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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wow Jun 21. 2024

비빔칼국수를 비비게 된 이유

화해의 기술

“엄마 때문이야! 엄마 때문이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난 한마디도 안 했는데?”

“엄마가 나 밥 먹지 말랬잖아!”

“으잉? 내가? “

아침부터 또 전쟁 시작이다.

일어나라 안 일어나겠다는 싸움은 너무나 지겨워 이젠 깨우지 않기로 한 후로 하루만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 아이가 7시 30분인데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싸우기 싫어 이젠 깨우지 않겠다. 맞아요 깨우지 마세요.

이렇게 말을 해 버렸으니 깨우면 안 된다.

7시에 일어나서 30분 동안 밥을 먹고 나가기 위해 샤워를 해야 하는 녀석이 7시 30분인데도 자고 있으니 답답한 건 미리 깨어 있던 나뿐이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막내를 깨우기보다 바로 위에 누나를 깨워야겠다 생각했다.

누나는 고3인데 안 깨워도 잘 일어난다. 물론 새벽 4시까지 공부를 하다 잤어도말이다. 어찌나 기특한지 항상 엉덩이 텅텅텅 쳐주며 칭찬해 주는 귀여운 딸이다.

하지만 우리 막내는 중2다. 중2병이 물씬 풍기는 녀석이다.

이 녀석을 불과 얼마 전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끌어안고 사랑타령하며 키워냈것만 어느새 이렇게 변해버린 건지 항상 눈 흘기고 지낸다.

그런 중2를 깨우기 위해 안 깨워도 될 고3을 소리 질러 불렀다.

”고3아 일어나. “

“네 일어났어요”

일어났다잖냐. 하지만 난 못 들은 척 다시 소리친다.

“고3아 일어나라고! 또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지 말고!”

맞다 고3은 학교까지 잘 걸어 다니는 아이인데 얼마나 예쁜지 매번 내가 일부러 차로 데려다준다. 그런 아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문밖을 나와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 저 일어났다니깐요”

나는 윙크를 해가며 눈치를 주고 한마디 더한다.

“도대체 몇 번을 불러야 일어나냐 빨리 일어나야지. 얼른 씻고 저기 위에 밥 차려놓은 거 먹어”

우리 고3은 밥을 먹지 않는다. 예대입시준비로 다이어트 중이기도 하고 원래 아침을 안 먹는다.

그것과는 달리 중2는 아침밥에 완전 목숨을 건다. 아침에 거한상을 차려주면 30분 동안 먹는 것이다. 고기반찬에 국 그리고 많은 반찬들로 골고루 잘도 먹는다.

그런 아이의 밥상인건 우리 가족 모두 아는 것인데 내가 지금 그 밥상을 고3 이에게 먹으라 했다.

그게 오늘 사건의 중요한 시발점인 건 몰랐을까?

갑자기 거실 소파에서 자던 중2가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더니 쾅쾅 고릴라처럼 걷더니 화장실문을 부서져라 닫고 들어가 버린다.


화장실에 들어간 후로 고3딸과 서로 눈을 마주 보다가, 화장실 쪽을 바라보다가, 멍하게 서 있다.

“내가 뭘 잘못한 거니? “

“음.. 글쎄요.”

“얼른 먹기로 했으니 먹어라.”

“조금만 주세요.”

아이가 조금만 달라는 말에 밥을 모닝빵 반만큼만 덜어 먹으라 주었다.

그리고는 딸 데려다 주기 위해 화장실 가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시계를 보니 이제 8시다.

이젠 10분 안에 중2아들이 나가야 한다.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놓은 등교시간이다.

그래서 아들방 문을 열어봤다.

옷은 잠옷 그대로 폰을 보고 책상의자에 다리를 쭉 뻗고 기괴하게 앉아있다.

“어머 너 뭐야? 왜 옷이 그대로야? 학교 갈 준비 안 했어?”

“엄마 때문이야! 엄마 때문이라고!”

느닷없이 날리는 폭탄발언에 황당하고 기가 막힌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난 한마디도 안 했는데?”

“엄마가 나 밥 먹지 말랬잖아!”

“으잉? 내가? “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중2의 밥을 고3에게 먹으라 했던 게 생각났다.

“너 밥 먹을 시간 지났길래 누나 먹으라 한 거지 너보고 먹지 말라 한 건 아냐”

눈을 껌뻑대며 가만히 듣는 건 또 귀엽다.

