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속에서도 잘 살고 싶었다

무기력한 갓생러

by 아일
낮잠을 자는 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낮 시간을 낭비하는 일 같았다. (...) 삼촌은 나를 한 번도 나무란 적 없는데. 열심히든 부지런히든 어떻게 살라고 말한 적조차 없는데. 그럼에도 나는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김신지 <평일도 인생이니까>



오래전에 읽은 책의 도입부임에도, 이 문장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무렵 저는 낮잠을 자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리고 낮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죄책감으로 하루의 무게가 더해지는 일이 잦았죠. 아이를 낳기 전, 저는 낮잠은커녕 최대한 늦게 잠자리에 들려 애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꽤 열심히 살아온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스마트폰이 없었거든요. 책상에 붙박이로 있던, 팬 소리 가득한 컴퓨터로 싸이월드에 이어 페이스북까지 푹 빠져 지내거나, 친구와 메신저로 수다를 떠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침대에 눕는 시간을 야금야금 늘리다가, 출근 압박에 못 이겨 겨우 잠들곤 했죠. 그럼에도 낮잠은 왜 그리도 죄책감을 건네주는지요.


친구에게 낮잠을 자는 저의 게으름을 고백한 적이 있어요. 그때 친구는 위 글귀만큼이나 인상적인 말을 남깁니다.

"집에서는 원래 누워있는 거 아니야?"

친구의 해맑은 한마디가 죄책감의 무게를 한결 덜어주었지만,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았어요. 차라리 친구처럼 속 편한 휴식을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수록 미래를 향해 쌓여가던 제 드림보드는 점점 더 정교해졌습니다.




저는 꿈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제일 싫어했던 과제는 장래희망을 적는 것, 그리고 10년 혹은 20년 후의 나를 상상해 보는 거였어요. 20대가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냈어요. 삶의 각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뱃속에 아이를 품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호르몬의 영향이었을까요. 오래 손에서 놓았던 책이 문득 읽고 싶어 졌습니다. 처음에는 이름조차 ‘작은 도서관’인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어요. 독서 초심자에겐 책을 고르는 일도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책을 보는 눈이 없었던 저는 몇 장 훑어보다가 도로 반납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말처럼, 실패는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조금씩 책과 나 사이의 결이 맞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만난 책들은 인생 선배 같았습니다. 그 책들을 쓴 이들은 한 분야에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한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꿈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요. 특히 임신한 저에게 김미경 강사님은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05호 엄마'로 불릴 수 있는 아줌마 모임을 조심하라고 말이죠. 그 안의 대화는 제한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으며, 중독이 강해 빠져나오기 어렵다고 했어요. 그 안에 있으면 아줌마 마인드가 강해지며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기 딱이라고도 했죠. 이미 아줌마 세계가 두려웠던 저는 그 말을 꼭 붙잡은 채 육아기를 보냈습니다. 너무 꼭 쥔 탓일까요. '힘을 적당히 빼는 법'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늙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꿈이 있는 아내'는 되었습니다. 초보 독서가는 어느새 활자 중독자에 가까워져 가고, 몇 해째 만들고 있는 드림보드는 해가 갈수록 심플해지고 알맹이는 단단해집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현실에서 발을 굴러보지만, 저만치 달려가는 꿈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더 열심히 달려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대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무리하지 마. 그래도 괜찮아.'

누군가 그러더군요. 내 인생에 깊게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괜찮아'라고요. 역시나 그 말은 저에게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이불속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유튜브 세상을 배회하고 있지만, 전혀 즐겁지도 편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몰려왔죠. 꿈을 향해 달릴 힘이 없어서 '잠시만 이러고 있자'라고 나를 달래 봤지만, 그런 나를 기다려주는 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요.



이제부터, 갓생과 무기력 그 어딘가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나만의 리듬을 찾아갔던 과정을 하나씩 꺼내보려 합니다. 갓생도, 조용한 삶도 아닌 '나만의 삶'을 다시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생각과 경험들입니다. 커다란 진폭 안에서 분주해진 마음이 있다면, 조금은 경쾌하고도 차분해지는 데 작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