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펠 아르마도르 까베르네 쇼비뇽

by 정이흔

오드펠 아르마도르 까베르네 쇼비뇽(Odfjell Armador Cabernet Sauvignon)



아내와 치과에 다녀오는 길에 밖에서 점심을 먹고 오니, 집에 들어오자마자 온몸이 늘어진다. 이런 날은 아무리 할 일이 있건 없건 잠시라도 누워야 한다.



그런데, 정작 누우려 하다 보니 술 생각이 났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오드펠 아르마도르 까베르네 쇼비뇽(Odfjell Armador Cabernet Sauvignon)이다. 마지막 병을 따서 절반 정도 남은 냉장고 안의 와인이다.

원래 우리 가족은 와인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나부터도 소주만 마셨으니, 그리고 아내와 딸은 21년산, 38년산 양주로 술을 배웠으니, 와인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다 이 와인을 발견했다. 언젠가 딸과 함께 인천공항 앞의 모 호텔 뷔페에 갔을 때, 그곳에서 welcome drink로 내준 술이 바로 아르마도르였다. 사실 처음에는 몰랐다. 와인에 조예도 깊지 않았고, 오직 한가지 정보가 있다면 와인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집안을 죄다 들어먹는다는 그런 낭설이었지만, 왠지 그 와인이 딸의 입맛을 꽉 잡아버렸다.



종업원을 불러,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와인을 주문했다. 호텔 가격인지라 와인 전문점에서 사는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지만, 그래도 한 병 사서 가지고 왔다. 딸이 마음에 든다는데 돈을 아낄 것도 없지 않은가? 더구나 뻑 하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이 즐비한 세상에 기껏 육만 오천 원짜리 와인에 돈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우리집 와인셀러 안에 아르마도르 다섯 병이 얌전하게 들어앉았다. 그리고 그 와인은 내가 죄다 마셔버렸다.



며칠 전 와인을 주문했던 곳에 다시 새로운 제품을 추천받아서 와인셀러를 채웠다.

아무튼 마지막 남은 아르마도르 반병을 마시고 잠시 누워야 하겠다고 생각한 순간, 기가 막히는 안주를 떠올랐다.



가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우리 냉장고 안에는 치즈와 햄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해 냈다는 안주가 바로 ‘치즈햄말이’이다. 평소 와인 안주로 치즈 양쪽을 김으로 싸서 먹은 적은 있었지만, 햄은 처음이었다.

일단 프라이팬을 데우고 햄을 살짝 익혔다. 그리고 그 위에 치즈를 올린 후 조심스럽게 말았다. 속을 채우고 김밥을 말 듯이 정성스레 말았다.



접시에 치즈햄말이를 올리고 과도로 정확히 절반을 잘랐다. 단면이 너무 멋졌다. 술은 아르마도르, 그리고 술잔은 한참 전 페루의 CONCHAY TORO라는 와이너리에 갔을 때 챙겨 온 시음잔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아르마도르는 내 뱃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에는 이번에 새로 주문한 다른 와인을 마실 생각이다. 딸이 와인을 마시겠다면, 오늘 개발한 레시피의 안주를 만들어 주어야 하겠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빠표 안주다.



이래서 우리 가족은 주(酒)태백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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