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가 내 일생의 마지막은 아니다.
매일 매일 야구만 보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너무 자주 야구와 인생을 빗대어 글을 쓰니 내가 야구 평론가인가 싶기도 하다만
그렇다면 아주 오래 전 엄마가 그렇게 질색하셨던
초등학생때의 꿈을 이룬 것일지도 모른다.
프로야구는 가끔씩 이리저리 하이라이트만 돌려보는 편이고
월요일 오후 8시 <불꽃야구>만 챙겨본다.
물론 오랜 습관으로 스포츠 기사 제목쯤은 눈으로 쓱 훑어보고
이전학교 야구부를 비롯한 아마야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어제는 기다려서 프로야구를 살펴보았다.
고급 야구, 고급 수비의 대명사 김재호 선수의 은퇴식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그를 축하해줄 팬들은 많을테니까.
그냥 나는 마지막을 묵묵히 지켜봐줄 정도만 하면
그의 야구 선수 일생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방법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경기에서 매끄럽게 공을 잡고 던지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면 했으나
프로라는 그 무게 때문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번호를 까마득한 후배에게 물려주는 모습도 멋졌고
무엇보다도 울지 않으려고 참고 참는 모습이 은퇴식 내내 아름다웠고
10년간의 2군 생활을 연습으로 참고 견뎠다는
그의 일생이 대단했고
영광스럽게 한 팀에서 선수 일생을 마무리한다는
바로 그 점이 더 대단했다.
프로팀에서의 한 팀 종신은 정말 힘든 일이다.
프로란 연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짓게 되는 직업인데
한 팀에 남는 다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인 이득을 조금은 포기했다는 뜻과도 통하는 것이다.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웬만한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랬기에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은퇴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를 잃으면(참으면) 다른 하나를 얻거나 따라오는 법이다.
그렇게 믿고 살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많은 순간들도 있었다만...
어제 담담히 보고 있는 나를 울컥하게 한 포인트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어린 딸의 눈물이었다.
무슨 행사인지 아빠가 어떤 마음일지 그런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어린 딸이 대신 눈물을 많이 흘려주었다.
야구 선수를 하느라 자신과 많이 놀아주지도 못했을 것이고
주말에 다른 아빠들처럼 물놀이를 가지도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주지도 못했을 것인데
그래서 불평이 나올 수 있을 그런 나이인데도
야구 선수를 그만한다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진심으로 아는 듯한 눈물이었다.
평생 과학교사였던 내가 정년퇴직을 할 때 나의 아들이 그렇게 눈물 한 방울 흘려주었다면
나는 참 많이 기쁘기도 슬프기도 했을 것 같다.
그것은 정말 수고했다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 장면은 오랫동안 자신이 서 있었던 유격수 포지션의 그라운드에 가서 조용히 흙을 쓸어담고
입을 맞추던 그 모습이었다.
수백만번 서 있었던 그 자리가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자리가 아니라는 그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올해 1월 27일 그렇게 내가 열심히 일하던 책상을 정리하였었다.
입을 맞추지는 않았다만 마지막에 물휴지로 책상을 구석구석 닦아주었었다.
아마도 그때 내 마음이 어제 늦은 저녁 김재호 선수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관련 SNS를 챙겨보고는 마치 올해
1월 27일처럼 그런 마음으로 늦게 잠에 들었었다.
오늘은 그렇게 마무리했던 나의 마지막 학교에
여름방학 방과후 특강을 하러 가는 날이다.
낮익은 그 곳에 다른 직위의 외부 강사가 되어 방문하는 날이지만
여전한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니 기쁘고 설렌다.
마치 김재호 선수가 <불꽃야구>에서 야구 선수로서의 순간들을 이어나가는 그 기분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김재호 선수에게 나의 처지를 대입시키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어제 인스타에 보니 김재호 선수도 <불꽃야구>
지방 시합 출정을 위해 곧바로 출동한 것으로 보인다.
몸과 마음이 힘들텐데 힘든 것은
좋아하는 그리고 잘하는 야구로 잊는게 최고이다.
마지막이 아름다우면 된거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이후에도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면 아름다운 거다.
나도 그도 파이팅이다.
(어제 두산 후배들이 보여준 멋진 역전 드라마도 멋졌다. 그리고 이제 막 프로야구 선수로 입문한 신입
박찬형 선수도 3안타를 치는 멋지고 절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꼭 다문 입술과 야무진 눈빛을 오래토록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