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의 문학관 기행이다. 1월인가에 정지용 문학관을 다녀왔으니 벌써 석 달이나 지났다. 윤동주 문학관은 내가 문학관 순례를 계획하면서 남겨두었던 비장의 가까운 문학관이다. 가까우면 언제든지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았다. 거리가 가깝다고 언제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재확인한 셈이었다.
오랜만에 자차를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워낙 아내가 먼 거리를 걷는 것을 싫어해서 그동안은 차를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가서 버스로 갈아타면 바로 문학관 앞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문학관은 효자동에서 자하문터널을 지나지 말고 오른쪽 경복고등학교와 청운중학교를 끼고 옛 고갯길(창의문로)로 오르다 보면, 거의 고개 정상에 다 가서 왼쪽에 있으며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 길은 정말 오랜만에 올랐다. 거의 48여 년만이다. 내가 경복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미술반 친구들과 야외 사생을 다니면서 올랐던 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근처에 가니 감개무량이었다.
도착한 시간은 13시 35분 일단 점심시간은 지났다. 문학관에 무슨 점심시간이냐고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있는 문학관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에 도착해서 문학관 주위만 뱅뱅 돌다가 그냥 돌아온 문학관이 하나 있었기에 그렇게 점심시간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윤동주 문학관도 잠시 입장이 금지되는 시간이 있었다. 청소 시간이 13시 30분부터 14시까지라고 해서, 결국 아내와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서 꼼짝없이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윤동주 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청운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가압장이 느려진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비겁해지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
그리하여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든다.
윤동주 문학관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다.
<문학관 안내 中에서>
사실 문학관의 규모는 내가 지금까지 다닌 다른 문학관에 비해 아주 작은 수준의 규모였다. 당연히 전시된 자료의 양도 많지 않았고...
전시관은 총 세 개의 장소로 나누어졌다. 가압장을 통과하는 물을 저장하던 밀폐된 물탱크와 윗면이 열려 있는 물탱크, 그리고 제1관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는 기계실이다. 기존 건물(구조물)의 골격을 그대로 활용한 바람에 전시 자료를 비치할 공간이 원래부터 좁았던 것 같았다. 물탱크는 윤동주가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를 연상케 한다고 안내에 적혀 있었다. 들어가 보니 한쪽 벽에 윤동주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이 매 15분마다 상영되고 있었고 바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아내와 같이 의자에 잠시 앉아 보았다.
다시 입구로 돌아와서 전시실 초입에 audio clip으로 윤동주 시 낭독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헤드셋 장치가 있었다. 그것으로 100편의 시를 낭독하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벽면에 윤동주의 일생에 대한 행적을 기록해 두었다. 각 시기마다 윤동주의 친필로 적힌 작품 원고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에 태어나서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에 옥사했다. 윤동주 역시 김유정이나 이상, 기형도와 마찬가지로 30년도 안 되는 짧은 일생을 살고 우리 곁을 떠났다. 생전에 시집을 출간하려 했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난 지 삼 년 후인 1948년 유고작을 모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정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윤동주는 중국 길림성 명동촌에서 출생하였다. 숭실중학교는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자퇴하였고 용정 광명중학교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부친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는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다시 교토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전학했다가 다음 해 여름 독립운동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윤동주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니 제2전시실 하늘이 다르게 보였다. 비록 전시물은 하나도 없는 공간이지만, 감옥에서 옥사할 때까지 윤동주가 그리워했을 고국의 하늘을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 공간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대부분 문학관이 실내에 한정된 모습을 보았는데, 윤동주 문학관은 이 공간 덕분에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방문객에게 주는 것처럼 보였다. 봄바람도 불고, 여름비도 내리고, 가을 억새도 자라고, 겨울눈이 쌓이기도 한다. 이런 자연을 느끼게 해 주려는 시도가 바로 문학관이 주는 덤인 듯싶었다.
문학관을 나와서 창의문 방향으로 올랐다. 예전에 그림 그리러 다녔던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잠시 더위를 식히러 들어간 카페 사장님께 물어보니 바로 옆길로 계속 올라가면 내가 찾으려던 장소가 나온다고 했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즐기고 다시 종로로 내려오는 버스에 올랐다. 인사동을 거쳐 보신각 종탑 뒤에서 모처럼 아내와 즐거운 저녁을 마치고 인천행 지하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