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벽 사이
당신은 김치찌개 레시피를 생각하면서
된장찌개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내 대답은 Yes
물론 실제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를 한 것이다
내가 정해놓은 시퀀스(수업 동작)를 하는 도중에 다른 목소리들이 치고 들어온다
센터의 공간을 분리하고자 만들어놓은 가벽은 내 몰입과 집중을 방해한다
마치 순탄하게 직진하고 있는 차량에 갑자기 여러 차들이 끼어드는 느낌이다
지금 이 순간 정신집중하지 않으면 내 수업은 마치 만들다 만 요리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이다
수업을 듣는 회원들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센터 인테리어는 저마다 개성이 강하다
파티션으로 벽 윗부분이 뚫린 채로 공간 섹션만 나누었는지, 아니면 완전히 천장 끝까지 마감처리를 하여 온전히 방으로 구분했는지에 따라 수업 진행에 큰 차이가 있다
방 섹션만 나눠놓은 채 같은 천장을 쓰는 경우 피크시간에 정말 대환장파티이다
머리가 울려서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넓은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목소리가 울리면서 서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회원님들 자세를 잡아주다가 잠깐 큐잉이라도 멈추는 순간 파티션 하나를 두고 옆 수업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오면서 내가 그전에 몇 회까지 횟수를 세었는지 까먹는 건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피크시간에는 항상 초집중해야 하며 나는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면서 횟수를 까먹지 않도록 한다
아마 센터입장에서는 방을 분리할 경우 금액적으로 많이 들기에 외관상 큰 문제가 없으니 대부분 벽으로 구분만 해놓는 것으로 추측해 본다
방으로 분리하면 수업 집중도에 좋지만 난방과 환기 등 비용적으로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헬스장의 경우 오픈된 곳에서 각자 수업을 하더라도 기구마다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반면
필라테스는 수업 전 강사님들끼리 상의를 해서 어떤 기구를 쓸 건지 정해놓은 후 그 기구만 지정해서 써야 한다
장소와 기구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벽이 뚫려있으면 불편한 점이 또 있다
원장실, 수업을 진행하는 룸, 샤워실과 탈의실 모두 천장 전체가 하나로 오픈되어 있어서 어떤 말을 해도 회원과 둘이서만 친밀감 형성을 하는 것이 아닌 센터에 있는 모두와 같이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
더 조심스러워지고 내 퍼포먼스가 100% 나오기 힘들 때가 있다
심지어 원장님이 원장실에서 타자 치는 소리까지 다 들리니 말 다한 것이다
소리가 다 오픈되어 있는 환경에서는 큐잉법을 베끼는 일도 부지기수다
내 큐잉을 다른 강사님들이 똑같이 따라 하니 내 자아가 동시에 여러 명이 말하는 것 같아서 집중하기가 힘들다
수업 진행하는 톤, 말투, 엑센트, 그리고 사소한 추임새 하나하나까지 따라 하니 모를 수가 없다
한편으로 나도 여러 수업을 들어보고 성장했기에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고 그만큼 내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회원님이 오갈 때 하는 인사, 수업 시작 때 쓰는 멘트까지 그대로 베껴서 나와 같은 시간에 대놓고 사용한다는 것은 조금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끔은 얄밉기도 하다
그래서 공간이 오픈된 센터일수록 전체적으로 수업톤과 티칭법이 비슷하다고 생각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점점 같은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업하다 보니 비슷해진 것이다
번외로 수업 중 예비 필라테스 강사님들이 회원님으로 참여해 핸드폰으로 수업내용을 녹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모르는 척하는 것일 뿐 다 알 수 있다
밥그릇 싸움도 참 여성스러운 필라테스 센터
오늘도 센터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일하고 뒤돌아 한숨 쉬며 퇴근을 한다
에휴 기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