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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geum Aug 16. 2022

한 순간에 가라앉은 나의 서울 살이

모든 걸 앗아간 집중 호우, 도림천 범람

쪼리를 사수하기 위한 웃픈 나의 노력
왜 나한테 이런 일이..


8월 8일 월요일, 정말 미친 듯이 비가 내리던 날이었지만 늘 그랬듯 평소와 같이 일을 마치고 주짓수를 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핸드폰엔 관악구 도림천 범람, 대피령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지만 안일하게도 우리 집은 무사할 거라 생각했다.


오후 10시, 지하철을 타고 신대방역으로 향하던 중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다. 이때부터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지만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자마자 집주인의 안도의 한숨(안 받았다면 죽었을까 초조했을 거다.)과 함께 집으로 가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상황이 꽤 심각한 듯했지만, 믿을 수 없는 마음과 내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에 신대방역에 내려 집으로 향했다.


신대방은 도림천 물살이 더해져 파도가 치고 있었다.

신대방역에 내리니 재난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옷이 다 젖더라도 가 볼 생각이었는데, 자칫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래서 구로디지털단지역은 여기보다는 상황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에 좀 돌아가더라도 가보자 했지만, 구로디지털단지역도 집 쪽으로 갈수록 상황은 똑같았다.


급하게 산 쪼리에 테이프를 감고 나름대로 노력이란 노력은 다 해봤지만, 집에는 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본가(일산)에 갔다. 돌아갈 집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눈앞에서 저런 광경을 목격하고 본가에 도착했는데 일산은 거짓말같이 평화로웠다. (이래서 집중호우가 무섭구나..)


그 어떤 재난 상황이라도 출근은 해야 돼.

이날 밤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내 집이 어떻게 됐는지, 대체 어느 정도 침수가 됐을지 알 수가 없어 밤 새 초조해하며 당근마켓으로 동네 상황을 엿보고 있었다.

당근마켓에서 본 신대방 상황

발목까지 찼을까, 무릎까지 찼을까, 설마 통째로 침수되진 않았겠지. 거기 있는 물건들과 짐들은 어떡하지, 선물 받은 물건들도 많고 거의 다 새로 산 물건들인데, 옷은 또 어떡하지, 아참 노트북도 있는데 등 …


수만수천 가지의 상황을 생각하며, 불안에 떨었다.

회사에서 집주인한테 받은 사진

다음날, 회사에서 집주인한테 집 사진을 받았다.


2층 올라가는 계단까지 물이 찬 걸 보아 반지하층은 말할 것도 없이 천장까지 물이 가득 찼다. (하.. 저 사진을 받은 순간과 감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머릿속이 하얘진 채로 또 하루가 지나가고 수요일 오후 7시 30분 반지하층 입주민과 긴급회의가 잡혀서 약속 장소로 모였다.

집주인이 하는 얘기가 내 눈앞을 더 깜깜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무슨 생각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소리라는 건 알았다.


집주인의 말은 임차인 5명이서 당장 400만 원을 모아 2,000만 원으로 집수리 자금으로 쓰자고 했다.


들어보니까 진짜 어렵게 구조된 사람도 있던데, 지금 당장 지낼 곳이 없는 사람도 있던데, 그 사람들 앞에서 한다는 얘기가 400만 원을 모아서 집 수리비로 쓰자고?


협조하지 않으면 서로 법적인 문제로까지 갈 수 있고, 법적으로 가면 우린 질 생각이 없고 아마 손해가 더 클 거다라며 협박 아닌 협박도 했었다.


평균 나이 27세 사회초년생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법 얘기를 하니 협조를 안 하면 진짜 문제가 될까 무서웠다. 그렇게 집주인의 말에 반박 한번 못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내 자신이 참 바보였다.


그날 밤 새벽에 엄마한테 참교육을 당하고 굳센 마음을 가지고 임차인 카톡방을 만들어 강력하게 대응하자고 입을 모았다. 새벽 내내 부당함에 대해 토로하고 법적인 근거를 조사하고 찾느라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침수 복구를 위해 현장에 갔다.

신사동 일대

집과 가까워질수록 현장은 처참했다.

온갖 가구들과 짐들이 거리에 쏟아져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짐을 빼내느라 힘을 쓰고 있었고, 거리에는 자원봉사자부터 군인 분들이 피해 가구들을 돕고 있었다.


‘재난 현장이었다.’

오기 전에, 난 대체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생각했던 것보다 100배는 상황이 심각했다.


근데 생각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드는 모든 생각들을 접어두고 물품들을 빼내는 데에만 집중했다.

뭘 살릴 수 있을까 생각도 하지 않았다. 뭐 하나 멀쩡한 물건이 없었다.


