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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Oct 12. 2022

어딘가로 향하는 새벽 두 시

어쩌면 아침까지도

나는 어려서부터 유독 체력이 떨어지는 편이었고, 한 끼만 굶어도 몸무게가 속수무책 빠져버릴 정도로 약골인데, 불면증 약을 먹다 보니 입맛까지 없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노기력맨 (’N0-기력-MAN’의 합성어로 내가 만든 말이다) 으로 살고 있다. 같은 약을 먹어도 언제는 새벽 일찍 깔끔하게 깨어날 때가 있고 어쩔 때는 점심이 다 지나서까지 몸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무겁고 축축 처지는 날이 있다. 아무래도 내 컨디션이 약의 능력을 멋대로 휘두르는 듯하다. 약을 바꾸고 병원을 바꾸고 멋대로 단약을 해보고 (이건 최악이다) 별짓을 다 해봐도 새벽에 나는 어떻게든 눈을 뜨고 깨어 있다.


어떤 공허함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어떤  충만감은 나를 갉아먹기도 하며, 어떤 외로움은 나를 해방시킨다. 새벽 두 시의 나는 대체로 공허하거나 충만할 뿐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자리에 눕곤 한다. 나는 늘 이 점이 우습게 느껴지곤 했다. 나는 지나치게 외로워서 불안감을 느끼고 그 불안감 때문에 약을 먹는 사람이면서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에는 공허함과 충만함을 간직한 채 잠에 든다는 사실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취침전 약 복용의 효과일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에게는 과분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새벽 2시가 되어 누군가 나의 죽음을 발견한다면 분명 안타까운 죽음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새벽 2시에 죽어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면 그것은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기쁜 모습의 죽음일 것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이 되어 당신을 맞이할 수 있다면 더는 우습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 당신의 손을 마주잡을 수 있게 된다면 외로움을 견디고 견뎌 버티고 선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당신의 곁을 스쳐가는 가느다란 실비처럼 나는 어디로 이어져 가고 있을까요.








아주 오래된 어둠에 두 손이 떠오른다.

한 여자가 몸을 찢어

두 손에 올라 몸을 뉘이고

죽은 쥐와 곰팡내 나는 새 사이로

길을 잃은 쳇바퀴가

미로에 갇혀 돌아갑니다

손등에는

무엇이 살고 있나요

아무도 묻지 않고

여자의 찢어진 몸이

손바닥 아래로 굴러 떨어져

손등에는

손등에는

기다란 찢어진 몸 하나가

몸을 둥글게 말고

손바닥 아래로 떨어질 준비를 한다

무엇이

살고 싶나요

낙하하는 몸뚱이를 거머쥐는

주먹쥔 손

어둠 속 자그마한 생쥐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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