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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Sep 24. 2022

내 인생의 조각보



내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느질과 뜨개질이다.


나는 어린 시절 층층시하 막내로 자라 외할머니, 엄마와 줄줄이 언니들 셋, 올케언니 등 내 위로 여성만 여섯 명이 있었기에 나는 온갖 잡다한 집안일에 면제받는 특별대우를 받고 자랐다. 때문에 집안일 익힐 기회를 원천 차단당했던 내게 가사 일, 그중 바느질과 뜨개질은 참으로 고난이 분야였다.


특히 바느질은 내게 있어 난공불락의 분야다. 가느다란 바늘 하나를 가지고 온갖 색상의 실을 꾀어 섬세한 손놀림으로 찢어지거나 뚫어진 헝겊을 표 안 나게 꿰매어 내는 솜씨는 내게 있어 마치 신공과도 같았다.


수십 년 결혼생활을 하며 나 같은 바느질 솜씨로 어떻게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느질뿐만 아니라 여러 가정 살림에 나보다 훨씬 뛰어났던 남편을 만났기에 가능했다. 요즘이야 뚫어진 양말을 기워 신는 시대가 아니니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사한 집의 거실에 비해 커튼이 너무 길어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나를 대신해 커튼을 잘라내고 밑단을 일일이 손으로 꿰매어 주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아이들도 단추를 다는 일쯤은 알아서 스스로 해결했다. 어떠한 상황이든 사람은 역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친구들 모임에서 부산여행을 다녀왔는데 일행 중 후배 하나는 자신이 직접 만든 멋진 옷과 가방을 입고, 들고 나왔다. 평소에 입는 옷도 대부분 직접 만들어 입는다는데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내 고등학교 친구 하나는 퀼트(우리의 조각보)를 만드는데 그의 작품은 예술품이라 불려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 글 대문을 장식한 사진이 바로 그 친구가 만든 작품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은 당연 외할머니셨다. 할머니도 본인보다 젊디 젊은 여자가 6명이나 있었으니 당연히 나와 마찬가지로 잡다한 집안일에서 제외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꼼지락꼼지락 움직이시며 늘 무엇인가를 만드셨다.


그 옛날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쓰시던 골동품과도 같은 물건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옛 장롱이고 또 하나는 손잡이 달린 앉은뱅이 싱거(SINGER) 미싱이었다. 이 미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족히 100년이 넘은 당시로 치면 명품과도 같은 유명 상표였고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진짜 골동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상하고 엔틱 했던 장롱과 함께 친정에서 이사를 몇 번 다니는 과정에서 언제인가부터 행방이 묘연해졌다.



할머니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자투리 헝겊을 구하셨는지 항상 장롱 구석에 그것들을 잔뜩 재워 놓고 계셨다. 늘 미싱 손잡이를 돌리며 식구들이 덮고, 베고 자는 이불보나 베갯 닢, 옷가지들을 만들어 주셨으니 아마 그 같은 작업을 하고 남은 자투리 헝겊을 버리지 않고 일일이 다 모아 두셨을 게다. 그것들이 어느 정도의 양이 찼다 싶으면 언제나 조각보를 만드셨다.


손바닥 만한 것부터 때론 책받침 만한 것까지 모양도 색깔도 가지 각색이었던 자투리 헝겊들. 할머니가 미싱 앞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이것들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손잡이를 돌리면 놀랍게도 네모 반듯한, 때로는 육각형, 팔각형 모양의 조각보가 완성되곤 했다.


나는 워낙 바느질의 원리 자체를 모르는 지라 도대체 저 같은 자투리 헝겊으로 어떻게 저런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지 매우 놀랍고 신기했다. 할머니의 머릿속에 나름대로 형태나 배색에 대한 구상이 분명 있으셨을 것이다. 이렇듯 보잘것없는 자투리 헝겊으로 다양한 형태와 무늬, 알록달록한 색상의 조각 보자기를 만들어 내셨던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들은 모두가 대단히 훌륭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들은 예술품으로 대우받기보다는 우리네 소박한 밥상의 밥상보로, 부엌과 마루를 차단해 주는 가림막이나 베갯 닢으로 쓰이면 다행이었다. 그도 안 되면 그저 곱게 접힌 채 장롱 한 구석에 파묻혀 일 평생을 보내기도 했을 테니까. 


허름하기 짝이 없는 자투리 헝겊 따위가 저리도 고상하고 때로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보로 재탄생하는 과정, 그것이야 말로 과거 우리 여성들의 삶과 다름없다 생각된다. 이름 없이 살다 가버린 수많은 여인네들의 비록 자투리와 같은 인생이었지만 그들의 삶이 모여 마치 조각보와 같은 한 나라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모두 자신만의 삶의 조각보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투리 시간과 노력들이 쌓여 저마다 배색과 모양을 자유롭게 디자인한 멋진 인생의 조각보가 완성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미 육십 고개를 넘게 살아온 나는 어떠 한가? 바느질 솜씨가 워낙 젬병이라 진짜 조각보에는 감히 도전할 수 없다지만 인생 후반기를 맞아 최선을 다해 남겨진 내 인생의 조각보를 보다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특히 나의 손길이 필요했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모두 독립할 날이 머지않은 지금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내 안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다.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중년 이상의 우리들 모두의 바람이리라. 지금까지는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한 개인만 돌아봤을 때 참으로 아쉬운 삶이었을 지라도 앞으로 남겨진 인생만큼은 자신만을 위간을 투자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서글프게도 여러 가지 현실이 바쳐주지 않을 지라도 말이다.


그림을 그릴 때 항상 느끼는 것이 스케치를 한 뒤 처음 전체적인 채색을 시작할 때면 내 그림이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이것이 과연 작품으로 탄생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채색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그 본색이 드러나며 마지막 단계,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채색이 가해졌을 때 아름다운 한 폭의 작품이 완성됨을 경험하곤 한다.


이렇듯이 나를 포함하여 저마다 기나 긴 삶의 여정을 지나 노년의 초입에 다다른 우리들 모두가 이와 같이 멋진 화룡점정으로 각자 남아 있는 인생의 조각보를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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