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갓생

완전한 멈춤이 아닌 잠시 쉬어가기

by 아일

뽀모도로 타이머 시계를 샀습니다. 하루를 24칸으로 쪼개놓은 타임 스케줄러도 사고요. 감성도 놓칠 수 없으니 살짝 톤다운된 색감의 하이라이터도 여러 개 준비해 두었죠. 구독 중인 갓생 유튜버들이 쓰던 아이템들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것 같아요. 나도 그들처럼 열심히 살 수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책상 앞에 앉습니다. 일기, 아니 모닝페이지를 쓰려고요. 뇌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세 페이지만큼 써 내려가는 시간입니다. 타이머를 20분에 맞춰놓고 열심히 써 내려가는데, 두 페이지밖에 채우지 못했어요. 다시 10분을 더 돌려놓고 괜스레 펜을 굴려보지만, 이어갈 말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요. 그래도 어찌어찌 세 페이지를 채웁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쌓인 글들이 언젠가 나에게 중요한 말을 건넬 거라고 믿어보기로 합니다.

그다음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스케줄러 타임라인에 맞춰 적어나갑니다. 완료된 일 앞에 놓인 조그만 네모칸에 브이 체크를 하면서, 조용한 뿌듯함을 맛봅니다. 체크할 때마다 아주 조금씩 성장하는 기분이 들어요.

어느덧 촘촘히 쌓은 하루의 끝, 색색의 하이라이터로 채워진 스케줄러 아래에 오늘을 마무리하는 글을 짧게 적습니다. 침대에 누워 온몸 가득 채워진 뿌듯함을 음미하며, 머릿속엔 절로 내일의 하루가 그려집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잘 살아내면 언젠가 선물 같은 결과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부푼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어제 그렇게 에너지가 가득했는데, 오늘 아침엔 도무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요. 몸이 아픈 건 아닌데,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아니, 정확히는 하고 싶은 건 너무나 많은데 모든 것이 다 버겁게 느껴지네요.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마음도 들고요. 어제의 에너지와 오늘의 무기력 사이에 놓인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렇게 며칠, 갓생과 무기력 사이를 오가고 있어요. 습관처럼 모닝페이지를 펼쳐 놓은 채 잠시 머물러봅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어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내가 그리는 미래는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일까?' 펜을 쥐고 있던 힘을 살짝 풀어봅니다. 그리고 천천히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갑니다. 명상을 하듯,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나에게 온전히 몰입합니다. 그제야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옵니다.




한 때는 원씽을 찾고 싶었습니다. 흩어진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그럴듯한 성과를 내고 싶었거든요. 그러기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습니다. 일도, 투자도, 글쓰기도, 영어공부도 모두 놓칠 수 없었어요. 몇 가지 키워드를 놓고 저울질을 했습니다. 어느 날은 투자의 무게가 묵직했고, 어느 날은 일이 그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어느 하나도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원씽 찾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원씽이 필요했던 건 빠르고 확실한 성과가 주는 안도감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저울질했던 일들은 모두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 같은 일이었습니다. 단거리처럼 짧은 시간에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기보다는, 오래 달릴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었던 거죠.



그래서 나다운 '갓생의 속도'를 찾기로 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에너지를 쏟아붓는 하루가 아니라, 꾸준함을 위해 오늘의 몫을 묵묵히 해나가는 하루. 이 정도의 속도로 어느 세월에 완주할 수 있을까 싶어도, 숨을 고르며 한 뼘의 성장을 만드는 하루. 그게 바로 나에게 맞는 '갓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함은 매일 똑같은 양의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론 나를 들여다보는 일, 필요하다면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하는 일 또한 갓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내일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나를 응원하며 준비시키고, 쉬는 나를 비난하지 않고 믿어주는 일도요. 그러다 근육통이 올 만큼 달리고 싶은 날은 힘껏 나를 밀어주면 되는 거였습니다.


'간헐적 갓생'은 완주가 목적이 아닌, 과정을 살아내는 또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도,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입니다. 그렇게 나답게 사는 연습을, 오늘도 조용히 이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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