지하로 내려갔을 땐 물 비린내와 곰팡이 냄새가 섞여 특유의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물건들에는 오물과 흙이 가라앉아 있었는데 이미 냄새고 흙이고 다 베어버려서 씻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현장에서 건진 물건을 가지면, 물건과 함께 이 악몽이 계속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아까웠지만 내 정신 건강을 위해 다 버렸다.

나의 물건들아 잘가

6시간이 넘어가는 복구 작업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18시간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마땅히 앉을 곳도 없어 10시간 넘게 서 있었더니 다리도 너무 아팠다. 104호 분은 피부가 계속 따갑다고 하셨는데, 그만큼 세균이 득실거리고 해로웠다는 거겠지.


내 꼴을 직시하니 그제서야 체감이 됐다.

‘아.. 나 재난민이구나..’


이 과정에서 고마운 분들도 정말 많았다. 특히, 군인 분들만 생각하면 고마워서 울컥할 정도로 감사하다. 안 그래도 무거운 가구에 물까지 먹어서 몇 배는 무거웠을 텐데 싫은 내색 없이 끝까지 다 날라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 와중에 해드릴 수 있는 건 감사하다는 말뿐..

정말 다 표현 못 할 만큼 감사합니다.

그리고 작게나마 도움을 준 사람도 있었다.


소쿠리에 음료수와 간식을 담아 조용히 문 앞에 두고 가신 분도 있었고, 윗집 사시는 분은 김밥도 사 와주시고 옷 갈아입고 씻을 집도 내어주는 등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나도 받은 만큼의 몇 배로 어려운 사람에게 더 베풀어야지..

평생 기억에 남을 김밥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김밥을 먹고 있던 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찾아왔다.

행정안전부 장관

모두 사진만 찍으러 왔다며 비난을 했지만, 난 아닐 거라 믿었다. 그래도 오셔서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재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갔으니 어떤 대안과 대책을 마련해주실 거라 믿었다.


제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연합뉴스 기사에 내 사진이 올라왔다. 한 손에는 김밥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내가 봐도 참 짠하다.


이 와중에 먹고는 살겠다며 발버둥 치는 모습 같기도 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 같달까,,

우리 101, 104, 105, 106호 분들 힘내요.

불행 중에 최악의 불행이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게, 반지하 세입자 분들 모두 살았다.


뉴스 기사에 다 날 정도로 어렵게 구조된 분도 계신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때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게 죄송할 정도로 정말 무섭고 끔찍하더라


내가 만일 똑같은 상황을 겪었더라면, 나는 과연 살 수 있었을까?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지만 생각하지 말자.


어쨌든 살았고 모두가 살았다.


초면이고 이 일로 알게 된 사람이지만 진심으로 이 사람들이 모두 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서 잘 됐으면 좋겠다.

자연재난 피해신고서

재난민 모두에게 피해규모 상관없이 모두 200만 원씩 지급한다고 하는데(이젠 집주인이랑 반반 나눠야 한다는 등.. 말이 계속 달라진다.) 이젠 받을수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루라도 빨리 모든 게 회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정신적으로 더 힘든 건 여기에..

이런 상황에 맘 놓고 슬퍼하지만 할 수 없는 것이 또 현실이다.


처음엔 400만 원을 요구했다가, 그 말에 협조하지 않으니 방을 빼주지 않겠다, 법적인 문제까지 들먹이며 겁을 주고 협박하는 집주인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정말이지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나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살았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잘 헤쳐나가고 나면 그만큼 단단해져 있을 거다.


할 수 있다. 잘 해결될 거다. 지나갈 거다. 다 경험이 될 거다.


나의 눈물의 출퇴근..

‘바닥을 치면 좋은 점, 사람이 딱 걸러진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요즘 그 말을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딱 보인다. 괜찮냐며 연락 오는 사람들은 진짜 내가 걱정돼서 연락한 건지 단순 궁금해서 연락하는지는 조금만 연락해봐도 알겠더라, 사람한테 정 떨어지는 게 무서워서 굳이 하나하나 다 알려주지 않았다.


‘내 일은 남에게는 그냥 남의 일이구나.’ 그런 사람들에게 짐심 어린 위로를 바라는 것도 아니기에 뭐,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극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리고 이런 비극이 자기한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법도 없다. 이런 비극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한 번에 온다. 나도 기생충 영화를 봤을 때만 해도 현실과 동 떨어진 영화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더하면 더했다.


침수 전 후
불행 중 다행으로, 살았다.
그 와중에 도움의 손길도 많았다.

그러니 매 순간 감사하며, 착하게 살자.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자.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게 단단해지자.
잘 견디고, 잘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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