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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Jan 24. 2024

영원히 고향과 자연을 그리워 한 정지용

정지용 문학관에 다녀왔다. 정지용 문학관은 충북 옥천의 옥천읍에 있는데, 바로 옆의 정지용 생가와 그 옆에 있는 지용 문학 공원과 더불어 정지용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정지용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하는 시, ‘향수’를 지은 시인이다. 지금까지 남겨진 작품은 120여 편으로 그리 많은 수준은 아니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절제된 감정과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 그리고 섬세한 언어 감각(시어) 하에서 태어난 작품들이다. 

    

정지용은 1902년 지금의 옥천면에서 태어나서 옥천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모교인 휘문고보의 영어 교사로 부임하여 이후 16년간 재직하였다. 휘문고보 시절부터 시를 습작한 정지용은 <휘문> 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되었고, 1922년 현재 전해지는 그의 첫 작품인 [풍랑몽]을 발표하며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휘문고보를 졸업하면서 <향수>를 쓰게 된다. 이후에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문장]紙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서른네 살이 되던 해에 첫 시집을 출간했다. 1939년 서른여덟 살에 [문장]지를 창간하면서 시 부문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을 문단에 등단시켰다. 그 이후 미일 전쟁이 시작된 1942년 이후로는 글을 쓰지 않았다. 마흔네 살이었던 1946년 이화 여전 교수로 부임하여 문과과장이 되었고, 경향신문 주간에 취임하기도 했다. 1950년 전쟁 시기에 행방불명되었다. 

   

정지용은 <구인회>가 조직되면서 새롭게 열린 모더니즘 시대에서 김기림, 백석, 이상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들은 기계문명과 도시 생활의 영향 하에서 사물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갖고 있었다. 

     

휘문고보 2학년 재학 시에 3.1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해 12월 그의 첫 번째 소설이자 유일한 소설인 <삼인>을 <서광>지 창간호에 발표했다. 고향 옥천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통하여 정지용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정감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휘문고보 시절부터 일찍 시작된 그의 문학 활동은 우수한 시에 대한 재능으로 학생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이태준 등과는 선후배 사이로 교분을 쌓으면서 창작(습작) 활동을 이어갔고, 졸업 후에 이들과 함께 시와 소설 등의 분야에서 문단의 한 축을 형성했다.   

   

정지용의 습작 활동이 휘문고보 1학년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사람들은 그의 문학적 시상의 시작점은 고향을 떠나면서 느꼈을 향수와 외로움이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1학년 시절부터 문학 동인 <요람>을 결성했을 정도로 창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이후에도 <문우회> 활동이나 <휘문>지 창간에도 노력을 기울이는 등 그의 초기 습작 활동과 휘문고보와의 인연은 각별했다. 5년 동안의 학생 시절, 학교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갔던 유학 시절, 그리고 귀국 후의 교사 생활 등 49년 그의 생애 중에서 무려 27년을 휘문과 함께 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 세월 동안 그는 문학 습작, 새로운 문물과 문학 이론에 눈을 떴고, 문학의 동반자들을 만나서 새로운 시 운동을 주도했으며,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완성했다.  

    

정지용이 1932년 <동방평론> 3호에 발표한 짧은 시 한 편을 적어 보겠다.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입구 좌측 벽에는 지금까지 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들의 시가 걸려 있었는데,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시가 있어서 여기에 옮겨보았다. 지은이는 정호승 시인이며, 2000년 제12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하늘의 그물 / 정호승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

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고 넓어, 엉성한 듯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네 (노자도덕경 제73장 天網恢恢 疏而不失)”에서의 그물인가? 보름달과 기러기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기 위해서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그저 정호승 시인께는 죄송하지만, 내 멋대로 상상하기를, 세세한 것 하나 빠트리는 법이 없는 감시 속에서도 헤어날 길은 있다는 뜻이리라. 하늘의 그물은 무모하게 용맹함을 거르기 위함이고, 어린 새끼를 데리고 기러기들이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무모하지 않고 용맹한 까닭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정지용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정호승 시인의 자유를 그리워하는 기러기가 겹쳐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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