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로루디 Aug 15. 2022

고추 절단기를 선물해 주고 싶은 그대들에게(2)

친척에서부터 아는 선배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까지.


난생 처음으로 마주한 거대한 인간 집단에서 사회화를 익히며 느낀 것 중 가장 강력한 사실은 바로 '여성은 언제나 항상 어떤 경우에도 늘 평가받는다' 였다. 그 여성이 자리에 있든 없든 간에.  남자들은 끊임없이 이제 막 미성년자를 벗어난 여자들에게 달려들었고 구애를 했고 사귀고 헤어졌는데 그 사실들을 일일이 고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사람마냥 동네방네 사방에 모두 떠들고 다녔다. 인간 대 인간이 교제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상대 여성을 '선택' 하는 그들이 문제였다. 이제 막 입학한 어린 애들을 (빠른년생 아이들은 아직도 미성년자였다) 눈에 빤히 보이는 수로 이용하고 가스라이팅하고 그들의 목적을 이룬 채 버리고 다시 갈아타는. 누구랑 잤고, 누구는 남자친구를 많이 사귀어 봤을 것 같다는 추측, 동의 없이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그녀들이 있건 말건 외모 순위를 매겨 취향 투표를 한다던지, 마음에 드는 여성을 '가지기' 위해 '공을 들이고' 나중에는 목적을 달성해 자랑하듯 떠벌리는 것이 문제였다. 언젠가 제법 친하다고 생각했던 남자 동기에게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야' 라는 그 전설의 문장을 말하는 것을 귀로 직접 들었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냐며 대화 주제를 돌리려 하니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져 와인이지만, 여자는 스물 다섯 살이 넘으면 그 어디에서도 찾지 않는 쓰레기 신세가 된다' 라며 끝까지 말을 이어나갔다. 결국 '와인도 좋은 포도로 만들어야 와인이 되는 거 아니야? 애초에 상태가 안 좋은 포도로 만들면 그건 와인이 아니라 쓰레기지' 라고 응수했더니 상대는 입을 다물었다. 그 때는 페미니즘이 대한민국에서 큰 화두가 되기 전이었고, 나는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을 몸에 새기며 살았던 때였다. 그런 나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할 정도로 이상하고 불쾌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사회가 모든 사회의 모습이었다. 


차라리 그 정도였다면, 주변에서 일찍 사회에 진입한 친구들에게 들은 경고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나는 나를 제외한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와 증언을 들었다. 성범죄 증언. 성추행, 성폭행, 성희롱, 방법도 정말 가지가지인지라 뉴스에서 들려오던 일들이 하나, 둘씩 실체가 되었다. 아니,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범죄들은 이미 실체가 된 지 오래였고, 그것을 나는 한 발 늦게 알아차린 것이었다. 범죄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넓고 깊어 구역질이 났다. 선배들의 말을 듣다 보니 아, 이건 그냥 뿌리를 따질 수 없는 아주 고질적인 문제구나, 생각이 들었다. 대학마다 대자보가 붙고 폭로가 이어졌다. 연대는 했지만 그 문제들이 내 앞에 닥친 현실처럼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눈앞의 이들이 가면을 쓰고 그렇게 뒤에서 쓰레기만도 못할 짓을 하리라고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3. 말로만 듣던 '지인능욕' 


어느 날 수업 시간이었다. 그 수업의 인원 편성은 정말 기묘해서 학부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 학부 사람들만 여덟 명이나 되었다. 수강 인원이 적어 우리 학부는 인원의 반 가량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전공 수업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길 정도였다. 우리 학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알고 지냈기에 그 수업은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놀이터와 다를 바 었었다. 그 날도 수업 듣기 반, 메신저 반으로 겨우 시간을 버텨내고 있었는데 문득 친구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사진 한 장이었다. 


