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을 지나가는 나이, 나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었다.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시절도 아니었고 가정 형편이 넉넉해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힘든 빡빡한 일상이었다.
20대 때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해외로 떠나는 친구들을 종종 보긴 했지만 부럽기만 할 뿐 내겐 멀고 어렵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 정도 돈을 쓸 깜냥이 안되었다. 그땐 그저 돈 때문에 포기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생각의 한계였다.
기회가 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혼여행으로 해외를 다녀올 수도 있었다. 코로나 이전이라 해외여행도 자유로웠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이른 나이였고 남편이나 나나 경제적으로 자릴 잡지 못했었다. 결혼은 모든 게 간소화되었고 우리는 국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제주도 여행은 두말할 것 없이 행복했지만 사실 그때의 선택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사회생활을 하며 기혼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꼭 나오는 이야기 주제가 신혼여행이다. 나는 그때마다 내게 질문이 돌아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눈동자를 굴렸다. 유럽 신혼여행기, 동남아 신혼여행기 등 각종 찬란하고 아름다운 신혼여행지에 대해 한참 듣다 보면 불쑥 질문이 들어왔다. "신혼여행 어디 다녀오셨어요?"
피할 수 없는 눈동자들 사이에서 애써 덤덤한 척 "저는 제주도 다녀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 대답을 할 때마다 내 표정이 신경 쓰였다. 아쉬운 듯 '저 제주도 다녀왔어요ㅠㅠ'라고 해야 하나? 그냥 소신 있는 척 '저는 제주도 다녀왔어요!!'라고 해야 하나.. 둘 다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인데 신혼여행을 제주도에 다녀왔다고 하면 보통 일순간 공기가 싸해졌다.
싸해진 공기의 의미는 이럴 것이다. '왜 해외로 안 가고? 혼전 임신이어서 장거리 여행이 부담됐나?' 등등 무언가 묻고 싶은데 묻지 못하는 공기였다. 그럼 누군가 "오~ 제주도 좋죠!" 한마디를 하고 나도 머쓱하게 웃은 다음 화제를 전환했다.
비단 신혼여행뿐 아니라 휴가 계획을 얘기하며 해외여행 경험을 늘어놓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한 번도 가지 못한 해외여행, 국내로 떠난 신혼여행. 부끄러울게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작아지는 내가 싫었다.
남편은 이런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서로 언젠가 멀리 떠나자는 말을 수년동안 해왔다. 둘 다 안 해 본 걸 도전하기 어려워하는데 우리에게 해외여행은 심리적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선뜻 떠나기가 어려웠다.
오랜 숙제 같던 해외여행 도전. 23년도엔 꼭 떠나리라 남편과 약속하고 연초에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시간은 흐르고 이번해도 그냥 넘어가려나 싶은 생각이 들던 여름. 비장하게 꼭 떠나야겠다고 외쳤다. 남편은 당황한 듯했지만 오랜 염원을 알았기에 적극적으로 여행지를 탐색했다.
당장 휴가기간 한 달을 앞둔 시기라 모든 비행기표가 비쌌다. 첫 해외여행이라 좀 쉬운 여행지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동남아 쪽을 알아보다 평소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던 남편의 제안으로 일본으로 여행지를 정했다. 미스터선샤인을 감명 깊게 본 여동생은 일본을 여행지로 고른 내게 "언니니까 한번 봐준다"며 뼈 섞인 농담을 했다.
그렇게 콩알만 한 간으로 우리는 일본여행 티켓을 끊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도전이었다. 수일간 일본여행에 대해 공부하고 계획을 짰다. 경험이 없다는 건 무엇보다 두려운 마음을 증폭시킨다. 낯선 여행지,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모든 해외여행이 그렇겠지만 누구보다 우리는 더 긴장했다.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오사카와 교토 여행을 계획했다. 간사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오사카 신이마미야역에 3박을 할 숙소를 골랐다. 첫날은 난바에서, 둘째 날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셋째 날은 교토에 가기로 했다. 마지막 날은 점심을 먹고 돈키호테 쇼핑 후 공항으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두근 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먹은 제육덮밥과 카레돈까스는 비싸고 평범한 맛이었지만 들뜬 기분 때문인지 음식 맛이 배로 맛있게 느껴졌다. 설레고 신난 나와 달리 남편은 긴장이 많이 된다며 소화가 잘 안 되는 눈치였다. 남편은 매사 조심성 많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 이번 여행이 얼마나 용기를 낸 것인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여행 처음 가는 티 내지 말라고 남편을 놀리다 탑승시간에 맞춰 이동했다.
1시간 정도의 비행 후 드디어 일본에 도착했다. 마침 우리가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막 저녁 해가 지고 있었다. 숙소로 이동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야외 다리에서 붉게 물든 하늘을 보며 사진을 찍고 남편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벅찼다. "우리 진짜 해외에 왔네? 해외여행 이 뭐시라꼬~" 키득키득 웃으며 쫄보 둘이 해외여행 고수인척 훈수를 둔다.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복숭아 물을 사가지고 열차에 탔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를 자세히 들으니 한국 사람 참 많았다. 이후에도 3박 4일간 다니며 곳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 덕분에 안심되는 여행이었다. 열차에서 내려 숙소로 찾아가는 길. 애석하게도 우린 둘 다 심각한 길치였다. 지도를 보면서 가는데도 한참을 헤매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난바로 이동했다.
일본에는 자판기들이 참 형형색색 예뻤다. 빨간색, 흰색, 주황색, 파란색.. 길 가며 만나는 자판기마다 포즈를 취하면 남편은 달려와 사진을 찍는다. 나는 길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걸었다.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에서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꽤 컸다.
밥때가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음식점 영업이 끝난 곳이 많았다. 둘러보다 만만해 보이는 우동집에 들어갔다. 오픈 주방이라 조리하는 게 보였는데 라면 끓이듯 키트를 부어서 조리하는 걸 보곤 직감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첫끼는 실패였다.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실패한 저녁에 대한 회포를 풀었다.
둘째 날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일찌감치 출발했다. 가는 길 역시나 조금 헤맸지만 근처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가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뒤를 졸졸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픈시간인 오전 8시가 조금 넘어 도착해 폐점시간인 10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동산을 마음껏 즐겼다. 찌는 해 아래 1시간 이상 줄을 서기도 했지만 늦은 밤까지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먹었던 오코노미야끼와 맥주 한잔이 두고두고 생각난다.
기절하듯 잠든 다음날 향한 교토. 교토로 이동하기 위해 탔던 한큐선에서의 바깥 풍경은 마치 동화 같았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채 기차에 내려 청수사로 올라가는 길, 오사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고요함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다음에 한번 더 일본여행을 오게 된다면 교토 구석구석을 다녀보자 얘기하며 초록으로 물든 교토를 눈과 마음에 잔뜩 담았다.
여행 마지막날, 숙소를 떠나 마지막 점심을 먹으며 남편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해외여행, 뭐 별거 아니네ㅎㅎㅎ"
별거 아닌 3박 4일, 설명하기 어려운 벅찬 마음과 숙성된 염원을 이루었다는 뿌듯함에 돌아와서도 몇 날 며칠을 남편과 여행의 여운을 즐겼다. 시간이 일 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날 오사카의 붉은 노을과 교토의 청아함이 마음에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