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중 하나가 인형탈 아르바이트였다. 당시 유행하던 캐릭터 탈을 쓰고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었는데 시간 대비 보수도 괜찮았다. 그도 그럴게 인형탈이 몹시 무거워 체력 소진이 많이 됐다.
출근해서 옷을 갈아입고 나면 그때부터 딴 사람이 됐다. 타인의 시선을 지독하게 의식하는 내가 인형탈을 썼을 때만큼은 자유로웠다.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쓰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해방감이나 자신이 안 해볼 법한 개인기를 도전해 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 탈을 쓰고 있으면 검열 없는 내가 되었다.
탈을 벗으면 어김없이 나로 돌아왔다. 그때의 나는 눈치 보는 게 일이었다. 말 한마디 실수한다고 세상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말끝을 흐렸다. 자유롭고 명료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호감을 사기 위한 적당한 미소와 예의는 의도대로 좋은 인상은 주었으나 매력이 되진 못했다. 그 누구도 진짜 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나로 살려면 인형탈을 쓰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인형탈을 썼을 때 해방감을 느꼈던 건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나로 살기 위해 선행되야 하는 건 온통 타인에게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는 것이었다. 누구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내 욕구를 드러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작게는 메뉴 선택에서부터 업무상 할 말을 하기까지 내가 원하는 말,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끊임없이 연습했다.
'세상 사람들은 별로 네게 관심이 없거든?' 자꾸 되뇌었다. 나에게 가장 관심 있는 건 나여야 했다. 무슨 옷을 입건 무엇을 하건 자기만족보다 타인의 인정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받아들였다.
이제 웃고 싶지 않으면 웃지 않을 수 있고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할 때 눈치 보지 않는다.더 이상 인형탈을 쓰지 않고도 나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