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에서 장충동 사이
을지로 4가역 기반 생활 3년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후에도 몇 번은 이 근처에서 모임도 있고 지나도 갈것이고
학교 마무리 일을 보러도 오고 혈압약을 받으러 당분간은 오겠으나 공식적으로는 마지막이다.
그리고 식사 자리가 자주 있는 한 주일이다.
월요일에는 학교 정문 바로 앞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으나 어제는 조금 떨어진 식당을 선택했다.
몇 곳의 후보 식당을 보냈더니 나의 축제 도우미 실무사님 두 분께서 선택해준 곳이다.
덕분에 오랫만에 나의 취미 생활 산책이 가능했다.
을지로 4가역은 주변에 볼 것들이 많은 서울 지하철의 한복판이다.
조금 걸어가면 필동과 장충동 그리고 남산과 동국대가 있다.
을지로 생활 첫 해 가을.
토요일마다 동국대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기후위기 관련 활동이 있었다.
전문가 특강도 듣고 만들기도 하는 활동도 의미 있고 좋았지만
조용한 토요일 오전 이른 시간. 지하철역에서 오르막길을 올라 동국대를 들어서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동국대는 학교 곳곳에 불교 냄새와 고전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특별함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산뷰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는 특장점이 있다.
그 절정은 학생들과 활동을 하는 도서관 건물의 옥상에서 극대화된다.
햇살이 좋은 날에도, 단풍이 완연한 날에도, 심지어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에도
적당한 운동이 되는 오르막길을 오르면(조금 숨이 차기는 한다.)
대학 자체가 주는 생동감과 함께 가슴벅차는 남산골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동국대는 이화여대, 연세대, 서울대, 옛 한남동 자리의 단국대, 건국대에 이어서
내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대학교가 되었다.
다들 많이 걸어본 학교를 언급한 것이다.
조금 많이 걷는 날은 남산까지 걸었었다.
물론 티눈 이슈가 생기기 전이다.
남산을 어느쪽으로 올라가는지는 그 날 핵심이 되는 일에 따라 다르고
대부분은 연구정보원에 볼 일이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몇 번은 목표가 국립극장인 경우가 있었다.
그 곳에서 열리는 유기농 플리마켓을 방문하기 위한것이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걸어갔다가 거의 등반 수준으로 혼난 이후에(물론 주변 구경은 엄청했다만)
다음에는 차를 가지고 가서 국립극장에 주차하고
다양한 유기농 농산물들을 구경하고 조금씩 구입하여 돌아오는 루트를 택했는데
이때도 국립극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 산책 본연의 임무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걷는 길에 따라 테니스장이 보이기도 하고 작은 쉼터가 보이기도 하고 멋진 호텔이 보이기도 하지만
공통점은 남산뷰가 주는 여유이다.
남산타워가 주는 설렘과 아름다움이다.(어제는 미세먼지때문에 조명이 붉은 색이기는 했다.)
서울 한 복판의 남산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존재만으로 가치가 충분하다.
그리고 그 플리마켓에서 무료로 열리는 공연에서 나는 멋진 국악과 예술의 힘도 느꼈고
그 곳에서 학교 축제 외부 출연자를 섭외하기도 하였으니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산책이었다.
날씨가 덜 추웠던 어제는 한국의 집에서 필동쪽으로의 간단한 산책과 함께 맛난 솥밥 저녁을 먹었고
(필동쪽에도 맛집이 많이 있다. 물론 그 중에 최고 인기 식당은 평양 냉면집이다.)
필동에 있다고 나에게 잘못 입력된 멋진 카페를 찾아나섰다.
(필동이 아니라 장충동이어서 꽤 걸었지만 좋았다.)
길치인 나만 갔었다면 절대 찾아가지 못했을 장충동 그 카페는
수준높은 작은 미술관을 옮겨놓은 듯했고
더 좋았던 것은 고즈넉하고 번잡하지 않고 절제미와 우아함과 주변과의 어우러짐이 최고였다.
물론 카페이지만 저녁에는 알코올이 조금은 포함된 메뉴를 제공한다는 점이 다를뿐.
그러나 그 정도는 전혀 갑질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멋진 곳이었다.(화장실도 멋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동반자들이 주는 기쁨이었다.
학교의 어려운 업무를 함께 완성했고
나의 세월을, 노력을 인정해준 동료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어제 또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하였다.
오늘도 역시 바쁘지만 멋진 날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은퇴투어를 하는 이대호 선수의 심정과 비슷할거다. 지금 내 마음이.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