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6년을 원룸에서 살았다. 대학생의 자취도 아니었고 치기 어린 마음에 한 독립도 아니었다. 그곳은 사랑에 마지않는 현과의 신혼집이었다. 이천에 이십, 옵션으로 냉장고와 세탁기, 붙박이장이 있던 7평 남짓 원룸에서 우리의 신혼은 시작되었다. 가져간 살림이라고는 침대, 작은 TV, 그릇 몇 개가 전부였다.
현도 나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시절, 양가 도움받을 형편은 못되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20대 초반부터 연애를 했고 더 오래 기다린다고 크게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 판단했던 터라 결혼을 서둘렀다.
좁은 원룸 안에서 우리는 더 친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 모든 것을 공유하는 생활환경은 우리를 때론 즐겁게 하고 가끔 밉게 하며 연인을 넘어 부부로 나아가게 했다.
현이 가진 삶의 방식은 빚이 없고 현실적으로 감당 가능한 삶을 사는 것이다. 가난했던 친정, 다섯 식구가 방 한 칸에도 살아본 전적이 있는 나로선 둘이서 하는 원룸 생활은 크게 불편할 게 없었다. 우리 나름 형편에 맞는 삶을 찾았고 감사하며 살았다.
야금야금 돈을 모아 원룸 생활을 청산하고 투룸 전세로 이사를 갔다. 방 하나, 거실 하나가 있는 집이었다. 베란다가 꽤 넓었고 원룸에 비하면 운동장이었다. 넓어진 집만큼 우리 짐도 늘어나고 주름도 늘어갔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집주인은 적은 돈으로 여기저기 투자하다 돈이 묶였는지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고 했다. 경매에 새 주인이 낙찰되면 우린 언제 이사 가야 할지 모르는 신세가 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했던 우리는 무사히 보증금은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이사가 막막했다.
고르고 골라 가지고 있던 전세금으로 가능한 빌라에 들어왔다. 재수가 좋았다. 재개발 지역이라 다들 이사를 꺼려하는 곳이었지만 당장 몇 년 내로 재개발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이곳엔 무려 방이 두 칸, 거실도 넓었다. 인생에서 살아본 가장 큰 집이었다.
그 사이 현은 청약 신청을 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 인기 있던 아파트 분양이었다. 당첨될 거란 기대는 적었지만 청약통장이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본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당첨이었다. 처음 소식을 듣고 얼떨떨했다. 우리가 신축 아파트에? 지난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며 감개가 무량했다.
8월에 아파트 사전 점검을 다녀왔다. 여기가 우리가 살게 될 곳이구나.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스쳤다. 현은 새 집을 살피느라 내내 분주했다. 어느 곳에 있어도 현과 행복했지만 조금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을 주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 헛살지 않았다는 성취감, 더 아끼며 살아가자는 약속. 갖가지 마음들이 몰려와 잠깐 눈물이 핑 돌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서 새 아파트 사전점검 날 아내가 뭉클해 눈물 흘리려고 하니 남편이 '울지 말고 하자 찾아..'라고 했다던데. 그게 번뜩 떠올라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함께 구경 온 친정과 시댁 식구들도 눈과 입으로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간 우리의 주거 환경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었다. 자신의 것을 더 내어주지 못해 내내 미안해하던 이들이기도 했다.
성실하게 살아와서 좋은 집에 오게 된 거라고, 참 착한 부부라고,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고. 응원과 칭찬을 퍼붓는 그들을 보며 신이 났다. 더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현과 내가 물려받은 것 중 가장 큰 자산이 성실과 감사라는 사실이 몹시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