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면의 모습이 더 멋지다.
어제 학교에 들러서 본 학생들과 만난 시간은 10분을 채 넘지 않았다.
어렵게 학생들과 새롭게 맞춰나가는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따라서 한 녀석 한 녀석과 길게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고 눈맞춤 정도만 보냈다.
그래도 다들 내 마음은 알 것이라 생각된다.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을
그리고 일주일에 4번 이상의 수업을 함께 한 녀석들이니 말이다.
누구는 키가 컸고 누구는 살이 빠졌고
누군가는 여전히 열심히 묵묵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야구부는 여전히 씩씩하고 훈련끝에 까매졌다.
누군가는 뛰어와서 큰소리로 아는 척을 해주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얼마 떨어진 거리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주었고
누군가는 <밴드 동아리를 살려주세요> 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시험문항 출제는 선생님이 해주시면 안되요> 라고도 했다.
다들 자신이 당면한 현안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다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믿음과 친숙함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30점 만점의 기초학력진단평가 과학 3학년 평균점이 24점이라니 작년 1년의 노력이 헛되지않은듯하여 모두 훌륭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때부터(아니다 학생때부터도 그랬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지 않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학생들을
별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잘 들으면 되는데 왜 안 듣는 걸까?(영어와 같은 언어는 사실 기초가 없으면 들리지가 않는다.)
설명을 잘 들으면 한번에는 힘들다 해도 요사이는 인강도 있어서 여러 번 듣다 보면 알아듣게 되어 있는데
왜 안되는 걸까?(일부 고차원 수학과 과학은 해당 되지 않는다. 혼자 공부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공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은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던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아들 녀석의 학습 스타일을 보고
나름 한다고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아들 녀석의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그런데 특정 교과 공부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들 녀석이 친구 사귀기에는 절대지존이다.
누구와는 축구로, 누구와는 농구로, 누구와는 골프로, 누구와는 PT로 빠른 시간안에 친구가 된다.
2년간 미국에 있을때는 그의 페이스북에 온통 전 세계 친구들로 가득했다.
그곳에서도 아마 친구 사귀기 신공을 발휘했었나보다.
나는 친구나 지인 만들기에는 어느 정도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이니 더욱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자친구 만들기에는 엄청 신중하니 그것은
참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영재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쓸 때에는
영재성의 정의나 그에 따른 엄밀한 판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는 영재가 아닌데
부모님의 기대와 희망으로 만들어진 영재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 과열이 문제라고 판단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재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정한 의미의 엄격한 판별과정을 거친 영재에게만 영재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난 이제는 안다.
영재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좁은 영역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세상을 멋지게 잘 살아나가는데는 공부를 잘하는 영재만 필요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을 지지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이 학업에 있어서 우월한 영재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내 개인의 생각이지 영재교육 전공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모두가 영재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방법으로 좋아하는 분야에서 영재성을 발현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교사는 그 기회를 제공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학생도 교사를 존중하고
학부모님도 교사를 동반자로 인정해주고
교사는 당연히 학생들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모든 교육의 시작점이다.
영재교육 강의를 한다면
첫 날 첫 시갓 이 내용으로 강의를 시작하고 싶다.
이런 관점이 있어야 어려운 내용으로만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된다.
요새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영재는
이 글을 꼬박꼬박 읽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1호 제자님이다.
내 이 시기의 급변하는 마음의 변화에 공감해주는 공감 영재님이지 퇴직 6개월 선배님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어제 전시회 날자를 착각하여 방문한 DDP 앞
조형물 사진을 올린다.
매번 앞에서만 보았는데 어제는 우연히 뒤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어라. 뒷면이 더욱 매력적이다.
나는 학생들을 항상 같은 면만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 뒷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