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한 날의 소풍이었다. 소풍에 빠질 수 없는 김밥, 도시락을 까보면 똑같은 김밥은 없었다. 까만 김은 똑같았으나 속에 든 재료가 달랐다. 간혹 계란말이 김밥처럼 특별한 김밥이 나오면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엄마더라도 김밥만큼은 티가 안 났다. 어떤 애들은 꼭 김밥 옆에 소시지나 과일이 껴있어서 '누구네 집은 부자야' 하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에 비해 나의 도시락은 평범했다. 까만 김에 계란, 시금치, 어묵, 햄이 들어있는 튀지 않는 김밥. 시장에서 김밥을 마는 할머니에게 구매한 것이었다. 아이 셋 양육과 돈벌이에 삶에 지친 엄마는 김밥 재료 사러 갈 시간도 김밥 쌀 시간도 부족했다.
엄마의 손맛은 없어도 엄마의 발품은 들었으니 어찌 됐건 엄마의 몫이 들어간 셈이다. 나는 불평 없이 엄마가 사준 김밥을 가져갔다. 드디어 점심시간, 김밥을 꺼내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그날따라 왠지 밥알이 잘 안 넘어가고 김밥 재료가 소화가 안 돼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특히 내 식도를 강타하는 햄, 햄 맛이 너무 역했다.
결국 체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게워내고 난 뒤 누웠다. 엄마는 한참을 등을 두드리고 소화제를 먹이고 나서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직접 김밥을 싸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려 다음 소풍 땐 꼭 엄마가 김밥을 싸주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햄이 싫어지는 마당에 엄마를 미안하게 만든 햄이 더 싫어졌다. 몹쓸 햄아, 너 때문에 엄마가 괜히 미안해하잖아! 다시는 먹나 봐라!
미운 햄이랑 아직 화해는 못했다. 그 이후 줄곧 김밥을 먹을 때 햄을 빼고 먹는다. 스팸도 좋아하고 온갖 종류의 햄을 다 먹는데 신기하게도 김밥에 들어간 햄만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햄을 골라 쏙쏙 빼놓으면 같이 먹는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신나서 골라둔 햄을 대신 먹는다. 대부분 햄을 좋아하니깐.
선선한 가을 공기 마시며 오랜만에 소풍을 가야겠다. 햄은 없지만 좋아하는 재료를 꾹꾹 눌러 담아 통통한 김밥 한 줄 싸서 엄마랑 나눠먹어야지. 그리곤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의 발품 판 김밥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내가 체한 건 햄 때문이라고, 모두 다 햄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