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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Aug 15. 2022

과분한 것은 그런대로 흘려보내면서

애가 타는 마음으로

나는 태어나 딱 한 번 품에 금덩이를 안아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금덩이보다 금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정도로 동그랗고 커다랗고 부드러웠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금덩이는 세모나고 자그맣고 까슬까슬했다고. 전혀 다른 두 설명을 모두 품고 있는 하나의 금덩이를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2010년 여름이었다.


반려동물을 분양받으러 혼자 가기 무섭다는 친구의 청에 흔쾌히 지하철로 2시간 거리의 경기도까지 간 적이 있다. 여름의 날씨는 지나치게 무더웠고, 동물만 덜렁 데려올 줄 알았건만 이게 무슨 일인지. 역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내가 들어가 앉아도 될 법한 크기의 커다란 어린이용 욕조였다. (아마도 플라스틱 장난감 상자나 뭐 기타 다른 용도의 케이스였겠지만, 욕조 말고는 그 당시의 충격을 생생하게 담아낼 단어가 없다)


우리는 일단 그 욕조를 양쪽에서 들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낑낑대며 움직였다.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넘어서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휠체어가 그려진 입구를 처음 이용해 보는 터라 나와 친구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욕조를 옮기고 후다닥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음으론 계단이 나타났다.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나는 잠시 망연한 마음이 되어 친구를 넘겨봤다. 친구는 나보다 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욕조를 든 손에 힘껏 힘을 주었다.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이 어느새 하늘은 어둑해져 있었다. 시간은 오후 8시를 넘기고 있었고, 배가 고팠다. 다리는 부러질 듯 후들거렸고, 손가락은 욕조를 들고 있던 모양 그대로 붉은 선이 그어져 아무리 문지르고 바람에 식혀도 열기가 가시질 않았다. 무엇보다 대낮에 얇게 입고 나온 여름옷이 밤이 되자 추위를 전혀 막아주지 못해 덜덜 떨어야 했다.


"야,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


친구는 잔뜩 지친 목소리로 욕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도 친구를 따라 욕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란이 일 때마다 궁금한지 킁킁대며 바깥을 살피는 작고 새까만 콧등이 맑은 밤하늘의 위성처럼 아른아른 빛나 보였다. 지금까지의 고생을 단번에 씻겨 내릴 만큼 사랑스러웠다.


"내가 왜 얘를 데려온다고 해버렸을까. 나 미쳤었나 봐."


욕조에서 눈을 뗀 친구는 그제야 불안한 눈빛으로 나 바보았다. 기쁨과 흥분, 혼란과 동요가 친구의 얼굴에 혼재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으로 강아지를 키워본 적은 있어도 혼자 힘으로 하나의 반려동물을 키워내는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친구 대신 욕조 속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나는 조금 알 것 같아."

"뭐가?"

"네가 얘를 왜 데리고 왔는지."


포치 속에 숨어 있던 자그마한 얼굴이 조용한 사위에 용기를 얻은 건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아.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처음부터 나에게 옮겨오고 있었다.




그 후로 얼마 후 나는 기어코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해 작은 고슴도치 한 마리를 옆 동네에서 입양해왔다. 3형제 중 셋째로 몸만 작을 뿐이지 완연한 고슴도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짓기 위해 꽤나 고심했다. 음식 이름을 지으면 오래 산다더라, 이름을 막 지어야 잘 산다더라, 온갖 생생한 증언들을 들었지만 어쩐지 이름을 막 짓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작고 연약한 아이에게 아무 이름이나 지으라니? 그러다 번뜩 이름이 떠올랐다. 귀한 아이니까 금이라고 지으면 어떨까? 게다가 나는 성씨가 '임'이기 때문에 성과 붙이면 무려 '임금'이었다. 임금보다 귀한 이름이 어디 있겠나 싶어 그렇게 금이는 대뜸 우리 집의 임금님이 되어버렸다.


