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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다른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오늘의 미션 클리어

by 태생적 오지라퍼 Mar 23. 2025

오늘 처리해야 할 미션이 있었다.

한 가지는 서류 프린트와 PDF 파일로 만드는 것인데

집 앞에 24시간 무료 인쇄 카페가 있어서(음료는 팔지 않는다.)

한 방에 처리하고 내친김에 오후 다섯시까지였던

서류 제출까지 완료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세종대학교쪽 방향의 산책에 나섰다.

근처에 있지만 자주 다니는 쪽이 아니라

그 반대편 길을 걷는 것은 드문 일이다.

산책에도 관성이라는 것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그쪽으로 가는 길의 차별화된 특징이 있었다.

길 옆으로 작은 개울이 있는데(아마도 생태하천쯤으로 만든 것인 것 같다.지금은 물은 하나도 없지만)

그 주변으로 자세히 보아야만 보이는 자잘한 봄꽃들이 피어 있다.

냉이꽃도 이름모를 보라색꽃도 그리고 심지어

그 개울 옆 돌멩이 어딘가에는 선인장 비슷한 것도 있었다.

여름철 그쪽 담벼락에는 능소화가 늘어서 있는 것을 건너편에서 지켜만 보았었다.

큰 길을 사이에 두고 개울이 있는 쪽과 없는 쪽의

식물 생태 조건은 확연하게 다른가보다.

그쪽이 해가 잘 비추는 쪽인지

목련도 산수유도 매화와 벚꽃도 수줍게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루가 다르게 꽃들이 힘을 내고

약진을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제 완연한 봄이다.

그리고 이런 꽃들을 열심히 찍어서

동생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나는

이제 어르신 대열에 입성한 것이 틀림없다.

어르신들의 특징은 꽃 사진을 보내거나 아니면

손자, 손녀 사진을 보내는 것이란다.

아마 맞을 것이다. 

나는 손주가 없으니 꽃이나 하늘이나 구름이나 달을 찍는다. 가끔 고양이 설이도 찍는다.

기쁨을 주는 것이

아름다운 자연 아니면 이쁜 손주들 뿐일테니 말이다.


이런 이쁜 꽃들과의 만남을 가진 오전 산책을 마치고

(올해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걸었다. 햇빛이 꽤 강하다.)

3일정도 쎄한 바람을 일으키며 따뜻한 눈길을 주지 않았던 아들 녀석을 깨워서(어쩌겠나. 못이기는 척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집 앞 맛집 식당으로 냉면을 먹으러 나섰다.

사람이 엄청 많아서 잠시 대기까지 했는데

하필 옆 자리 손님에게서 친정 아버지의 옛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나이가 드시고 몸도 편찮으시고

그래도 옛날 한 성격하시던 가락은 남아있는

바로 그 모습이다.

젓가락질이 맘대로 안되니 만두를 손으로 냉큼 집어서(가족들이 말릴 틈도 없었다.)

입에다가 마구 집어넣으신다.

저러다가 사래라도 들리면 큰일인데 싶다.

기침을 계속한다.

코와 입 주위에 만두 속이 펄쳐져 마구 묻는다.

며느리와 아들이 황급히 얼굴을 닦아주려는데 그마저도 자존심 상하는지 고개를 흔들며 거부한다.

아들에게 속삭이며 이야기한다.

<니네 외할아버지랑 똑같지?>


그 뒷자리는 몸이 불편한 와이프 손을 잡고

오랫만에 외식을 나온 착한 남편이다.

젓가락 대신 포크를 쥐어주고 연신 얼굴을 닦아주고 냉면을 잘라주는 모습이

지금은 아파서 누어있는 동생과 제부의 몇 년전을 떠올리게 한다.

아까 대기 중에 마구 땡깡 피우던 어린 아이와

달래던 젊은 엄마 모습은

그 아픈 동생과 그의 둘째 아들 녀석과 겹쳐진다.(백화점에서 자주 두러누었다.)

결국 자동출입문에 한번 끼일 뻔 하고서야

그 녀석은 땡깡을 멈추었다.

냉면과 뚝배기 불고기를 먹는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영화처럼 주위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두통이 시작된다.


집에 와서는 오늘의 또다른 미션인

MS Office 365 프로그램 개인용 연간회원권을 구입했다.

1년에 125,000원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다.

이 금액만큼을 서울시교육청 교사들은 내지 않고

단체 구입으로 사용을 하고 있는 중이다.

월급이 많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공립학교 교사로서 누릴 수 있었던 소소한 혜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주말 오후이다.

이제 엑셀, PPT, 워드 기타 등등을 사용할 수 있으니 미뤄왔던 STEM 프로젝트 수업안 구성을 시작해볼까나.

그런데 오늘은 주말이고

여러명이 겹쳐보이던 그 식당에서 생겨난 두통이 밀려오고 있으니 내일부터 시작하자.

일의 시작을 미루는 습성은 절대 없었던 것인데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2025년 3월은 여러모로 음 맞이하는 스타일의 신기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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