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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y 02. 2024

심훈기념관과 필경사(筆耕舍)

충남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소설가 심훈의 기념관에 다녀왔다. 심훈은 우리에게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1935년, 동아일보 당선)를 쓴 소설가이자, 잘 알려진 시 <그날이 오면>을 지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 3.1 운동 참여로 8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고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다. 투옥 중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을 썼으며, 이듬해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가 1923년 귀국했다.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생활도 하였고, 1928년 조선일보에 입사 후 1930년 <그날이 오면>을 집필하였다.  

   

심훈의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며, 1901년 경기도 시흥군 북면 흑석리(현 동작구 흑석동)에서 출생하였고 1936년 9월 장티푸스로 인해 36세로 사망했다. 심훈이라는 필명은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할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처음 심훈 기념관을 다녀올 생각을 할 때부터 지나간 중학 시절을 잠시 되돌아보았다. 그때는 나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문학 전집과 세계문학 전집을 읽는 것이 유행이었다. 아마 기억에 거의 한 질이 50권 정도로 이루어진 전집이었는데, 우리 집에는 책이 없어서 친구의 책을 빌려서 읽었다. 솔직히 중학생이 소설의 문학적 작품성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법 문학청년인 척하느라고 소설책을 옆에 끼고 살았다. 그때 읽은 소설이 우리가 국어책에도 실렸던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의 시기에 발표된 소설들이었다. 흙이나 무정, 상록수와 같은 소설은 마치 안 읽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입도 벙긋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무슨 글인지도 모르고 그저 읽기만 한 기억이 있다. 특히 그중에 상록수는 비교적 기억에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심훈은 그 이외에 영원의 미소, 직녀성, 황공의 최후, 불사조, 동방의 애인 등의 작품을 집필하였다.      

사실 상록수는 농촌 계몽 소설로 알려져 있고,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아서 쓰인 소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 박동혁은 심훈의 조카인 <심재영>을 모델로 했고, 여자 주인공 채영신은 <최용신>이라는 실존 여성을 모델로 했다. 배경은 지금의 안산이었고, 소설의 영향으로 <상록>이라는 명칭이 지금도 안산 곳곳에 남아있다. 상록구라는 행정구역명과 상록수역이라는 공공시설명도 <상록수>에서 유래했다. 최용신 묘 앞의 용신교라는 고가차도 명도 <최용신>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내가 상록수를 읽을 당시에 솔직히 나는 계몽 소설이라는 측면에 꽂힌 것보다는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라는 측면에서 더욱 내 기억에 남았다. 농촌 계몽 운동에 참여하면서도 박동혁과 채영신이라는 인물은 서로에게 깊은 애정과 사랑을 느낀다. 중학생의 시선에는 당연히 결혼도 하고 뭐 그러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결국 결혼하지도 못하고 채영신은 세상을 떠난다. 그 부분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던 기억도 생생했다.

      

심훈은 계속하여 장편 소설과 시를 발표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상 검열에 걸려서 출간이 무산되거나 신문 연재가 중단된다. 심훈은 세상을 떠나기 서너 해 전에 부모님이 살고 있던 당진으로 이사하여 필경사(소설을 집필하던 공간)를 짓고 그곳에서 상록수를 비롯한 장편 소설을 집필하다가 1936년 세상을 떠난다. 기념관과 필경사 사이의 잔디밭에는 <그날이 오면> 시비가 세워져 있고, 필경사 좌측에는 심훈의 묘가 있었으며 그 앞에는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碑가 있었다. 필경사 내부는 무분별한 방문객으로 인해 훼손의 우려가 있어서 상시 개방은 하지 않고 있다는 안내판 뒤로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심훈의 시 세계에 대한 평론가의 말을 잠깐 소개하겠다.


"심훈의 시는 정신사적 측면에서는 단재 신채호를 비롯한 중국형 독립운동가들에 맥락이 닿아 있으며, 투사적인 면을 지니면서도 예술가로서의 품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만해나 상화와 연결된다. 또한 그의 시가 전투적 지성과 예언자적 지성을 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30년대 후반 육사의 시로 연결됨으로써 이 땅 저항시상에 우뚝한 봉우리로서 자리한다." (김재홍 문학평론가 '한국현대시인연구' 1권 138p)


심훈의 시 중에서 1936년 8월(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듣고 즉흥적으로 지은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는 심훈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오오, 조선의 남아여  

백림 마라톤에 우승한 손, 남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를 전하는 호외 뒷장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이천삼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속에 짓눌렸던 고토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 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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