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을 앞둔 일기
컴퓨터 파일의 미니멀라이징을 하고 있는 중이다.
2018년것부터의 파일이 모아져 있다.
그 이전 것은 외장하드에 있는데 그 외장하드의 구동이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그 이전것까지 정리해야 할 필요는 없을 듯도 하다.
일단 어제는 2018년과 2019년 파일을 정리했다.
그때 푸릇푸릇한 사진도 몇개 찾아
지인들에게 공유하면서
천천이 건강하게 늙어가자 약속했고
그때의 젊음과 머리숱의 풍성함을 몹시 부러워했고
다시 쓸 일이 없는 파일들은 가차없이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러다가 2019년 12월 26일 저녁에 작성한 것이 틀림없는 아래 글을 쓴 파일을 찾게 되었다.
미래학교 임기를 마치고
영재원 파견을 나가는 것이 확정된 상태였고
나는 파견 2년 이후 명예퇴직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정년퇴직을 하게 될 줄은.
그때의 심정이 나타난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교사로서의 공식적인 마지막 수업일이다.
물론 과학전시관 파견으로 가면 영재원 소속 학생들과의 수업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난 일반학교로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담 오늘이 마지막 수업일이 맞다.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었다.
진도는 다 나갔고 시험도 끝났고 그러나
영화나 보여주는 시간으로 떼우기는 싫었다.
그냥 놀고 보내기엔 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의미가 없을 듯 하다.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을 미리 짚어주고 싶었다.
30여년의 내 경험으로 보면 과학에 있어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낯설고 무의미하고 비슷비슷한 용어,
수식을 활용한 문제(수학인지 과학인지 알 수 없는), 그리고 그래프 해석이다.
수학에서는 아직 복잡한 그래프를 다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에서는 복잡한 그래프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푸는 문제들이 제시된다.
학생들에게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마지막 수업 주제를
2학년에서 배운 용해도곡선 그래프와
3학년에서 배울 포화수증기량곡선 그래프를
연계하여 수업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일단 두 그래프를 비교하여 유추가 가능한 자료를 만들었다.
이미 배운 용해도곡선에서 내용과 과정이 유사한 포화수증기량곡선을 유추해낼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의 자료 정리 파일은 분석하여 논문 가능여부도 판단해보고자 한다.
그리고는 마지막 수업으로 위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주고자 한다.
내년 이 내용을 배울 시기에 나의 마지막 수업이 조금은 기억이 나려나
그때 이 늙은 선생님을 떠올려주려나
조금은 기대하면서 말이다.
2020년과 2021년은 나의 교사 생활을 총정리하면서 퇴직 이후를 준비하는 날들이 될 예정이다.
시간적인 여유, 심적인 여유를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사용하고자 한다.
대학 졸업식날 발령을 받아서 지금까지 하루도 쉰 날이 없는 나의 몸과 머리에도
서서히 휴식과 여유라는 것을 넣어주고 싶다.
그러나 서서히 되어야지 갑작스러운 것은 부작용을 유발하기 쉽다.
긴장의 끈은 1/3만 놓고 나의 노년을 준비하는 시기가 평온하게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 시간 중 일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사용될 것이나
글을 읽는 일은 노안으로 쉽지는 않을 듯 하고...
은퇴하신 나의 6학년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막 은퇴를 하신 후 찾아뵈었을 때 였다.
잘해준 것은 기억이 안 나고 못했던 일만 기억이 나서 괴롭다고...
좋은 선생님이 되기는 너무도 힘든 일이라고.
그 분이 하셨던 이야기를 나도 똑같이 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
괴로움이 덜 해질 수 있도록 비우는 연습을 하는 날들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미래학교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일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날들이었다.
이 글을 쓰고 역시 인생이란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지 1시간의 수업이 더 남았다.
마지막 시간은 뇌풀이용 문제적 남자 버전으로 3가지 내용을 준비해서 진행했다.
이 내용은 내년 영재원 나의 첫 수업 내용이 될 수도 있다.
영재원 수업을 꼭 해야한다니 최소한으로 줄여서 문제적 남자 버전을 준비하려 한다.
네가 생각하기에 영재 대상의 수업과 일반 학생 대상 수업의 차별화 포인트는 다양한 생각이 가능한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정답은 없지만 정답 접근 가능성은 달라지는 문항이 영재 대상 수업으로 적합한 것이다.
아직도 나는 수업 준비를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
2019년의 글인데 지금의 내 생각과 큰 차이점은 없어보인다.
마음은 안 변하고 몸만 늙었나보다.
그래도 앞으로 2~3년 정도는 더 강의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일하다가 쉬는 것은 의미있으나
계속 놀기만하고 쉬기만 하는 것은 하나도 재미없다.
주말에도 일한다고 입이 튀어나온 분들에게
일할 수 있을때가 행복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싫어하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