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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로루디 Jul 18. 2022

고추 절단기를 선물해 주고 싶은 그대들에게 (1)

친척에서부터 아는 선배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까지.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내가 공개적으로 하는 것을 꺼려한다. 위험해서 그렇단다. 험한 말 뱉고 다니면 어디선가 칼이나 벽돌 맞을까봐 무섭다고 했다. 내가 남녀 문제에 굉장히 예민하다고도 했다. 맞다. 나는 이런 테마들에 엄청 예민하다. 그리고 나만의 기준이 있다. 아빠, 큰아빠, 자라오면서 같은 반이 되었던 남학생들, 잠깐떠난 곳에서 알게 된 남자,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 그리고 친구들까지.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이십몇 년간 겪어오며 쌓은 데이터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나를 비혼주의로 만들어 놓았다. 



1. 가 족같은 우리 큰(바위로 머리를 내려치고 싶은)아빠


명절마다 만나는 큰아빠는 누구나 그렇듯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의 딸을 예뻐했지만 그 관심은 이상하게도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어린이용 브래지어를 착용할 때까지 부담스럽게 이어졌다. 뒤에서 가슴 부분을 끌어안아 올려서는 자기 무릎에 앉히질 않나, 허벅지를 만져대질 않나, 움직이는 모든 동작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듯한 더러운 시선까지. 명절 때마다 나는 그 번들번들한 눈빛과 실수인 척 불쾌하게 닿아오는 손길을 마주해야 했다. 고민은 짧았고 털어놓는 것은 빨랐다. 그 때는 주저하는 것보다 내 기분이 불쾌하다는 것을 얼른 부모님께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오랜만에 만나서 좋아서 그래, 너를 예뻐해서 그래' 같은 개선의 여지가 없는 대답뿐이었다. 그 때부터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계속 그 인간의 험담을 했고, '큰아빠' 가 아닌 '그 새끼' 혹은 '걔' 라고 부르며 여러 번 혼나기도 했다. 혼날 때마다 나는 '걔가 나를 자꾸 만지잖아!' 라고 응수했지만 차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어른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말로 모든 것을 일축했다. 글쎄, 저것도 어른 취급을 받다니.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또 다른 명절날, 부모님이 나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엄마는 그 때를 되짚어 보며 확실히 무언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내가 2차 성징을 겪기 시작하면서부터 남자 친척들은 나를 대할 때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진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는데, 그 인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고. 그는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내 가슴을 실수인 척 만졌고 성인 여성 평균 키보다 큰 여자애를 끌어올려 자기 무릎에 앉히고는 입냄새를 내 목 위에 뿜어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로 그 더러운 인간을 벗어나 엄마에게 달려갔다. 나에게는 '만지지 마세요' 라고 똑바로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최대한 싸가지 없게 굴며 그 인간을 없는 사람 취급할 정도의 결심은 있었다. 이후 가족끼리 모인 저녁 자리에서 그는 술에 취해 꼬인 발음으로 '루디는 말이야, 마마걸 같아' 라고 말했다. 그럼 초등학생이 엄마를 찾지 누구를 찾을까요?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아 노려보느라 눈알이 아팠다. 그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심각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부엌일하는 때를 틈타 날 추행하던 걸 본 듯 했다. '큰아빠 말야, 언제부터 그랬어?' 나는 거기에서 방언 터지듯 지난날의 불쾌함들을 모두 쏟아부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인간을 본 적 없다. 부모님은 가족 모임에 나와 그 인간이 마주치지 않도록 일정을 짰고, 친가에 아예 정이 떨어져버린 나 역시 가족 행사에 잘 가지도 않았다. 잔인한 공포 영화들을 보며 그 사람의 눈을 뽑아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 더러운 눈빛과 느껴지는 숨결이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2. 남자 둘이 무서워서 남자 다섯 명 부른 날


시간이 흘러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 과는 타 과보다 유독 군기가 심하기로 유명했다. 우리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전국적으로 심했던 터라 A대학은 더 심하대, B대학은 작정하고 없앴다던데, 라는 말을 하며 버텼다. 다양한 룰이 있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후배는 선배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나까 말투를 사용하며 선배를 하늘같이 대했고, 어떤 선배는 민망해하며 상호 존대를 해 주기도, 어떤 선배는 기세등등하여 애들을 하인 부려먹듯 했다. 


나는 어떤 프로젝트의 막내로 들어갔다. 선배들과 새벽까지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 웬만큼 친해졌고, 그들은 점점 나를 친동생처럼 여기며 짓궂은 장난을 하기도 했고 정스럽게 챙겨주기도 했다. 그런데 딱 하나, 정말 재수없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제일 못났다는 것을 모른 채 수없이 다른 사람들 뒷담을 하기 바빴던 사람. 실력도 없으면서 머리끝까지 자만과 오만을 키우고 살았던 사람. 몸에 피 대신 허세가 흐르는 듯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나는 내가 살던 고시원 바로 아래층에 그 선배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악연의 서막이었다. 


