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규 Oct 02. 2024

무계획형 인간이 계획형 인간으로

쌍둥이 육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는 남편은 계획형, 나는 무계획형이다. 십여 년 넘는 결혼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서로의 방식을 조금씩 수용하며 변화되어 왔다고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무계획형인 나도 어쩌다 계획형이 되었다. 


남편은 계획형이다 보니 자신의 계획에서 뭔가 흐트러지게 되면 멘붕이 온다. 그런 반면 나는 계획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계획했던 일이 잘 되지 않아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재미있는 점은 계획형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무계획형만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한 조화 속에서 행복한 육아를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예측가능한 일과가 주어 졌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예측할 수 없는 일과를 경험할 때에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따라서 계획형 부모에 의한 일정하고 반복적인 일과와 미리미리 필요한 것을 준비해 두는 성격은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아이는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부모가 완벽하게 준비한 계획에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거나 성장기에는 떼를 더 많이 쓰거나 잘 먹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지 않기도 하고 계속해서 안아주기를 원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유연한 부모가 되어 대처할 필요가 있다.


쌍둥이가 약 백일이 가까워 오는 때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했다.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던 우리는 가족들  모두 콧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지인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에 가면 음식도 나누어 주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고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추천을 했다. 절밥도 먹고 아이들을 위한 몇 가지 활동들도 제공되니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절에 가본 경험도 없고 절밥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절을 방문하기로 한 달 전부터 남편과 함께 준비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절은 평지라 유모차도 끌고 갈 수 있다는 말에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바쁠 것을 예상해서 최대한 일찍 출발을 하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차에 탈 수 있었다. 절밥을 먹으러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빌 때였던 것이다. 


나도 남편도 난생처음으로 부처님 오신 날 절을 향하고 있었으니 절이 얼마나 바쁠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절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출구 앞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점심시간이 다가오니까 더 많은 인파가 몰리는 듯했다. 20분가량 차들이 꼬리를 물고 줄줄이 기어가고 있었다. 그러 던 중 쌍둥이 중 한 명이 잠에서 깨어 울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다른 한 아이도 깨어서 울었다. (이것이 쌍둥이 육아의 묘미다.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도 운다.) 차 안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절밥을 먹기 전에 수유를 할 생각으로 시간을 맞춰 출발했는데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나고 아기들도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우리 부부는 쌍둥이와 함께 하는 신나는 첫 가족나들이가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즉시 계획을 바꾸었다.


우리는 가까운 공원으로 핸들을 돌렸다. 가는 길 마트에서 김밥과 간식거리를 사고 공원에 도착해서 얼른 첫째, 둘째 아이들에게 간식과 음식을 먹기고, 바쁜 손으로 분유를 타서 쌍둥이들을 먹였다. 그렇게 날 좋은 5월 부처님은 만나지 못했지만 평화롭게 공원 정자에서 피크닉을 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만약 우리가 했던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 절에 도착하더라도 이미 아기의 울음소리에 우리의 귀와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을 것이며,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줄을 선 것만큼이나 절밥을 먹기 위해 또 줄을 서야 했을 것이다. 


이날의 교훈은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면 여전히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키우는데 계획과 준비는 필수다. 특히 쌍둥이는 더욱 그러하다. 때에 따라 도움을 줄 사람을 미리 구해야 하고(쌍둥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 몸에 맞는 옷들을 준비해둘어야 하고 아이의 일과를 정해두고 신생아라 하더라도 먹고 놀고 자는 패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어야 한다. 어디 외출이라도 가는 날에는 기저귀, 분유, 젖병, 쪽쪽이, 물티슈 등 하나라도 없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정해진 일과와 준비를 하더라도 아이의 컨디션 상태에 따라 일과는 약간씩 조절된다. 대변을 누면 원래 수유텀보다 일찍 수유를 해줄 수 있고, 잠자는 온도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짧게 자고 깨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변동적인 상황 속에서는 부모의 유연한 성향을 발휘할 때이다. 


이전 12화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