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를 가다.

by 정이흔


아내의 아침 운동이 취소된 것을 기회로 모처럼 둘만의 바깥나들이를 계획했다. 모처럼이긴 해도 미리 생각해 둔 곳이 있기에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용인 에버랜드였다. 차는 막힘없이 달려서 한 시간 만에 에버랜드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거의 이십오 년만이지만, 기억 속 에버랜드와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나란히 늘어선 아치형 입구를 지나쳐, 정기권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어차피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만 와도, 당일 입장권보다는 연간회원권을 끊는 것이 경제적이다. 하긴 옛날에도 그랬다. 그때는 아이들과 함께였는데, 지금은 아내와 둘 뿐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아내는 우리 둘만 에버랜드를 찾은 것이 이번이 처음인 걸 아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롯데월드건, 에버랜드건 항상 아이들과 함께였으니, 아내 말대로 아내와 만난 이래 둘만의 데이트는 이번이 처음이 맞았다.


평일이기에 사람들이 적을 것으로 생각한 우리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옛날 같으면,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부모 사정과 요즘 같은 현장학습 개념이 없던 자녀 사정으로 평일은 비교적 한산했는데, 시대가 많이 바뀌기는 한 모양이다.


여기저기 나들이 가족이 보인다.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학생들도 많다. 우리처럼 나이가 든 노년의 부부도 보인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외국인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관광객만은 아니다. 한국 여자와 외국 남자, 외국 남자와 한국 여자, 글로벌 커플이다. 자녀까지도 한국어와 영어에 익숙하다. 아들도 글로벌 커플이다 보니, 유독 내 눈에 잘 띈 것일까? 재미있는 것은, 생김새는 달라도 아빠는 극한 직업이라는 점이다. 아이는 끝없이 아빠에게 매달린다. 아빠들은 짐도 챙겨야 하고, 아이들도 챙겨야 한다. ‘로스트 밸리’ 대기 줄에서 만난 외국인 아빠의 말이 재미있다. “아빠, 정말 힘들어요.” 갑자기 그 외국인 아빠 얼굴에 아들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싶다.


사파리 버스 투어 대기 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자마자 대기 줄이 가장 긴 두 곳을 관람한 셈이다. 동물을 구경하고 나서 놀이공원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생각 같아서는 에버랜드 구조를 모두 알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하긴 이십오 년 세월이니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튤립 정원에 이르니 문득 서비스센터 직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간회원권을 끊으며 일 년에 몇 번이나 올지 모르겠다던 내 말에 직원이 웃으며 한 말이다. “계절마다 꽃구경하러 오세요.” 확실히 정원에 관람객이 많았다.


놀이공원에서 아내가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는 기껏 회전목마뿐이다. 아, 아마 다음에 와서는 범퍼카 정도는 탈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소리를 질러가며 빙빙 돌아가는 탈것을 타기에는 우리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그런 것은 젊은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세월의 흐름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억울한 것까지는 없었다. 젊은 시절의 나였어도 머리가 빙빙 도는 탈것은 어차피 못 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한 바퀴는 다 돌았다. 물론 오랜만에 온 것이라 구석구석 다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옛날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이제 시간만 나면 아내와 둘이 찾을 생각이다. 어차피 평일에만 올 생각이므로 딸도 함께 올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긴 딸도 시간이 나면 남자친구를 사귀어서 둘이 와야지 언제까지 아빠 엄마와 다닐 것인가?


집에 와서 아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엄마 아빠 생일 선물로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을 끊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내년부터는 아들 덕에 에버랜드에 놀러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아, 물론 딸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은근히 기대하면서 이 글로 압력을 넣어 본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라고나 할까?


다녀와서 다음 날이던가? 아내가 웃으며 말한다. 생일 선물로 오천 원 쿠폰이 들어왔으니, 그 쿠폰 쓰러 다음 주에 또 가야 한단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이제 이 글을 발행하고 우리는 다시 에버랜드로 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생각보다 에버랜드에 자주 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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