한 SNS 계정을 캡쳐한 사진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프로필 사진. 누가 봐도 자주 마주치고 전공 수업도 같이 들었던 익숙한 얼굴의 남자 선배였다. 마침 위치도 그 선배가 사는 지역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프로필 설명. 워낙 실명을 쓰는 것이 드문 플랫폼이었기에 가명은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 아래 적힌 계정 소개글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원하는 글 써드립니다. 지인능욕. DM 가능. 그리고 거기에 무슨 가격을 제시한 것 같았다. 직접적인 지불 방식이 아닌 간접적인 지불 방식으로. 사실 위 문구와 첫 게시물 외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충격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학부에서 몇 안 되는 '괜찮은 사람' 으로 통했다. 사람과 사람 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출 줄 알았고, 후배들의 말을 잘 들어 주고, 예술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고.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페미니즘에 긍정적 관심을 가지고 밤늦게까지 토론이 가능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지인 능욕' 을 보는 순간 도대체 이 인간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올린 글을 보았다. 계정은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글이 두 개밖에 없었고, 프로필 소개와 비슷한 계정 소개글 하나,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선정적인 글이 하나였다. 그 선정적인 글은 말이 '선정적'이지, 매우 저열하고 저급했다. 너무나 더러워 나는 핸드폰을 말 그대로 책상 위에 집어던졌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같은 수업을 듣는 같은 학부 사람들은 여덟 명이다. 우리는 가까운 자리에 앉았고, 여덟 명 중 여섯 명이 남자였다. 그걸 그 전에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더러운 캡쳐본을 본 순간, 내 주변을 둘러싼 아는 얼굴들이 한없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동기나 선후배가 아닌, '남자' 라는 성별로 인식한 첫 순간이었다. 그들은 나름 선을 넘지 않는 '괜찮은 사람들' 이었다. 누구처럼.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위협감과 두려움이 나를 벌벌 떨게 했다. 문자 그대로 나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함께 남은 강의 시간 내내 사시나무 떨듯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몸이 차갑게 식으며 바들바들 떨렸고, 머리는 무거운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하고 멍했다. 가까이 해도 괜찮은 사람이라 판단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저열함의 끝을 달릴 때, 그리고 괜찮은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오던 내 기준이 무너져 혼란을 일으킬 때.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던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기분. 아직도 모골이 송연할 만큼 섬뜩한 경험이었다. 누구든, 정말 누구든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을 둘러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 중 그런 컨텐츠를 소비한 사람이 있을까? 모두 알고는 있을까?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지인 능욕' 컨텐츠를 하겠다던 트위터 계정은 암암리에 학우들 사이에 돌아다니다 한 선배가 '이거 너냐?' 며 계정주에게 대놓고 물어본 뒤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고, 그 사람은 거기에 대한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학교를 다니다 졸업했으며, 지금은 '예술가' 로 이름을 서서히 알려가는 중이다. 어떻게든 그 때의 캡쳐본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무슨 수를 써도 찾을 수가 없다. 혹시 몰라 저장해 둔 기억은 있는데, 그 사진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더럽고 싫증이 나 삭제해 버린 것 같다. 



