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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영재 이야기             열두 번째

우리 모두는 어떤 부분에서는 영재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Mar 02. 2025

내가 추천서를 작성해서 영재고나 과학고로 진학한 학생들은 꽤 있다.

물론 추천서를 작성해주는 것은 과학교사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며 역할이다.

그래도 그것을 안써주겠다면서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선생님들도 가끔 있다.

아마 글쓰기가 힘드신 성향이거나 그 학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경우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추천서를 써달라고 온 학생을 거절한 적이 없다.

그 어려운 과학고나 영재고 입시에서 추천서에 대한 부담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재교육 관련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 잘했다.


내 교사 생활 첫 번째 영재고 진학자 이야기는 한번 언급했었다.

무엇이든 첫 번째는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학업 역량도 뛰어나고 실험 조작 능력도 뛰어나고

특히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싫은 티 하나 안내고 알려주는 인성도 뛰어난 그 친구는

아마도 한 분야의 최고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 번째는 언젠가 또 언급한 나의 주치의 P 이다.

따로 치열하게 영재고나 과학고를 갈 것이라고 준비를 크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험삼아 지원해보겠다고 쿨하게 이야기는 했지만

동네 신동으로 불리었던 터라 영재고 탈락이 아마도

그 당시에 조금은 상처라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다.

일반고에 가서 잘해서 S대 의대를 갔으면 되었다. 최고다.


세 번째는 중 3때 담임을 맡았던 한 여학생이었다.

나의 두 번째 학교는 목동 단지안의 교육열 매우 높은 그런 곳이었으나

그런 학교에서도 영재고 도전은 쉽지 않았고

미모와 실력과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K가 영재고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중 3 중간고사때 쯤이었다.

조금 늦은 결정일 수도 있었지만 결정 이후

K는 눈빛이 달라질 정도로 공부에 매진했고

가끔은 많이도 지쳐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멋진 추천서를 작성해주고

가끔씩 격려의 말을 건네주는 일밖에 없었다.

아주 나중에 듣기로는 연구원 출신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그 충격에서 아직 체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K는 그 어려움을 학업으로 잊어버리려

그리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 엄청 노력한 것이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다. 나보다 낫다.

멋지게 과학고에 입학한 그녀는 S대에 입학한

눈부신 5월 스승의 날 즈음 인사하러 왔었고

같이 온 친구들과 홍대 앞 어디쯤에서 맛난 것을 먹은 기억을 끝으로 더 이상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자신의 역량을 살려 어느 분야에서건

능력 발휘를 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대부분 그렇다.

졸업하고 그 다음해 5월, 혹은 대학 입학하고

5월에 인사하러 오는 제자들이 제일 많다.

입학하고 3월부터 5월까지는 치열하게 적응하는 기간이고 첫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첫 시험이 끝나고서야 이제 한숨 놓이면서 반쯤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옛 친구들이 생각나고 스승의 날 즈음 선생님 생각도 나는게 국룰이다.

그리고 그날 모임에서 각각의 성장기와 분투기를 들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오랜 기간 내 임무였다.

맛난 밥을 사주는 일, 고생했다고 말 한마디 해주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세 번째 그 이후부터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력이 안좋아진 것도 있고

세번째 학교의 특수 상황도 있고

그 즈음 나도 하나뿐인 내 자식을 케어하느라

제자들 관리에 기력을 다하지 못했던 시기였기도 했다.

추천서를 작성해준다고 모두가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합격했다고 그 다음해에 꼭 찾아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과학고에 간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공이라는 것이 무슨 기준인지에 따라 다 다르고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주로 내가 학부모님들이나 과학고나 영재고를 지원한다고 오는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현재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좋아요를 눌러준다.)

영재고나 과학고를 가지는 않았지만(일부는 떨어진 경우도 있다. 발표 당시에는 힘들어했다만)

지금 자연과학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많은 연구 결과를 내는 제자들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주위와 함께 나누는 영재가 나는 좋다.



사회성 영재임에 틀림없는 나의 옛 제자가

나의 퇴직 날 저녁에 보내준 톡이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참 감사합니다.

 정작 본인은 몰랐던 어려운 시기를 무탈히 뚫어낼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보니

 적기적소에 지도해주셨던 스승님들 덕분이었습니다.>

그 녀석이 이렇게 적은 이유를 알것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이다.

항상 웃고 즐겁고 재밌는 이야기를 주변에 나누어주는 녀석의 영재성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웃음대신 눈물 한 방울이었지만...

어쩌면 인간은 모두다 특정 분야에서는 영재성이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다른 말로는 쉬운 생활용어로는

그 사람의 장점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 자식이 영재가 아니라고,

영재고나 과학고 진학에 실패했다고 괴로워할 일은 절대 아니다.

내가 잘하고 하고 싶고 관심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하는 일이 더 괴로운 일이다.

영재성을 아주 탁월한 작은 범위로 보고 있는 전문가님들은 질색하실 내용일지도 모른다만...


(이 글을 쓰고 네 번째가 떠올랐다.

과학고 떨어져서 엄청 풀죽었던 모습이 생각난것이다. 그런데 지금 KAIST  연구원이다.

잘난척 하는게 엄청 어울리는 녀석이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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