그는 같은 건물 같은 고시원이니 차를 태워주겠다는 것을 핑계로 가까운 편의점에서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셨다. 신용카드 사용이 안 된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돈은 내가 내고 그는 앉아서 몇 시간 동안이나 돈 낸 사람은 생각도 않고 열심히 자기 자랑 하기 바빴던 것이었다. 자기 자랑, 자기 자랑, 거기에 팀원 욕, 그러다가 또 자기 자랑, 자기 자랑.. 그다지 자랑할 만한 일들도 아니었고, 팀원 욕을 하기에 그는 그 프로젝트에서 가장 안타까울 정도로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말이 많은 편이다. 새벽 세네 시부터 동이 트는 시간까지 졸린 티도 내지 못하고 앉아 있으니 아침 일정에 맞추어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마주쳐 반강제로 합석하게 된 동기는 그의 이야기를 대충 들어주며 맞장구 치다가, 적당한 시간에 자리를 끝냈다. 그 동기는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많았고 군대까지 다녀온 남자였다. 오직 그였기에 끝낼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프로젝트가 끝무렵에 다다를 즈음 함께하는 남자 선배들은 나를 유독 그와 엮으려 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루디야, ㅇㅇ에게 물어봐~ 라고 은근히 웃으며 그를 내 쪽으로 떠미는 유치한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같은 고시원에 거주하니 언제 한번 술을 마시자는 연락을 해왔다. 과제가 많아서요, 시험이 있어서요, 연습 준비해야 해서요... 약속을 쳐내고 쳐내고 쳐내니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기는 했어도 여전히 나는 군기 바짝 들어 있어야 하는 신입생이었고, 그는 꼰대질에 만취한 선배였다. 그렇게 '와, 이제 더 이상 거절하면 우리 학번 전부 집합 걸리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그는 '고시원 사장과 함께 술 한잔 하기로 했는데, 맛있는 거 사줄 테니 나와라' 라고 했다.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좀 나오지 그래?' 라고 압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메세지였다. 무시하고 읽지 않은 뒤 다음날 '자느라 못 봤어요' 라고 말하기에는 여러모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같은 건물 사는 동기에게 SOS를 쳤지만 하필 그녀는 지방에 내려간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온 몸을 꽁꽁 둘러매고 나갔다. 나는 오로지 늦은 저녁밥을 먹기 위해 나왔으며, 당신들에게 어떠한 이성적인 감정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듯, 슬리퍼를 질질 끌고 허리부터 발등까지 덮는 두꺼운 수면바지에 두꺼운 후드 티, 그리고 그 위에 롱패딩. 로션 하나 안 바른 얼굴에 안경, 눈을 가리는 모자. 롱패딩은 목 끝까지 지퍼를 올렸다. 날이 그리 춥지 않은데도 일부러 있는 힘껏 후줄근하게 입었다. 옷차림이나 겉모습은 아무 상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횟집이었다. 나는 최대한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려 애썼지만 남자 둘은 이상하게도 빠른 속도로 자꾸 술을 마셔댔고, 한 잔을 몇 번 나누어 마시면 눈치를 줬다. '술은 역시 여자가 따라야 맛있어' 같은 별 얼토당토없는 말을 들으며 합석하고 있자니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긴장한 내가 숟가락을 떨어트리자 고시원 사장은 선배에게 'ㅇㅇ아, 오늘이 기회다' 등의 말을 뱉었다. 내가 어려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일부러 바람 좀 쐬겠다 이야기하고 밖에 나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 둘이 나를 따라 나온 것이었다. 일부러 그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담배 연기도 실수인 척 얼굴에 몇 번 끼얹어줬지만 그들은 아랑곳않고 나를 데리고 들어가 술을 먹이기 바빴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나고 드디어 횟집에서 나갈 수 있었다. 나는 '끝내야 할 과제가 있다' 며 집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상대는 고시원 사장과 그 고시원에 사는 사람, 그러니까 방향이 완전히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노래방에 가자' 며 내 양 팔을 한쪽씩 팔짱을 끼더니 그대로 노래방 건물로 끌고 갔다. '저 괜찮아요' '들어가 봐야 해요' 를 말해도 어림없었다. 


