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버(giver) 마인드
일을 하다 보면 점점 정이 들게 되고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어디에 사는지, 주말엔 뭐 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도 불구하고 나는 센터에서 같이 근무하는 강사님들에게 되도록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첫째는 과거 정치질에 데인 경험이 있고 여초무리의 질투심으로 집단에 끼지 못하여 아웃사이더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학비 때문에 꾸역꾸역 다녔다
결국 근무 외적으로 친목이라는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일하는 데 오히려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직장에서 모든 일을 적당히 웃어넘기는 외로운 회피형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는 신경이 많이 쓰이기 때문에.
회사라는 한 공간에 저마다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영향을 받기 쉽다
특히 나보다 기가 센 사람들을 상대로 잠깐 정신을 놓는 순간,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으로 휩쓸리기 십상이다
매일 다른 센터, 다른 시간, 불규칙하게 다수를 상대로 다양한 목적에 부합한 운동을 진행해야 하다 보니
일찍 출근해서 수업 준비하고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정리하고 화장실 한번 다녀오면 10분도 너무 짧다
거기에 회원님과 길게 대화하는 날은 다음 수업을 바로 이어서 하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 같이 일하는 강사님들 기분까지 맞춰주는 것은 힘들기에 그저 근무시간은 내 수업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다
매일 인사만 하고 가끔 스몰톡 하는 정도라서 아마도 다른 강사님들은 나를 로봇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가끔 성의표시로 간식이나 커피를 사가곤 한다
말보다는 돈이 최고다라는 정신승리와 함께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간 일하는 센터에서 최근에서야 한 강사님을 마주한 적이 있다
그분 역시 오래 일한 분인데 나와는 도무지 근무시간이 안 맞아 센터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밥도 못 먹고 최대한 수면에 시간을 쏟고 간신히 출근한 오전
센터에 단 둘이 있는데 오르골 노래를 틀면서 나를 환영하는 노래라고 했다
커피도 내 것까지 사다 놓고 맞이해 주니 없던 호감도 생기게 된다
강사님은 내 MBTI가 뭔지, 어디 사는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본인 MBTI는 ESFP라고 했다
나에게 환하게 웃으며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달려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막 하는데 너무 고마우면서도 내 분위기와 상반되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강사님과 같이 일하는 시간의 선생님들은 참 즐거웠을 텐데 괜히 나랑 같은 시간에 겹친 강사님들은 불편했으려나
피해 주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방어적인 행동이 오히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을까 괜스레 미안했다
한때 직장동료들에게 생일은 기본이고 빼빼로데이까지 챙기던 나였는데
때가 탈만큼 타버린 30대라서 그런 걸까
어느새 나누는 것 자체에 행복했던 기버(아낌없이 주는 사람)에서 매처(받는 만큼 주는 사람)가 되어버렸다
친한 주변사람들한테는 아직 기버인 것을 보면 그래도 본성이 어디 가지 않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언젠가 나중에 테이커(남들이 주는 정보만 조용히 몰래 빼먹는 사람)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주변을 잘 챙기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호감이 안 가려야 안 갈 수가 없다
그런 것을 잘 알면서도 부러워하기만 하는 나 자신이 작아 보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