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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조 Apr 26. 2024

시간을 사는 집

역세권 아파트를 사고 나서

제일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돈값을 한다였다.

여기서 돈값이란 

사 두면 나중에 오를 거라는 

그런 계산이 아니다.

정확히, 시간을 사는 값이라

느꼈다.

집 문을 열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데까지 2분이 걸렸다.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던 

넉넉히 잡아서 3분보다도

1분이나 빨랐다.

용마산역은 역이 깊었다.

개찰구를 들어가 

열차를 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강남구청역에 내리면

아내는 1번 출구로

나는 2번 출구로 나간다.

2번 출구도 약간 돌아 나가는 길이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

이 모든 시간을 다 합쳐서

34분이 걸렸다.

맙소사.

이건 너무 꿀인데!

전에는 출근하는데 90분이 넘게 걸렸다.

막히는 날이면 꼼짝없이 2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했다.

1시간에서 한 시간 30분

퇴근시간까지 하면

하루에 2시간에서 3시간 

없던 시간이 생겼다.

역세권 아파트에서 

한 달 출퇴근을 해 보면서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그건 두 번째고

첫 번째로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너무 좋은 메리트라는 거.

내가 항상 품고 있는 의문이 있었다.

사람들은 평생을 돈 버는데 쓰는데

죽을 때 되면 1분이라도 더 살려고

그 번 돈을 다 쓰고 간다는 것.

심지어 다 쓴다 해도 1분도 못 산다는 거다.

하루에 2시간이면

돈으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제 또 다른 측면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원래 이 책의 목적이

역세권 아파트에 살았을 때

생활의 많은 면을 소상하게 묘사해 주어

선택에 도움을 주자였으니.

역세권이다 보니

기차 지나가는 소음이 주기적으로 들린다.

바쁜 아침이나 낮에는 거의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문제는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다.

쿵쩍 쿵쩍 쿵쩍 쿵쩍 쿵쩍 쿵쩍 쿵쩍

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리니

나도 모르게 다음 소리가 

또 언제 들릴지 예민해지게 된다.

지하철 배차 간격만큼

막차가 끊길 때까지 주기적으로 

기차 소음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수면의 질을 몹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잠들기 전까지 기차 소음이

계속 신경 쓰인다. 

적응이 될까 싶은데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는 적응이 안 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이 부분을 적응 또는

해결해 갈지도 궁금한 포인트다.

역세권 아파트를 보러 가서

그 집에서 잠을 자 보지 않는 한

잠들기 전에 들리는 기차 소음의

신경쓰임은 예상치 못할 것이다.

본인이 정말 예민한 사람이고

소음을 특히 못 견뎌하는 사람이라면

역세권 아파트는 매매보다

전세 혹은 월세로 먼저 살아보는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용마산역에서 강남구청역 사이에

군자, 세종대, 건대입구역이 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아침 피크 시간에는

강남, 광화문, 여의도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학교를 가는 대학생들이 가득 타고 있는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의미다.

정확한 정보를 알려 드리기 위해

7시, 8시, 9시, 10시 시간대에

출근을 해 보았다.

7시, 9시, 10시에는 그래도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을 정도이다.

8시 출근할 때는 여차하면 

한 대를 보내고 다음 차를 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꽉 탄 채 열차가 들어온다.

14분 정도 걸리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꽉 껴서 

가야 하는 시간이 있다는 거. 

우리 부부에게는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 시간

피해서 출근하면 되는 정도다.

하지만 한 번쯤 

고민이 되는 분도 있을 것 같았다.

임신하신 분이 

무조건 정시에 출근해야 하는 회사를 

다니고 계시다면 고민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좋은 점이 하나 있다.

당근 하기 너무 좋다.

지하철 출구 앞이라면 하면

누구나 찾아오기 쉽고

집에서 나가면 2분 거리니

언제 찾아오시든 바로 만날 수 있어

부담이 없다.

우리 부부는 

70평대 집에서 살다가

24평으로 왔다.

그래서 당근을 엄청 하고 있다.

현재 거래완료가 72개다.


시간 계산하기 좋다는 점도 좋다.

전에는 도로 상황에 따라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고무줄이었다.

지금은 오차 범위가 

열차 지연 시간밖에 없으니

아내가 언제 돌아올지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마중 나갈 수 있다.


예상했던 좋은 점도 있고

생각지 못했던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시간을 산다는 좋은 점이 

소소한 불편함을 

완전히 이긴다는 것이다.


역세권 아파트 필살기 

꿀팁. 

4월에 용마산역 3번 출구는 

저녁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일몰 맛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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