4. 사귀지도 않는데 갑자기 신혼 여행지부터 손자 손녀까지 생긴 썰 푼다


몇 년 전 어느 날, 영국으로 혼자 여행을 갔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영국이었다. 엑셀로 만들어 둔 나만의 계획표를 들고 언제나 그랬듯 여행길에 나섰는데 한 남자가 나를 계속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인종차별은 아닌 것 같았지만 심하게 따라붙는 게 캣콜링 같아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가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돌아 하루의 끝, 멀리 떨어진 어느 성당을 방문하려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 그 남자를 또 만났다. 정말 신기한 우연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던 상태였고 그는 버스를 타려던 모양새였는데 서로를 발견하고 순간 멈춰 있을 정도로 크나큰 우연이었다. 그 사람은 애써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해외에서 지나가다 마주쳐 스몰 토크를 하고 친구가 생긴 케이스가 있었던 나는 이것도 인연이네 싶어 길을 걸으며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자신을 영국에 10년 살고 있는 타지 사람이라 소개했고 하필 그 타지를 몇 년 전 방문한 적 있는 나는 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네가 영국에 있는 동안 잠깐 런던 구석구석을 소개시켜줘도 될까? 다른 의도는 전혀 없어." 나는 그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넘겨 주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그는 퇴근을 한 뒤 하루 일정을 끝내가던 나를 만나 런던의 숨은 명소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같이 밥을 먹거나 카페를 가거나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두 시간 내내 걸었다. 가끔 그가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내비치길래 나는 '우리는 그냥 친구일 뿐' 이라는 입장을 30분에 한 번 전하다시피 했으며 그도 거기에 동의하며 '널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게' 라고 했다. 그렇게 3일을 각자 정말 건전하게 '걸어서 런던 속으로'를 찍으며 우정(이라고 생각했던)을 쌓았다. 런던을 떠날 때는 내 기차와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 주는 세심함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외국 여행 갔다가 좋은 친구 만들어 온 이야기다. 무서운 부분은 다음에 있다. 


며칠 후 메일이 왔다. 잘 도착했냐는 말로 시작한 메일은 이제 와서 말하지만 널 좋아했어 라는 뉘앙스의 문장들로 끝났다. 그래,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나는 그 부분은 아예 무시하고 잘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덕분에 여행을 잘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메일 내용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한 주의 일상을 전하면서, 지적하기 애매한,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말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무시로 일관했지만 한두 통 주고받다 보니 어쩐지 이상했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메일을 보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또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열어보자마자 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뒷목부터 뇌 속까지 소름이 돋아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영국에서부터 떠난 후까지 나는 그에게 우리가 친구라는 관계임을 계속 정립해왔고 그 역시 동의를 한 상태였다. 가끔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곤 했지만 서로 어쨌든 동의를 한 상태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 메일 안에는, 성희롱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문장들의 나열부터 자녀에 손자 계획까지 전부 담겨 있었다. 심지어 그는 내 직장의 SNS를 뒤져 내 신체 일부가 어쩌다 찍힌 사진을 발견했고, 그 사진을 가지고.. 입에 담기도 싫은 짓을 했다고도 고백했다. 아니, 여기 누구 물어본 사람?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 나와 함께 침대부터 시작해 신혼집을 구매하고 함께 늙어가서 손자손녀까지 본 시뮬레이션을 백 번은 돌린 것 같아 보였다. 


파랗게 질려서 그 날은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갔던 기억만 나는데, 걸어간 길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그냥 정신 차려 보니 집이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혹시 처신을 잘못한 게 있나 싶어 주변에게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미친 놈인 것 같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는 내 본국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고, 어떤 나라의 어떤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당장에라도 그가 내 직장 건물 앞에 서 있을 것 같아 두렵기만 했다. 가까운 나라에 사는 지인은 얼른 연차를 내고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이게 지금 내가 해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가, 싶어 외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우리는 그걸 친구라고 쓰고 데이트라고 읽기로 했어요. 3일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걸어다니기만 했다고? 근데 안 사귄다고?' 라며 놀리기 바빴던 친구들은 메일 내용을 읽자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 자라면서 별별 아르바이트를 해왔다던 한 친구는 '나 일하면서 정말 온갖 변태들 다 만나봤거든, 근데 이런 새끼 처음이다. 진짜 소름돋아. 이거 진짜 미친 새끼 아냐?' 라며 심각한 상황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이 놈은 미친 놈인 것이다. 


