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고양이 (17편)

50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룬 나의 미술, 음악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

by 김경미

제5화 : 앞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이여


제리와 보리는 먼치킨이라고 하는 동일 품종의 고양이다. 그러나 같은 품종이라 해도 제리는 숏 레그 (Short leg), 보리는 롱 레그 (Long leg)로 외모상 다리 길이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제리의 다리 길이는 보리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을 만큼 짧았다. 때문에 먼치킨 숏 레그 고양이는 외모가 너무도 귀엽고 앙증맞아 애완용으로 키우기에 매우 인기 있는 품종이다.


제리가 보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4~5개월가량 형이었기 때문에 만화영화 속 고양이가 쥐를 대하듯 항시 보리를 쫓아다니며 짓궂게 장난을 걸었으며 보리는 언제나 수세에 몰리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길고 늘씬한 다리를 가진 보리가 점점 뛰는 속도며 점프력 등에서 제리를 월등히 앞서 나갔다. 제리가 다리가 긴 보리의 배 밑을 가로질러 지나가도 될 정도로 두 녀석의 키는 나날이 크게 차이가 나게 되었다.


제리는 자신이 먼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주도권을 가진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보리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도 예전과 달리 한 걸음에 높은 창틀이나 김치 냉장고 위로 성큼 뛰어올라간 보리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항시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기 일쑤였다. 보리를 장난 삼아 툭툭 건드릴라 치면 보리가 긴 다리를 이용, 자신의 머리를 간단히 제압하여 밀치면 부질없는 헛 발질만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거실이나 부엌에서 어쩌다 바퀴벌레라도 마주치면 보리는 야생동물의 사냥 본능을 되살려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처치하곤 했지만 제리는 늘 2%가 부족했다. 바퀴벌레를 열심히 쫓아가서 앞 발로 내려치는 순간 항시 바퀴벌레가 한 걸음 더 앞서 나갔다. ‘보리 바라기’였던 제리의 위상도 그에 따라 점점 작아져만 갔다. 보리의 상대가 되기에는 모든 것에서 보리보다 훨씬 못 미쳤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있어 항시 아픈 손가락이 더 애처롭고 마음이 쓰인다고 하였던가! 제리가 내게 있어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언젠가부터 동생인 보리에게 치이기만 하는 제리가 안쓰럽고 애처롭게만 느껴졌기에 나는 항시 제리에게 형으로서 예우를 다해주고 있다. 먹을 것을 주어도 제리에게 먼저 주고 가급적 무엇이든 우선권을 주려 애쓴다.


높은 곳을 지향하는 고양이들의 본능을 충족시켜 주고자 보리가 선호하는 창틀이나 김치냉장고 옆에 제리도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받침대 의자를 항시 놓아둔다. 짧고 약한 다리로 인해 노후 관절에 무리가 생길 수가 있다 하여 예방을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다. 때로는 제리를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은근히 신경이 쓰였지만 마음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리가 짧은 핸디캡 때문인지 제리는 사람에게 의지하려는 성향이 강한 편이다. 눈치가 어찌나 빠른지 내가 가사 일을 할 때는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다 가도 기타나 피아노를 치려하면 자신과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여유시간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그리고선 온갖 애교는 물론 때로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내게 달라붙어 내가 기꺼이 하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음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제리, 보리는 내가 귀가할 때 계단 발소리만 들려도 한 걸음에 현관 앞으로 뛰어나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함박웃음 짓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가도 문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등 온종일을 나의 옆을 맴돌며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곤 한다.


어느 날인가부터 제리의 잠자리가 내 침대로 고정되었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자다가 문득 눈을 떠보면 어느 순간 조용히 침대 위로 올라와 내 다리에 자신의 짧은 앞다리 한쪽을 얹고서 비스듬히 잠을 청하고 있는 제리를 발견하게 된다. 나를 진짜 엄마로 믿고 따르는 제리, 보리를 보면 그 모습이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남은 생애 오랫동안 우리 가족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하곤 한다.





< 키 차이 나는 제리, 보리의 모습 >

keyword
이전 16화은혜 갚은 고양이 (16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