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단골집 리스트업

많을수록 좋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여러 곳을 다니며 살았고

여러 종목의 다양한 상점들을 방문하게 되었으나

좋고 싫고 마음에 들고 안들고의 판단은

거의 길게는 5분 짧게는 1분만에 내려지는 듯하다.

나만 이렇게 빠른 판단과 손절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거의 동물적인 감각 수준이다.

물론 내 판단이 다 맞지는 않는다. 그럴수도 없고.


일단 상점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에도 나의 필요와 취향이 반영된다.

필요성은 있더라도 취향이 아니면 아예 진입조차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옷의 경우에는 아이쇼핑을 하기는 한다만

그것도 밖에 걸어둔 혹은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것 중에 내 스타일이 있는 경우이지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곳을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진입을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공간이나 색이 주는 이끌림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세련되거나 유니크한 공간과 색이 있으면

한번 들어가볼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렇게 심사숙고가 아닌 주로 감에 의해서 결정된 상점에서의 첫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갈 곳과 아닌 곳을 결정하게 되고

약간 애매한 곳은 한번은 더 가보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장소는 단골집 리스트에 올라갈 자격이 있는 곳이다.


내가 단골집이라고 이름 붙인 곳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어제 겨울용 바지를 산 광화문 옷집이다.

일단 사장님의 선호하는 옷 스타일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비슷하다.

옷감의 고퀄 단순 귀염 디자인

그러면서도 유니크한 작은 포인트 하나.

이것이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또 옷 스타일 못지않게 좋은 식물 스타일이 있다.

몇 종류의 꽃을 멋진 화병에 담아두는데 그것이 최고 수준의 감각이다.

오늘의 대문 사진이다. 저 꽃을 각각 다른 사이즈와 모양의 화병에 넣어 세 곳에 그림처럼 전시해두었다.

게다가 손재주가 좋아서 작은 가방을 직접 만드신다.

가죽 혹은 펠트 가방인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하면서도 멋진 가방이고

어제는 가느다란 줄 하나에 실버고리 하나를 묶은 팔찌를 보여줬는데(시범 착용중이라 했다.)

그것도 그렇게 심플하면서 멋졌다. 구매 의사 분명하다.

이러니 내가 감히 단골집이라고 명명을 해준다.

주위에 소개도 많이 해주었다.

직장에 나가는 한 분기별 한번쯤의 방문은 계속될 예정이다.


친구와 함께 가느라 단골집이 되어버린 미용실도 있다.

마침 머리를 만져주시는 원장님이 나이도 우리와 비슷하고

따라서 옛날 이야기하기에도 뻘쭘하지 않고

늙은이들을 위한 머리 모양의 필요성도 잘 알고 있고

내 머리통과 머릿결을 방문 한 번만에 싹 다 파악하고 있으니

다른 주문과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녀의 손끝에서 나의 트래이드였던 칼단발 머리가 2년쯤 유지되었고

이제는 약간의 파마기를 포함한 동그란 커트머리 형태인데

지금 형태가 더 손질이 편리하고 지속가능한 형태이다.

한달 반 정도만에 한 번씩 하는 염색과 머리 손질 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멀리 이사를 가더라도 방문할 의사가 분명하다.


그리고 요즈음 내 단골집으로 급부상한 반찬집이 있는데

나 혼자라면 절대 방문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는 하다.

한 팩의 양이 꽤 되니 말이다.

그러나 남편이 있으니 그리고 다양한 먹는 것이 필요하니

나의 필요와 검색 끝에 찾아낸 곳이었는데 만족도는 높다.

내 노동의 강도를 훨씬 줄여주고 다른 맛도 느끼게 해주니 말이다.

물론 모든 음식이 다 나와 맞을 수는 없다.

나는 짜지 않고 맵지 않고 달지 않은 음식을 선호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고 나이 들면서 그렇게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그런데 바쁘고 무릎을 다치고 하다보니 못간지 꽤 되었다.

오늘은 꼭 방문 예정이다.

그래야 다음 주 1주일 식단 준비에 조금은 여유가 생길 듯 하다.

무엇을 살지 염두에 두고 방문한 적은 별로 없고

가봐서 끌리는 것을 사는데 내 눈과 감각을 믿어보는 수 밖에.

그런데 이사가면 이곳의 도움을 받는 것은 끝이겠고

그곳 주변에서 또 좋은 반찬집을 찾아봐야하는 일이 부여될 예정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참 단순하다.

그냥 감으로 느낌으로 고르는 것도 많으니 말이다.

생활 자체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편은 못된다.

태어날때부터 자연계는 절대 아닌 셈이고

원래 바탕은 인문계이나 억지로 억지로 자연계의 성향을 집어넣은 그런 스타일이다.

단골집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인정하는 곳들이 생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전적으로 믿는다는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단골집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해보는 아침이다.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 생각나고 스스럼없이 연락할 수 있는 관계.

아마도 인간관계에서의 단골집이 아닐까?

나는 친구 몇 명과 후배 몇 명이 있는 듯 하다.

그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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