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한. 중 양국 간 물 밑 수교 협상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나는 중국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고등학교 시절 언젠가 중국어가 큰 쓰임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가르친 학교 덕에 내게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 1992년 한. 중간 수교가 이루어지고 양국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는 약 17년을 오직 중국 업무만을 담당했었다.
나의 업무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계 중국과 관련된 인사들을 만나 교류하며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업무였는데 현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만 해도 갓 이십 대를 넘긴 여성이 대외활동을 수행하는데 애로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적지 않은 세월을 그 자리를 고수하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고교시절 중국어를 조금 배운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하나에 꽂히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오직 한 길 만을 바라보는 성격상의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러한 성격이 형성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겪은 거절감에 대한 상처와 더불어 열여덟의 나이에 가장 밑바닥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나도 모르게 모든 환경적 어려움을 견디고 극복해 내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대학시절에도 줄곧 건강식품 판매원, 대우전자 판매원 등 영업사원 아르바이트를 해왔기에 여성이라고 해서 대외활동 업무를 기피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우리 동기들이 첫 여성 공채였으므로 도움을 청할 선배 여직원도 없었고 오직 스스로 나의 업무를 개척해 나가야 했었다.
술 문화로 점철된 우리나라 사회에서 술 한잔 입에 대지 못하는 여성인 내가 대외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소신과 노하우가 있어야 했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내게 주어진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여 왔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린 시절 겪은 거절감의 상처로 선생님들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할 때도 윗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때문에 누가 먼저 제안하지 않을 경우 내가 먼저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없었다. 그저 주어진 일에만 몰두했을 뿐 다른 부서, 다른 업무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나는 중국 업무를 비롯하여 이후 근무한 타 업무에서도 최장수 근무경력을 기록한 바 있는 인내와 끈기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여직원이었다.
물론 30여 년 공직생활을 하는 가운데 거절감의 상처도 점차 무디어지고 치유되어 갔다. 하지만 처음에는 좀처럼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 탓에 차가워 보인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었다. 아니 지금도 나를 잘 모르는 분들은 여전히 나를 차가운 사람으로 여기실 것이다. 알고 보면 가슴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사는 나였는데도 말이다.
지금도 나의 인내와 끈기는 여전하다. 적어도 한 번 시작한 일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인연 또한 마찬가지, 쉽사리 마음을 열지는 못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연 사람과는 웬만해서는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금도 공직생활을 하며 맺었던 여러 분야 관계자 들과의 인연을 여전히 이어가며 친교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앞서 술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술을 단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을 닮은 체질적 문제였지만 또 다른 남모르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한참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아버지께서 집을 떠나 있으신 적이 있었다. 항상 엄마품에 안겨 잠들던 나는 어느 날 엄마 입에서 나는 술냄새를 맡았다.
평소 술 한잔 입에 대지 못하시던 엄마가 아버지 없이 혼자 가정을 책임지며 오 남매를 돌봐야 했던 현실이 힘드신 나머지 막걸리를 한잔하셨던 것 같았다. 그때 철 모르던 나는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울어 버렸고 그 기억으로 인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술을 마셔야 할 때가 많았음에도 불구,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회사에서 밤늦게 귀가하는 엄마에게서 술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가슴 아픈 개인사에 따른 나의 소신일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술 마시는 여성을 폄훼하거나 여성에 대해 편견을 가진 것은 당연히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동료들 가운데는 내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도 꽤나 많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회식 후면 2차 노래방까지 기필코 따라가 마이크를 놓지 않고 무대를 휘저었기에 흥청망청 술에 취해 있던 동료들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취하지 않고는 도저히 저럴 수 없지"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