도록 울어대 나 또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보리는 이틀을 내 방에 격리된 채 배필 될 제리와의 첫 대면을 앞두고 있었다.
드디어 이틀 만에 내 방문에 작은 철망으로 된 칸막이를 설치하고 제리와 보리를 대면시켰다. 제리는 보리를 본 순간 호기심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달려 들려했으나 앞다리가 짧은 관계로 그 철망을 넘어가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보리는 달랐다. 낯설디 낯선 곳에서 동족을 만났다는 반가움에서 인지 그 작은 체구에도 긴 다리를 이용, 철망을 기어올라 기어이 제리 쪽으로 나가려 했다. 일단은 성공한 것이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것을 공유케 하였다.
그 이후로 제리는 ‘보리 바라기’가 되었다. 아니 당시만 해도 제리의 체구가 조금 커서인지 보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려했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그루밍 (고양이가 몸에 묻은 이물질 제거를 위해 혀로 몸을 핥는 행동)을 해주기도 했지만 장난을 치기 위해 보리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기도 했다. 두 녀석의 그런 행동과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한 번 상상해 보시라! 두 녀석의 행동이 딱 그 모습이었다. 다만 만화영화와는 달리 제리가 쫓고 보리가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그때까지도 우리는 보리를 암컷으로 알았기에 제리의 행동을 이성에 눈 뜬 소년의 모습이라 여기고 조만간 2세를 볼 날을 기대하며 흐뭇해하기만 했다.
그날 이후로 딸과 나는 매일 밤 제리, 보리 중 누구를 데리고 잘까를 궁리했는데 그것은 단지 우리의 희망사항, 착각일 뿐이었다. 집사 주제에 감히 누가 누구를 데리고 자겠는가! 제리와 보리는 주인인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함께 잠들고 함께 행동했다. 특히 ‘보리 바라기’가 된 제리가 보리를 혼자 잠들게 놔두지 않았다.
제리와 보리가 함께 있으니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이 전부 외출하게 될 때 마음이 편안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와 비대면 수업이 시행될 때였기에 전 가족이 외출할 날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때때로 빈 집에 제리 혼자 놔두고 나가게 될 때는 왠지 안쓰럽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보리가 온 뒤로는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둘이 고양이 타워에 올라가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실컷 낮잠을 잘 테니까. 역시 사람이나 동물이나 하나보다는 둘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