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이냐 날파리냐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분명 어려서는 먹고싶어 난리였는데
나에게 바나나란 부잣집 먹거리였고
소풍날만 주어지는 보너스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흔해지더니
미끈덩거리는 느낌때문인지(그런 류의 식감을 좋아라하지 않는다. 연어도)
아니면 나의 과도한 목막힘 현상때문인지
그냥 깔끔한 과일(사과나 복숭아)에 비해 그닥 선호하지 않는 과일이 되었다.
쥬스나 스무디를 만들어먹을때 넣기도 하는데
금방 변색이 일어나기도 해서 모양이 영 그렇다.
따라서 바나나는 항상 최소 수량으로만 구입한다.
지난주 금요일 퇴근하고 갔더니
남편이 전통시장으로 운동삼아 출동해서
본인이 생각하는 항암에 좋은 먹거리를 사다놨더라.
토마토, 오이고추, 땅콩, 그리고 바나나가 있었다.
바나나 예닐곱개 묶음이었다.
약간 설익은 것들이라 전자렌지옆에 놓아두었고
나는 딱 한개를 월요일 아침으로 가져가서 먹었고
어제 저녁에 네 개 정도가 남아있었고
완전 숙성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오랫만에 퇴근 후 집에 온 아들 녀석이 날파리가 있다면서 싫은 소리를 한다.
아뿔싸.
바나나가 날파리를 불러오는 주 매개체임을 잠시 잊었었다.
재빨리 까서 쥬스용으로 냉동고로 집어넣었지만
눈 앞의 날파리(초파리인가?) 두 마리까지 처치하지는 못했다.
남편은 날파리가 뭐가 중한디? 하는 표정이다.
저 바나나가 삼천원이라 싸고 양이 많아서 샀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표정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꼭 먹을만큼 조금만 그때그때 사는 스타일인데
시어머님은 손이 엄청 크신 분이셨으니
평생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남편이 나를 이해할리 없다.
나와 아들 녀석은 벌레 특히 날라다니는것을 질색한다.
고양이 설이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내가 함께 먹을거라는 기대는 하지말고
구입하라는 말로 타협점을 찾았으나
남편은 도통 못마땅한 눈치이다.
싸고 양이 많으면 좋다는 지극히 양 중심적인 논리와
실용성과 보관성을 중시하는 질 중심적인 논리의
양면적인 대립이다.
서로의 생각의 간극을 좁히기는 어렵다.
내일 아침 바나나와 사과넣고 스무디나 만들어 줄 수 밖에.
그나저나 그 옛날 부의 상징이던 바나나의 몰락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것이겠다만.
절약이냐 날파리냐.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날파리 없는것에 올인할테다.
대학교에는 대문 사진처럼 가을이 완연하다.
날파리나 초파리는 없을거다. 추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