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처럼 실수의 허물을 벗고 싶다만.
오전의 산뜻한 출발과는 다르게 점심부터는 사소한 실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소해서 더 기분이 나쁘고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왜일까?
먼저 흰 바지를 입고 나선 것부터가 잘못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손의 세밀한 잔근육의 컨트롤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왜 아무 생각 없이 흰 바지를 입고 나선 것이냐?
더군다나 점심은 중국 음식점이었는데 말이다.
주말 점심 중국음식점에서 오랜만에 짬뽕을 시켜놓고는 위에 있는 해물 건더기와 국물만 먹고
면은 손도 대지 못했던 경험 때문에 오늘은 꼭 밥을 시키리라 생각했었다.
약속 시간 15분 전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그 건물을 오랜만에 살펴보고(전시장은 리뉴얼 중이더라)
중국음식점으로 내려가서 잡채밥을 시켰을 때까지는
흰 바지이니 음식을 묻히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치마도 목에 걸쳤었는데(윗도리는 검정색이었는데도)
아뿔싸 짬뽕 국물만 생각했나보다.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보니 김치 국물 한 방울 튀어 있다.
그것도 윗도리로 도저히 가려지지 않는 정중앙이다.
누가 내 바지를 쳐다볼 것이냐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고
나의 하찮은 젓가락질 능력이 한심할 뿐이다.
집에 귀가하자마자 그 바지를 세탁기에 집어 던졌다.
남편은 항암 주사가 6시나 되어서야 끝난다하니 먼저 간단하게 밥을 먹어야지 생각하고
남아있던 돼지고기를 양배추, 양파와 고추장 베이스로 볶아야지 생각했다.
마침 똑 떨어진 오일 생각이 나서 친한 후배가 선물로 준 첨단 스프레이식 오일을 꺼냈다.
그런데 스프레이가 작동이 안되는 듯 하다.
이리저리 돌리고 뿌려보다가 하필 내 눈 쪽으로 스프레이를 대고는 분사를 시킨거다.
세상에 순식간에 앞이 뿌옇게 된다.
안경위로 기름막이 한겹 생겼다.
가뜩이나 오래되어서 이번 생활지원금으로 안경을 통째로 바꿀까, 렌즈만 바꿀까를 고민중이었는데
(이제는 렌즈를 닦아도 닦아도 잘 안보인다.)
이번 오일 스프레이가 직격탄을 때려준 것이다.
그 한번의 분사로 안경, 얼굴, 개수대 주변까지 어떻게 그렇게 골고루 오일이 퍼진 것인지
그 능력에 놀랄뿐이다.
얼굴을 닦아내고 안경알을 닦고 주변을 청소하느라
돼지고기 고추장 볶음하는 시간의 두 배는 걸린 듯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거의 10년을 사용한 안경을 조만간 바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에나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내 얼굴에 대고 스프레이를 누를 생각을 한단 말이냐.
그나마 안경을 썼으니 망정이지 안경알이 없었더라면 눈으로 들어갈 뻔 했다.
오늘의 액땜이라 생각하련다.
남편이 더 나빠진 점은 없다하고
오늘 학생들과 함께 한 스펙트럼 실험도 잘 되었고
그동안 실험 준비물을 부탁드렸던 업체 사장님도 오랜만에 얼굴을 뵈었고
(이후에도 도움을 받을 일이 많이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오늘 저녁 8시에는 내 최애 <불꽃야구> 본방이 기다리고 있다.
사소한 실수는 누구나 한다.
나에게만 특정된 실수는 아닐 것이라 너그럽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이 글을 다 쓴 지금까지도 마음에 앙금이 되어 가라앉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저 사진의 매미가 껍질을 홀라당 벗어던지듯이
오늘의 사소한 실수가 사라진다면
참으로 마음이 개운하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