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3만원 같은 5백원

완전범죄를 꿈꾸며

by 노크 Mar 29. 2025

국민학교 때는 돈을 구경하기조차 쉽지가 않았다. 

그때의 연탄 한 장이 25원이었고 버스비도 25원이었을 때니 아마 지금과 비교하면 60배가량은

 화폐가치가 올랐다. 

그 시절 우리는 가난해서 배가 고팠고 형제들이 많아서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서 먹고 싶은 것이 많았고 

먹고 싶은 게 많은 나이라 늘 배가 고팠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어디에서인지는 몰라도 – 아마 방안이었을 거다 – 500원이라는 지폐 한 장을 주었다.

 (지금은 500원이 동전이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생이 5만 원 정도를 주웠다고나 할까? 큰돈 500원을 주운 나는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장 먼저 호빵을 사 먹었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많아 그깟 호빵이 별거 아니지만, 그 시절 겨울철만 되면 구멍가게든 문방구든 호빵을 따듯하게 먹을 수 있도록 보관하는 호빵 통이 가게 앞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하얀색 분칠을 한 통통한 호빵이 김을 모락모락 내고 천천히 돌며 나를 유혹했다.


“어서 먹어봐 따듯하고 맛있어”    
 

바람불고 추운 한겨울에 호빵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애 어른 없이 누구라도 

군침을 흘리며 먹고 싶어 했다. 

나도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이참에 과감하게 그 호빵을 사 먹었다. 

팥이 들어간 달콤한 호빵은 평생 먹어본 빵 중에 단연 최고였다.     

 

연탄 배달을 했던 엄마는 저녁을 먹고 나면 연탄 배달을 했던 그곳에 수금하러 다녔는데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엄마를 따라가려는 의도였기 때문이다. 그 수금하러 가는 가게 중에 빵집이 있었는데 그 집의 커다란 솥단지에는 언제나 빵이 가득했다. 솥뚜껑을 열 때마다 채반 위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빵들도 먹음직스러웠지만 빵들을 몰래 몰래 숨겨주고 있는 하얀 연기가 너무 신기해보이기도했다.


엄마를 따라 수금을 갈 때마다 그 주인은 그 솥뚜껑을 열고 가끔 빵 하나를 꺼내 내게 주기도 했다 

따끈따끈한 빵은 속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밀가루 빵이었다. 그 빵은 그냥먹기도하지만 설탕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었다. 포실 포실 부풀은 하얀 빵은 따듯할 때

 먹으면 쫄깃 쫄깃하며 달큰한 맛이 밥과는 비교가 되지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빵도 맛있는데 달콤한 팥이 들어간 호빵의 맛은 어떠랴?     


그렇게 호빵을 혼자서, 그것도 몰래, 그리고 공짜로 먹는 그 순간의 그 기분은 앞뒤가길 것 없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 최대의 기쁨이었다.

그렇게 빵을 사먹고 난후에 돈을 쓴 것은 공책을 사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공책이라는 말이 촌스러워 노트라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공책이었다. 

난 공책이 사고 싶었다. 

늘 언니·오빠가 쓰다가 남은 것이나 남이 반쯤쓰다 남은 공책을 쓰는 것이 아닌  공책의 앞면에

내 이름을 쓸 수 있는 내 공책이 갖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먹고 싶은 호빵과 사고 싶은 공책을 샀다. 그동안의 간절히 바랬던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쩐다 돈이 남았다.

하고싶은 걸 다했는데도 돈이 남았으니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완전 범죄를 위해서는 돈이 없어야 하는데 돈이 있다는 건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를 해명해야한다는 상황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수 가 없다.

주은 돈이었고 나는 정직하지 못하게 그것을 마음대로 써버렸으니.

그 순간의 두려움은 오롯히 나만의 두려움이었다. 어쩐다. 완전범죄여야하는데.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감추는 거다. 어디에? 방바닥 장판 밑에 

저금통도 제대로 못갇았던 그때 어쩌다 돈이 생기면 장판 밑에 몰래 감춰두었던 기억이있다.

방바닥이 따듯해지면서 십원짜리 동전도 따듯해졌다.     

나의 범죄는 정말 완전 범죄였을까? 아니면 물씬 두들겨 맞았는데 맞은 건 잊어버린 걸까? 

호빵의 맛이 너무 강렬해서 두들겨 맞은 건 잊은걸까?

혼난 기억이 없으니 아마도 나의 범죄는 완전 범죄였던 것 같다.     


만약 갑자기 또 큰 돈을 줍는다면 어쩔까?

이제 나는 먹고 싶은 빵도 사먹을 수도 있고 갖고 싶은 건 어느 정도 갖을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다.     


다만 사지도 않은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비오는 날의 횡재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