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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free Feb 01. 2023

필라테스 센터와 떡값

사소한 것으로부터 움직이는 마음



몇 년 전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온라인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나 업무가 가능하여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코로나 시기에 급부상한 단어다

나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공간에서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하는 '아날로그 유목민'이다

먼 과거에 먹을 것을 찾아 말을 타고 초원을 돌아다녔다면 요즘엔 근로조건이 더 좋은 곳으로 떠나는 유목민 말이다


아, 동물로 치면 하이에나라고 할 수 있겠다




20대 때는 체육 분야 안에서 어떤 쪽으로 근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좋을지 직접 일해보며 적성을 찾아보자는 마인드로, 하고 싶은 것은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다

평범한 서민으로 유학이나 연수 같이 비용이 드는 쪽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직접 돈도 벌고 경험이 가능한 관심 분야 취업을 선택했다


보통 일이 능숙해졌을 때 이만하면 됐다는 느낌으로 1~3년 내에 퇴사하였고 최소한의 가용자금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와서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루틴이었다

퇴사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개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 바로 사표를 던지는 편이었다

업무, 비전, 업계 분위기, 나의 의지 등의 이유로 말이다

쓸데없이 직감을 믿는 편이었기에 프로 퇴사러가 되었고 덕분에 다양한 형태의 갑질과 고생길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이제 자주 퇴사하기엔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는 맞지만 예전처럼 해맑게 웃으며 열정페이로만 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친구들을 키워 입맛에 맞추어 부릴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현재 내 나이로는 그에 맞는 커리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젠 섣불리 지원하기보다는 신중하게 알아보고 오래 일할 수 있는 곳들을 찾자는 결론이 나왔다

선택기준은 급여, 위치, 관리자의 인성, 시설 등 언급된 순서대로 고려한다


예전엔 시켜주면 그저 감사한 마음에 위치나 급여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일하던 때가 있었지만

현재는 체력이 인성인 나이가 되다 보니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내키지 않은 일에 번아웃이 오기 쉽기 때문에 면접 시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올 경우 신중하게 결정한다




나는 현재 평일에 두 군데의 센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편의상 A센터, B센터라고 하겠다


A센터는 현재 근무한 지 삼 년째 되어간다

결혼 준비를 하며 오랫동안 살던 지역으로부터 멀리 이사를 왔기에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며 근무하게 된 곳인데 좋은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근무 중이다


B센터는 현재 근무한 지 세 달째 되어간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수업 시수가 많이 줄어들며 센터가 힘들어지자 일을 늘리기 위해 구한 곳이었다

수업이 줄어들면서 쉬는 시간이 늘어나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불안했다

필라테스가 아닌 다른 분야를 도전해 보았으나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시작하여 익히는 시간조차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아니니 성급한 마음에 일을 그르쳤다

당장 금전적으로 가정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센터 한 곳을 더 구하게 되었다

다른 것에 도전해 볼 수 있었던 기회비용을 날린 것에 대하여 후회는 없다

어차피 불안정하게 무기한 쉰다고 한들 내가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자신도 없고 실제로도 남는 시간은 우울하고 게으른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센터 두 곳은 거주지와 가까워서 하루에 여러 번의 출퇴근과 새벽수업, 야간수업도 가능하다

새로 일하게 된 B센터는 그동안 일해본 센터들에 비해 색다른 분위기이며 아직 적응 중이다

운영방식에 대해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어차피 나는 파트타임 강사이고 돈만 제때 받으면 되었다

애정을 가지고 센터에 개입하는 순간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보다는 악화된 경험이 많았어서 직원을 수평이 아닌 수직구조로 인식하는 윗선들을 대상으로 서툴게 개입할 바에 그냥 조용히 내 일만 하고 사라지자는 마인드가 다년간 경험으로 깊이 새겨졌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고 퇴근과 함께 강사라는 직업에서 바로 빠져나와

한 개인으로서 일과 별개인 생활을 하다 보니 정신건강이 한결 나아졌다

이것이 결코 잘하는 방법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길고 얇은 직업수명 유지에는 좋다고 할 수 있다




명절 연휴 전날

A센터에서 선물세트를 받고 나니 B센터에서는 명절연휴를 어떻게 맞이할지 궁금해졌다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일했던 곳에서 해마다 성의표시를 해왔기에 크기 상관없이 감사한 마음과 함께 소속감은 덤으로 따라오며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놀랍게도 B센터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관리자는 즐거운 명절 보내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저녁 10시 30분. 빈손으로 터덜터덜 퇴근하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사소한 걸로 서운해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았다


'내가 아직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파트타임 강사라 전임들에게만 주는 걸까'

'공평하게 모든 강사에게 안 주는 걸까'


여러 가지 의문과 함께 살짝 찝찝한 마음으로 퇴근을 한다


오늘도 생각한다

이곳을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동기부여를  대표님에게 심심한 감사를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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