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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송 Oct 19. 2024

봄 엄마와 가을 아빠


결혼한 지 3년 만에 얻은 딸, 한차례 유산을 겪고 어렵사리 얻은 귀한 딸을 엄마 아빠는 애지중지했다. 기억나지 않는 유년기지만 친척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걷지 못할 때 내가 가만 누워있는 것조차 아까워 모두 품에 끼고 안고 있었다고.

6살쯤이었나. 집 앞에서 놀다 이웃 꼬마랑 싸움이 붙었다. 이유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적 싸움이 늘 그렇듯 나도 걔도 서로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던 중이었다. 그러다 그 애의 엄마가 나와서 나를 큰소리로 혼냈고 난 엉엉 울었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 나온 엄마가 일방적으로 나를 혼내던 그 엄마를 말렸고 그러다 감정이 격해져 결국 두 사람이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동네 어른들이 나와 말려서 끝났지만 엄마가 나 때문에 싸웠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엄마 나이가 지금 나보다 훨씬 어렸다. 옛날 사진을 보면 영락없는 여리여리한 아가씨인데, 엄마가 되면 힘이 세지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엄마가 내 편이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온 세포에 각인됐다. 생명력 강한 봄처럼 엄마는 생생했다.

한편, 살랑거리는 봄이 주는 따뜻함도 있듯 엄마는 유쾌하고 다정했다. 좁은 집이었지만 친구들을 자주 초대했다. 엄마는 떡볶이도 해주고 라면도 끓여주며 내 친구들을 예뻐했다. 어릴 적 친구들이 지금도 엄마의 안부를 묻는 건 그때 엄마가 내어준 따뜻한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는 전적으로 나를 믿어줬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엄마의 의견을 고수하기보다 한 발짝 물러나 내 마음을 물어봐 주었다. 엄마는 자신이 많이 배우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해했다. 그 마음으로 내게 강요보단 질문을 했다. 네 생각은 어때?라고.

경제적으론 넉넉하지 못했다. 가난이 불행의 공식은 아니었지만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낙천적인 천성으로 빌려서라도 입히고 먹이며 나를 길렀다.

엄마와 달리 아빠는 가을바람처럼 쌀쌀맞았다. 세찬 겨울바람은 아니었어도 따뜻하지 않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랬듯 아빠는 가족들 주변을 겉돌았다. 아빠는 응당 그래야만 하는 사람처럼 과묵했고 혼자였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빠가 싫었지만 가끔 좋은 날도 있었다. 말 없는 아빠가 말이 많아지는 유일한 시간, 아빠 마음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고, 무엇이 그립고,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엄마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빠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듣는 게 좋았다. 나는 아빠를 좋아했으니까. 아빠는 왠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은 날도 많았다.

집 가는 골목길이 몹시 어두웠다. 내가 늦은 시간 귀가할 때면 아빠는 언제나 골목 어귀에 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멀리서 내가 오는 걸 확인하곤 눈을 마주치고 담뱃불을 끈 채 기다렸다가 내가 가까이 오면 먼저 걷는다. 나란히 걷지 않고 먼저 세 걸음 앞에 걷는다. 나는 아빠랑 나란히 걷고 싶었는데 아빠는 언제나 먼저 저만치 가버렸다. 외로움을 자처한 아빠의 뒷모습이 내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남아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친정에 가면 늘 한 보따리 음식이나 생필품을 챙겨준다. 집에 있다고 해도 소용없다. 바리바리 싸 들고 집을 나설라치면 아빠가 짐을 들고 먼저 나간다. 아빠, 부르며 따라나서며 나란히 보폭을 맞춰 걷는다. 저만치 먼저 걷던 아빠의 뒷모습 대신 주름진 아빠의 옆모습을 보며 불 꺼진 거리를 조용히 걷는다.

나는 어떤 부모가 될까, 내가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감히 부모가 되지 않고서는 상상도 못 할 사랑에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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