친구의 고슴도치는 성체였는데도 작아 보였다. 그런데 금이는 어린아이를 데려온 터라 상상 이상으로 작았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라도 불면 바로 감기에 걸리고, 찌개가 타는 냄새에 바로 심장이나 폐에 병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슴도치를 처음 보기는 가족들도 매한가지였다. 금이가 궁금해 들여다볼라치면 나는 바로 제지했다. 방의 불도 못 켜게 했다. 우리 집이 안심될 때까지 어둑한 환경에서 안정감을 줘야 한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나는 한 달이 넘게 내밀었다. 어릴 때 조금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게 어머니의 지론이었지만, 어머니는 별말 없이 모든 권한을 나에게 일임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어머니가 옳았다. 한 달 넘게 거의 혼자 둔 거나 마찬가지였던 금이는 우리에게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여기서 반전이 하나 나타난다. 그건 바로 금이의 타고난 성격이었다. 그 무던함과 호기심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금이는 가시를 잘 세우지 않았다. 답답할까 싶어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는 방에 풀어두고 키운 탓인지 누구보다 건강한 고슴도치가 되었다. 3개월에 검진을 간 병원에서는 6개월 성체로 오해할 정도로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고, 먹기도 잘 먹고, 싸기도 잘 싸는 튼튼한 고슴도치로 성장했다.


낮에는 침대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자기 맘대로 장난감을 갖고 놀며 뽀시락 대다가도 어머니가 손을 내밀면 금세 다가와 코를 킁킁대며 간질이고 가곤 했다. 밤이면 이불을 타고 침대 위에 올라와 언니와 나의 머리카락을 열심히 파헤치며 우리의 잠을 깨우곤 했는데 가끔은 안방까지 침범해 모두의 잠을 깨우곤 했다. 새벽에 강제로 기상하면서도 우리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 모든 일들이 즐거웠다. 그 작고 조그만 생명체가 활기를 띄며 자꾸만 우리를 귀찮게 하는 그 상황이 즐거워 견딜 수 없었다.


점점 내 생활패턴에 닮아가기 시작한 건지 금이는 아직 날이 밝아도 침대 밑에서 빠져나와 사람들 발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우리는 금이를 밟았는데 금이는 그럴 때도 절대 가시를 세우지 않고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올려다보곤 했다. 밟으면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경고를 주어도 금이는 발 뒤를 쫓아오거나 이불을 타고 침대 위로 올라와 발치에 누워 잠을 자거나, 가끔은 무릎 위에 기어올라 새를 맡았다.


내 삶에 그토록 깊은 사랑이 찾아오게 될 줄 몰랐다.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하지만 내 곁에 있는 생명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린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온몸을 간질이는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하게 만드는 애틋할 정도로 꾸밈없는 사랑을.


처음으로 하교를 하는 길이 즐거웠다. 집에 가면 금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똥과 오줌을 치우고 밥을 주면서 말을 걸면 느릿느릿 잠이 가득 든 얼굴로 걸어 나와 내 손끝에 자신의 코끝을 대어주는 아름다운 아이가.




시간은 금이를 아름답게 키워냈고, 동시에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는 입시생이 되었고, 집은 작아졌으며, 침대는 사라졌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는 일로 바빴으며, 언니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모든 바뀐 상황에 적응을 해야 했고, 그건 금이도 마찬가지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모든 것에 적응하기를 실패했다. 학교에서는 매일 선생님들과 말다툼을 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며, 친구들과는 멀어졌다. 나는 대입 대신 고졸의 삶을 택했다. 일주일에 6일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말라갔고, 가족들은 각자 너무 바쁘고 지쳐 있었다.