나는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작성해 보냈다. 순화해 말하면 '굉장히 불쾌하고 소름돋는 변태 새끼야, 나는 거듭 말했지만 너에게 관심도 없고 성적으로 어필한 적도 없다. 서로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성희롱과 위협을 지속하면 경찰에 신고해 버리겠다. 다시는 나에게 연락할 생각도 하지 마라'. 그리고 메일 주소를 차단했다. 결과는? 그는 다른 메일 주소들을 활용해 두 달 동안 나에게 지속적으로 메일을 보냈다. 대부분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다, 다시는 안 그럴게 같은 내용들이었지만 이미 그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므로 나는 대응하지 않았다. 다만 차단을 하고, 하고 또 해도 바퀴벌레처럼 새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기 때문에 '받은 편지함' 에 어느새 그가 보낸 메일이 계속 들어와 있고 발견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싫었다. 무대응으로 일관해도 계속되는 메일에 인터넷에 나도는 온갖 불쾌하고 무섭고 기괴한 사진들을 몇백 장씩 매크로를 돌려 보낼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저 네가 취하는 그 어떤 반응마저도 그 사람에게는 자극으로 다가올 거야' 라는 지인의 말에 생각을 접어야 했다. 잊을 만 하면 오고, 또 잊을 만하면 날아오던 그의 메일은 어느새 뚝 끊겼다. 드디어 자기가 소름돋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아니면 그 해 전세계를 강타한 전례없는 바이러스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나는 마음 속으로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 이후로 마음 속에 깊게 새긴 교훈들. 여행지에서는 무조건 혼자, 혹은 약속된 동행과 다닐 것.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말을 건다 한들 무시할 것. 아무리 스몰 토크로 시작해 좋은 친구가 된 케이스를 직접 여럿 겪었다고 해도 절대로, 절대로 반응하지 말 것. 그동안의 내 해외 생활 속 인연들은 전부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절대 그런 행운을 바라지 말 것. 덕분에 그 이후로 나의 여행은 굉장히 삭막했다.


고추 절단기를 선물해 주고 싶은 그대들의 이름은 수없이 많지만 정말 업소용 고추 절단기를 선물해 주고 싶은 사람들만 선별해 두 개의 게시글에 모았다. 누구 하나 만나며 살아오지 않았던 나도 이만큼이나 지긋지긋해질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어왔을까. 언젠가 '여자들이 모였을 때, 서로 성희롱/성추행에 관한 이야기는 무조건 나온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모여서 수다를 떨면, 언젠가부터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가기 시작했으니까. 오늘 아침 탄 택시 기사님이 묻지도 않은 얼굴과 몸매를 언급하며 남자친구 여부를 묻고 실실 웃어대 불쾌하고 소름끼쳤다는 일화에 다같이 분노하고, 이번 해 복학한 남자 선배 A는 복학 전 여자친구를 촬영한 불법 촬영 영상을 그만 단톡방에 올려서 휴학했던 것이니 다들 말도 섞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며 소름끼쳐하고. 새로 이사한 원룸 창문으로 건너편 건물 남자가 자신과 종종 눈이 마주치고, 술에 취한 남자가 집을 착각했다며 새벽에 문을 두드려 대고 비밀번호를 수십 번 입력하려 하기에 경찰을 불렀고, 철창에 철조망이라도 달아야겠다며 알아본 쇼핑몰을 캡쳐해 보여주는. 그걸 또 같이 보며 그런 것보다는 다른 제품이 더 낫다며 조언하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헤어질 때면 늘 택시 번호를 찍거나 공유하라 이르고, 한두 시간 즈음 뒤에는 '다들 잘 들어갔지?' 로 모두의 안전을 확인하는 생활. 그것이 일상적인 여성들의 풍경이다. 


물론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전자 발찌를 차고서도 굳이굳이 다시 범죄를 또 저지르는 심리를 가진 성범죄자들에게 물리적 거세를 해봤자 별 소용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의 30만원은 고작 저딴 것들의 고추를 숭덩숭덩 자르기에는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좀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 온갖 조롱 섞인 어조와 신조어에 조리돌림당하며 별별 말을 다 듣겠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떡하겠는가. 당장 내 주변을 둘러만 봐도 기가 막히는 사례들이 많으니 말이다. 물론 이 두 게시글에서는 내가 직접 겪은 일들,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질겅질겅 씹어댈 사건들만 적었지만. 




이전 09화 고추 절단기를 선물해 주고 싶은 그대들에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