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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y 10. 2024

김수영 문학관을 다녀왔다

어제 아내와 함께 김수영 시인의 문학관에 다녀왔다. 오래전부터 다녀올 생각을 했었는데 어제야 비로소 갈 수 있었다. 마침 날씨도 더없이 좋아서 아주 즐거운 나들이였다. 문학관은 5층 건물의 1층과 2층에 전시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다양한 육필 원고와 영상 코너, 그리고 논문이 비치된 공간과 서가의 모습, 독서대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매번 문학관을 찾으면서 깊이 알지도 못했던 문인들에 대해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나름 있었는데, 김수영 시인의 문학관에서 그 재미가 어쩌면 전율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시와 산문 같은 작품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활동했던 시대의 언론자유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접할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중략]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 아니 된다. [중략] 모든 창작활동은 감정과 꿈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과 꿈은 현실상의 척도나 규범을 넘어선 것이다.” 산문『창작 자유의 조건』 중에서. 

    

이렇듯 김수영은 말할 수 있는 자유에 집착했던 사람이다. 자유로운 언어가 없는 나라, 인간 사회의 진정한 새로운 지식이 담겨있는 언어를 문학하는 사람들이 발굴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활동에 지장을 받는 사회는 야만의 사회이며 그런 나라는 멸망한다고 김수영은 경고한다.

     

김수영은 1921년 종로구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생전에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강제 동원된 의용군 신분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하였다가 1952년 석방되었다. 주간 <태평양>, <평화신문사>등에 근무하기도 했고, 그즈음 전쟁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안정을 얻어 ‘여름 뜰’, ‘여름 아침’, ‘눈’ 등을 썼다. 1957년에는 김종문, 이인석, 김춘수, 김경린, 김규동 등과 같이 참여한 앤솔로지 <평화에의 증언>에 <폭포> 등 5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이어서 전후에 최초로 시행된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하였다. 

    

4.19 혁명 이후로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고, 시를 넘어 자유에 이르고자 적극적인 태도로 시와 시론, 산문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시작하였고,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김춘수, 박경리, 이어령, 유종호 등과 함께 계간 문학지 <한국문학>에 참여하였다. 6.3 한일협정 반대시위에 동조하여 박두진, 조지훈, 안수길, 박남수, 박경리 등과 함께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박두진은 후에 김수영을 떠나보내는 조사를 지어 남긴다. 김수영이 <사상계>1월호에 발표했던 평론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발단으로 조선일보 지상을 통해 이어령과 주고받은 뜨거운 논쟁은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수영은 전쟁 이후부터 1968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찾아다녔던 문학관의 어느 작가보다도 더 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다. 김수영은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으며, 모든 것에 시가 있음을 강변한 사람이었다. 김수영의 시와 시작 노트, 그리고 산문 중에서 전시실에 진열된 구절을 몇 개 옮겨 보겠다.    

  

“낙숫물로 바위를 뚫을 수 있듯이, 이런 시인의 헛소리가 헛소리가 아닐 때가 온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헛소리다! 하고 외우다 보니 헛기침이 참말이 될 때의 경이. 그것이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이고 시의 기적이다. 이런 기적이 한 편의 시를 이루고, 그러한 시의 축적이 진정한 민족의 역사의 기점이 된다.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세월들이 부닥쳐 올 때마다 나는 피곤과 권태에 지쳐서 허술한 술집이나 기웃거렸다. 거기서 나눈 우정이며 현대의 정서며 그런 것들이 후일에 나의 노트에 담겨져 시가 되었다고 한다면 나의 시는 너무나 불우한 메타포의 단편들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그리운 건 평화이고 온 세계의 하늘과 항구마다 평화의 나팔소리가 빛날 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우리들의 오늘과 내일을 위하여 시는 과연 얼마만한 믿음과 힘을 돋우어 줄 것인가 (‘시작노트1’에서)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고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 ¹ 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나타(懶惰)¹ 나태(懶怠)와 같은 말      

    


실제 김수영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나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김수영 시와 산문이 수록된 책을 주문했는데, 정말 총알같이 오늘 아침에 배달되었다. 이제 천천히 김수영을 즐길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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