금이가 가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내 손을 피하기 시작했으며, 더는 집을 탈출하여 내 이불에 드나드는 일도 사라졌다. 금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는 돈을 버는 만큼 금이에게 간식을 사주고, 밀웜을 챙겨주고, 영양제와 쳇바퀴를 새로 갈아주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사는 게 버거웠다. 그즈음 우울증이 극도로 심해 방문을 잠가놓고 우는 날이 늘어났다. 금이는 내 울음을 들어야 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금이에게는. 나보다 더 엉망이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오는 길에 생일 케이크를 사 왔다. 금이의 생일은 7월이었지만 우리 집에 온 날은 8월 11일이었으므로 나는 금이의 생일을 8월로 계산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생일 케이크를 두고 금이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혼자 박수를 쳤다. 금이는 갑작스러운 소란에 숨을 곳을 찾느라 바빴다. 나는 금이를 다시 포치 속에 놓아주고 혼자 부엌 바닥에 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울었다. 생일 축하해, 금아. 속으로 몇 번이고 속삭이며 눈물을 닦았다. 너를 두고 외로워해서 미안해.


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다시 금이를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방의 불을 켜지 않고 부엌에서 흘러들어오는 불빛에 의존하여 어둑한 방 안에 앉아 금이의 자는 뒷모습을, 물을 마시고 밥을 먹는 모습을 다시 오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금이는 집의 문을 열어놓아도 밖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와도 너무 불안해해서 다시 집 안으로 넣어줘야 했다. 내가 먼 길을 돌아오는 동안 금이는 더 먼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을 새도 없이 나는 입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연말이 되어 모든 입시를 마치고 드디어 자유가 되었던 날, 금이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는 밀웜을 사다 주었지만 사냥만 하고는 밥그릇에 그대로 둔 채 먹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물도 밥도 잘 먹지 않았다. 하루 종일 포치에 들어가 누워 있는 일이 잦았다. 그제야 금이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금이는 이미 더 멀리멀리 가버리고 있었다.


금이는 하루가 다르게 기운을 잃어 갔다. 나는 그러는 사이 신경성 장염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늦은 밤, 어머니는 나에게 병원을 가라고 몇 번이고 설득했다. 


"병원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금이야"


나는 거실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즈음 우리 집에서는 금이의 죽음을 미리 받아들이는 분위기였고, 나는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소동물을 봐주는 동물병원에 갔을 때 의사도 어머니와 똑같은 말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영양제만 하나 놔드릴게요. 금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포치 안에 넣어준 후 금이의 집을 내 머리맡으로 옮겼다. 자는 사이 금이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 금이를 봤다. 숨을 쉬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누워 잠이 들고 얼마 후 다시 깨어 금이의 몸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침 7시가 되어 나는 금이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식사를 며칠 째 전혀 하지 않아 나는 강제로 소동물 주사기로 분유를 급여하려 했다. 금이는 입에 들어간 분유를 모두 뱉어냈다. 내 손 안에서 괴로워하는 금이를 끌어안고 나는 울었다. 밥을 먹어주질 않아서 금이가 야속했다. 금이는 밥을 억지로 먹이려는 내가 야속했을까. 자신도 힘든데 나 혼자 모든 힘듦을 짊어진 척 등만 보이고 있어서. 금이야, 이름을 불러준 지 오래되어서. 내가 야속했을까.


그 야속함을 안고서 금이는 나를 떠났다. 짧은 단말마를 내뱉고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나는 금이를 끌어안았다. 금이를 조심스레 손으로 감싸 보듬어 쥐는 거 말고 그렇게 거리낌 없이 품 안에 들어 안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보드랍고 자그마한 내 아이가 내 품 안에서 차갑고 딱딱해져 가고 있었다. 나의 금덩이가, 나의 임금이, 나의 하나의 세상이 그렇게 무너졌다.


금이를 떠나보내고 오후가 되어 집에 돌아왔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전화였다. 금이가 없는 빈집을 바라보며 나는 엄마에게 연락했다. 엄마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다른 사람들도 축하한다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세상이 무너지고

작은 세상 하나가 다시 문을 열었다.


금이의 선물이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우울해하는 내가 조금이라도 세상 밖에 나가길 바라서 작은 문을 하나 열어주고 간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내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도 8월만 되면 천장에 금이의 별자리를 새기며 음을 닫는다.





저 먼 발치에 한 아이가 기다린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고

새들의 부리가 구덩이를 파내려간다

구덩이 마다 마다 아이가 들여다볼 수 없도록

신발을 던져 넣는다


새들이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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