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제 Sep 07. 2022

시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그럭저럭 삽니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나를 힘들게 한 것 중에 하나는 단연 시간 분자다. 나는 시간을 시간이 아니라 시간 분자라 부르길 좋아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시간으로부터 강렬한 압력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미처 초가 되지 못한 시간 분자들이 공기 중에 둥둥 떠서 예리한 모서리로 (분자 모형은 모두 동그랗지만 시간 분자는 예외다) 나를 겨누고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아무리 시간 분자에 대해 설명을 해도 사람들은 그걸 시간 개념이 있다, 없다 정도로 뭉뚱그려 말하곤 하는데 참 답답한 일이다.


"답답한 건 너지!"


가족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이 정도 말했으면 알겠지만 사실 나는 그 '시간 개념'이라는 게 잘 없다. 시간의 흐름을 남들에 비해 파악하지 못하는 편이다. 나는 그 많은 시간 분자들이 내 게으름의 헌신인 줄 알고 이제껏 살아왔다. 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감각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마음을 놓고 살고 있다. (어떻게 알았냐면 나도 나 같은 사람에게 들었다. 나 같은 여러분도 나에게 들었으니 마음을 놓으시라.)


2시간을 예약한 연습실에서 20분쯤 지났겠거니 하고 시계를 보면 퇴실 시간이라든가, 5분 만에 머리를 감았다 생각하고 밖에 나와보니 30분이 지나있다거나 이런 식이다. 짧은 시간이면 문제가 덜할 텐데 나를 감싸고 있는 시간 분자들은 그 격차가 너무 커서 나를 힘들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는 시간을 대체로 멈춰 있다고 느낀다. 진공 포장된 가공육처럼 시간 분자들로 가득 찬 진공팩에 들어앉아 이질적인 상태를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지금 내 곁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주고, 이해해준다. 내가 늦으면 늦는 대로, 빠르면 빠른대로 그렇게 둔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카페를 가거나 일을 벌일 때도 내가 시간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알려주고, 조정해준다. 나 역시 그들을 사랑하지만 (감히 그들보다 더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조심스럽지만) 그들에게 나의 시간 분자들이 달라붙어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은 모두 그렇게 사라졌다. 내가 너무 느리거나 너무 빠르다는 이유로 내가 힘들다고 했다. 학교에 지각을 한 날에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네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는 내 아버지가 알코올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걸 알고 종종 그 얘기를 일종의 카드처럼 썼다), 이동시간 계산이 어려워 냅다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친구를 두 시간이나 기다린 적도 있고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나름 신나게 보낸 인증샷에 친구가 너무 초조해해서 되려 미안해졌다), 시간을 통제할 수 없어 겪는 일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다.


그 탓에 지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은 최정예 요원 같은 사람들이다. 이를 테면 시간 분자로부터의 공격에 항체를 지닌 최강의 빌런들. (시간 감각이 없는 사람을 사회에서는 빌런 취급을 하니까 나는 분명 빌런이다. 그렇다면 내 친구들도 빌런일까? 알 수 없지만 좋아할 것 같으니 그냥 다들 빌런이라고 하자.) 나의 최강 빌런들은 언제나 사랑스러운 얼굴로 나를 기다리거나 혹은 뛰어오며 기꺼이 손을 흔들어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뭐가?"

"왜 나랑 친구 해?"

"넌 왜 나랑 친구 하는데?"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시간 분자 빌런인 내가 사실은 히어로였을 그들을 빌런으로 끌어들여놓고 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때 한 친구가 대답했다.


"난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있어."


나는 울었다. 사실 직접 울지는 않고 우는 표정을 지으며 진심을 다해 메신저 창에 'ㅠㅠㅠㅠㅠㅠㅠㅠㅠ'를 연타했다. 우정이라는 형태의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친구들을 계속 시험에 들게 하는 내게 한숨을 쉬기는커녕 친구들은 매번 따뜻한 손길을 내어준다. 너를 생각하고 있어. 그런 고백과 함께.


나는 지금도 시간을 잘 느끼지 못한다. 배가 고프지 않다면 하루에 한 끼만 먹고도 끼니가 지났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다음 날을 맞이하기도 하고, 정시에 맞춰 갈 거라고 결심해봤자 1시간 이르게 혹은 늦게 그곳에 가 있다. 30분 일찍 간다고 생각하면 2시간 이르게 혹은 늦게 가 있으므로 도착 시간을 다르게 설정하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7시라 생각하고 일어나 5시에 아침을 먹거나 8시인 줄 알고 TV를 틀었다가 12시가 지난 시계 소리에 번뜩 놀라기도 한다.


다행히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두거나 배경화면에 투두 리스트를 깔아 두는 것으로 일정을 맞추고는 있지만 가끔은 그마저도 잊는다. 18일에 편지 보내기라고 써놓고 정작 18일이 언제인지를 잊는 식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큰 스케줄을 망친다거나 일정을 잊는 일은 없었지만 (캘린더 동기화 만세!) 미래에 언젠가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난 영원히 시간 분자 빌런일 테니까.




사실 빌런의 삶은 조금 슬프다. 아니, 많이 슬프다. 기다리는 건 자신 있는데 남들을 기다리게 하는 건 너무 면목이 없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다. 감히 사과조차 못할 정도로 미안해서 우물쭈물하다가 그대로 손절당한 적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수천번을 고민해도 어쩔 수 없었다. 다 시간 분자 탓이다.


농담이고, 다 내 잘못이 맞다. 남들보다 부족하면 배로 노력하면 된다. 캘린더를 더 자주 들여다보고, 알람을 더 많이 맞추고, 시간을 더 자주 확인하고, 약속에 늦으면 진심 어린 사과를, 약속에 이르게 갔으면 안 간 척 근처 구경이나 하고 있으면 된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럭저럭 남들처럼 살 수 있게 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빌런끼를 잘 숨길 줄 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예리하게 달라붙어 있는 시간 분자들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순간은 영원처럼, 어떤 영원은 순간처럼 내게 달려온다. 누군가와 멀어지고 나서도 그를 미워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의 시간을 그의 시간이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이니까. 나쁜 일도, 안 좋은 기억도, 내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시간 분자들이 조목조목 먹어치워 삼켜버린다. 나는 그저 진공백 안에서 내 곁을 스쳐가는 수많은 손들을 흐린 눈으로, 가끔은 맑은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


그러다 마주친 어떤 손들. 대체로 나보다 어리고, 많거나, 동갑인 손들이 묻는다.


"넌 왜 나랑 친구 하는데?"


나는 그들의 가방에 담겨 그들과 함께 걷는다. 그들은 땅을 짚거나 떨어지는 잎사귀를 받아 들었다가 산책하는 고양이에 인사하고 나보다 더 건강한 무언가를 사서 고양이와 개에게 먹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손으로 직접 포장을 뜯어 해방시킨다. 나의 사랑하는 빌런들. 나의 시간 분자들을 휘젓고 친구가 되어준 최강 정예 빌런들에게 언젠가는 똑바로 대답하고 싶다.


"너랑 있으면 시간이 멈추지 않아."


시간 분자들은 속삭일 것이다. 우리 역시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있어.









건물이 갈라진다

함몰된 두개골

이 창문은 더 이상 쓸 수 없습니다

문은 열려 있지만

저기 사람이 갇혔어요

날아오는 히어로들

아니요 저는 영어를 못해요

건물이 무너진다

솟구치는 비명들

부러진 다리를 건너

기어오르는

저기 개미가 나옵니다

끝없이 밀려 나오는

붉은 더듬이


소음은 없다




이전 01화 빗소리가 언제까지 위로가 되어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