“그리고 난 밥 다시 차려놨어. 못 봤어?”

표정은 이미 오잉? 그랬었나?라는 표정이지만 지고 싶지는 않았는지 갑자기 소리 지르는 중2다

“아~~~~ 몰라 엄마 때문이야 엄마 때문에 시간도 다 꼬이고 다 망했어!”

맞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밥 먹으며 영어말하기 대회의 대사를 외우기로 했다.

본인이 늦게 일어나 시작된 모든 일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싶은가 보다. 중2병 말기다.

“난 조금 후에 나가야 하고 넌 빨리 준비하고 나가 밥은 먹던지 말 던 지”

그렇게 말하고는 난 일부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왜냐면 내가 떡하니 거실에 앉아있으면 아이가 밥을 먹기엔 자존심이 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방으로 가서 이불도 정리하고 머리도 다시 만졌다. 그러다 보니 식탁에서 덜그럭 소리가 난다.

참 신기하게도 아침밥을 저렇게나 찾아대는 건 도대체 누구를 닮은 것일까. 신기하다.

밥을 다 먹은 아이가 샤워는 포기하고 옷을 입고 학교로 갔다.

나는 고3을 데려다주고 카페에 혼자 앉아 멍하니 오늘아침을 되새긴다.

가만히 있는 나를 미치도록 흔들어 버리는 중2 아들이다.

흔들릴 때마다 풍성했던 나의 나무에 잔가지들이 마구 떨어져 버려 늙고 또 늙는 기분이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다 마트에 들러 칼국수면과 오이를 샀다.

4시쯤 되면 아침에 그 난리를 치고 간 중2가 돌아온다.

나는 그 사이 사우나를 가서 멍하니 또 아침의 일을 생각하며 더 성숙한 엄마가 되기 위해 다짐의 다짐을 해본다


4시.

아들이 왔다.

우리 아들은 그렇게 나올지 알았다.

멋쩍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를 두 번 불러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것이다.

“엄마, 엄마, 오늘 영어말하기 대회말이에요”

“잠깐! 사과부터 해”

“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 익숙하지만 설명은 해준다.

“너 아침에 이유 없이 엄마한테 지랄한 거 사과해”

“음. 미안해요.”

“아침부터 네가 깨우지 말라 했고 난 안 깨웠어. 그리고 너 밥은 식탁에 계속 있었어”

“미안해요 잠이 덜 깼나 봐요”

사과를 하랬더니 진짜 사과를 한다. 그럼 아무렇지 않은 듯 최대한 쿨한 척 대답해야 한다.


“오케이 이젠 말해. 영어대회가 왜”


좋았다. 이 정도면 쿨한 척한 것이겠지. 사실 쿨하진 않다.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찮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 뭐 그런 것 때문이라도 중2 아이가 사과를 하면 납작 엎드려 받아야 하느니...


“그거 대사 다 외워서 잘했어요. 15점 만점인데 14점이고요 친구 @@는 영어 잘하는 친구라 혼자 15점 만점이래요. 15점 14점 13점 받은 사람만 불러줬는데 몇 명 안 되어요."

“응 잘했네 너 잘했으면 됐어. 이거 먹어”

계속 말하려고 하는 아이를 위해 아까 사 온 칼국수면을 삶고 오이를 썰었다.


칼국수비빔면 레시피

고춧가루 1스푼
설탕 반스푼
참기름 1스푼
깨 1 티스푼
생강가루 반티스푼
식초 2스푼
시판초고추장 2스푼



“너 오는 시간 맞춰 만들어놨어. 너 이거 좋아하잖아. 근데 좀 있으면 누나가 하교해. 누나 다이어트해야 해서 이거 못 먹으니깐 얼른 먹어.”

“와 너무 맛있어 보여요 와 군침 돈다.”

“칼국수면으로 만든 거야 진짜 맛있을 거야”

“후루룩 후루룩 엄마 정말 맛있어요"


아들과 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고 하루를 보내본 날이다.

이 사춘기도 언젠간 지나갈 것을 난 잘 안다.

22살 딸과 고3딸을 키워낸 거 보면 그렇다.

하지만 중2아들은 조금 더 어렵긴 하다.

그래도 상대하기 정말 어려운 시간만 있는 건 아니다.

사과하라니깐 하기 때문이다.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를 해줬을 때의 마음의 안도감은 이 세상 사춘기를 키우는 엄마들이면 모두 잘 알 것이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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