조금 취한 상태에 패닉까지 오니 너무 힘들었다.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지하에 있는 노래방으로 들어갔는데, 노래방 주인은 소파가 있는 너무 넓은 방을 주었다. 선배는 고시원 주인과 나 둘만 남겨 두고 맥주를 사겠다며 편의점으로 가 버렸다. 고시원 주인은 나에게 부를 노래를 고르라고 하며 가까이 붙어 앉았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화장실로 도망쳤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참으면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친구는 과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동기 오빠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두 명에게 연락을 했고, 그 중 한 명이 답을 했다. '오빠, ㅇㅇ선배랑 고시원 사장이 술 마시자고 해서 왔는데 노래방으로 끌고 왔어. 근데 너무 변태 같아서 무서워.' 메세지의 1 표시는 금방 사라졌고, 동기 오빠는 바로 위치를 물어보았다. 끌려들어오면서 너무 정신이 없어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니, 학교 앞 지하 노래방은 몇 군데 없고 그마저도 가까이 있으니 일단 그 쪽으로 데리러오겠다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전화를 하면 일단 밖으로 나오라고도 했다. 그렇게 누군가가 든든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부술 듯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경악스럽게도 노래방 사장과 고시원 주인이 서 있었다. 내가 들어간 화장실은 '여자 화장실' 표시가 있고 그렇게 안내된 여자 화장실이었다. 그 공간에 아무런 예고 없이 남자가 들어온 것이다. 놀라서 벙찐 나에게 고시원 주인은 '화장실에 갔는데 한동안 안 나오길래, 무슨 일 생겼나 해서' 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개소리였다. 나는 화장실에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버티고 있으려 했지만 다시 노래방 안으로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방에 들어가자 맥주를 사온 선배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동기 오빠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화장실을 다시 간다는 핑계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지하 계단을 올라 바깥 공기를 한 번 들이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보였다. 한 명이 아니었다. 동기 오빠가 남자 동기들 여럿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 순간 눈물이 터졌다. 정황을 이야기하는데 공황 발작이 일어나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손이 벌벌 떨려 말도 제대로 못 이을 정도였다. 몇몇은 나를 달래려 했고, 몇몇은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에 굉장히 화가 난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망할 절대복종 후배였기에 시나리오를 짜야 했다. 나와 모든 사람들이 별 탈 없이 잘 빠져나올 수 있는 시나리오를. 그래서 그 당시에는 말이 될 것 같았던 -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지만 - '조별과제 모임 때문에 밤에 잠깐 만나기로 했는데 루디가 연락이 되지 않아 물어물어 여기로 왔다. 근데 얘가 너무 취해서 길거리를 화장실인 줄 알고 밖에서 걸어다니고 있더라. 너무 취한 것 같은데 데려가야겠다.' 라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나는 동기들이 내 상태를 보자마자 'ㅇㅇ 이 씨발새끼, 그 새끼가 무슨 짓 했어?' 라고 물어봐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서로 욕을 하고 미친 새끼라고 부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들어가놓고 나오기까지 한 노래방 위치를 끝까지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탓에 우리는 결국 주변 노래방을 다 들어가 보았다. 한 명은 안에 누가 있건 신경쓰지 않고 노래방 안의 모든 문을 벌컥벌컥 열어대면서 선배와 고시원 주인을 찾았다. 그렇게 들어간 두 번째 노래방. 드디어 동기들은 그 둘을 찾아냈고, 가장 나이 많은 동기 오빠는 우리가 만들어낸 시나리오를 읊었다. 나는 나를 부축하는 동기들에게 기대 만취한 연기를 했다. 선배는 여자애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몇 분 후에 대여섯 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나타난 이 상황이 굉장히 당혹스러운 듯 보였다. 우리는 일부러 더 어수선하게 행동했다. 그는 결국 정신 없는 상황 속에서 나를 집으로 데려가도 된다고 '허락' 했다. 


가짜로 만취한 나는 그 선배라는 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개골을 열고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동기들은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날 달래고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려 노력했으나, 그 상황에서 나는 전혀 감정에 변화를 줄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심히 들어가라는 그들을 보내고 방에 들어오자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그렇게 침대와 벽이 맞닿은 구석에 몸을 한껏 구겨 붙이고는 한참을 벌벌 떨며 울었다. 


그 이후로 날 데리러 왔던 사람들은 그 일에 관해서는 없었던 일처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처럼 대했고, 반면 선배와 고시원 사장은 '잘 들어갔냐' 며 뻔뻔스럽게 말을 걸어댔지만 그마저도 빈도가 훨씬 줄어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은 의외로 내가 도움을 청했던 친구에게서 나타났다. 정황을 잘 몰랐던 그녀는 '무슨 일 당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하얗게 질려 있냐' 며 면박을 준 것이었다. 아무리 상황을 잘 몰랐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메세지로 걱정을 해 주었고,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지난 밤 내내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당해야만 무서워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선배는 이미 인성 파탄에 개차반 그리고 허세왕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자발적 아싸로 살았던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날, 날 데리러 온 동기가 나를 보자마자 'ㅇㅇㅇ, 이 씨발 새끼' 라고 말했던 것도 그렇고, 약속이 있었다 해도 굳이 자리를 급하게 파하고 여럿이서 무리지어 나를 데리러 온 것도,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 선배를 피했고, 그 선배는 결국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내보이며 더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적으로 돌렸다. 고시원 사장은 얼마 있지 않아 폐업했다. 고시원 방을 계약하던 날,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둔 그의 사진이 아직도 기억난다. 비싼 시계와 선글라스, 그리고 차 키를 들고 찍은 셀카. 그 선배의 인스타그램 사진 역시 유명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자랑과 허세로 도배되어 있다. 역시 끼리끼리는 과학이다. 윽. 역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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