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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Apr 26. 2024

'신의 나라'와 '인간의 나라'

영화 <트로이>에 대한 해석 #3

영화 <트로이>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지도자와 그들이 이끄는 두 종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 '나라'라는 것은 근대의 그것과는 달리 권력의 분립 <입법, 사법,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국가는 그것을 지도하는 지도자와 지도자가 대리하는 신, 그리고 그 신과 대리자를 섬기는 백성이 있었다. 이는 단선적 위계관계로 이루어진 명령과 복종의 시스템이었다. 신의 의지를 올바르게 받드는 것이 국가를 운영할 때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구심점이기도 했다. 이 나라는 신권이 있을 따름이며, 국가의 중대사는 신관이 신의 의지를 전달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지도자와 백성이 있을 따름이다. 지도자의 의무는 신의 사랑을 받아 공동체의 안전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신을 핑계 삼아 인간이 군림하고자 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신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질투하거나 도전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성취로 신과 같은 위치에 서고자 했다.


신의 권력을 획득한 자: 아가멤논

영화에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를 내세워 테살리의 거인 전사를 무찌르고 테살리의 왕으로부터 지배권을 빼앗는다. 이때 테살리의 왕은 금속 막대기를 그에게 넘기는데 이것이 왕홀 (scepter)이다. 이것은 지상의 지배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왕을 상징하는 도구이다.

<옥좌의 나폴레옹>,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06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긴 셉터는 프랑크 왕가의 카롤루스 대제 (프랑스어로 샤를마뉴, 독일어로 카를대제)의 것으로 나폴레옹이 프랑크 왕가와 신성로마제국의 정당한 권력 승계자라는 의미이다. 그의 왼손에는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있는 셉터가 있는데 이것은 일명 '정의의 손'이라 불리는 것으로 정의를 기본으로 한 선서와 선언을 의미한다. 왼팔 안쪽에 품고 있는 칼은 그의 군사적 능력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승자의 상징인 월계관이 그가 얻은 영광을 보여준다. 또한 루이 14세의 부르봉 왕가의 권위를 이어받는다는 의미의 '지배의 사과'가 오른손의 셉터 위에 위치하며 붉은 옷에 새겨진 문양 역시 부르봉 왕가에서 보이는 것이다.(부르봉 왕가의 색은 푸른색이다) 이처럼 세속의 모든 권력을 차지하는 왕은 자신의 정당성은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라 주장한다.

이후 이러한 신성 군주들은 왕의 권한이 신에게서 위임받은 것임을 내세우는데 이것이 '왕권신수설'(divine right of the kings)이다. 그의 권력은 신에게 왔고 그것을 행사하는 것은 군주의 권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왕'(le Roi Soleil)이라 칭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신성에서 찾았다. 이러한 군주들은 ‘신성을 대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신성’보다 ‘대리’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자신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

영화에 등장하는 위 장면은 실제 아가멤논의 왕좌를 복원한 것은 아니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장면 어디에도 신의 조각상 같은 것은 없다. 왕의 뒤편에 두 마리의 사자상은 미케네 문명을 대표하는 '사자의 문'을 떠올린다.

미케네 <사자의 문>

물론 미케네도 신을 모시는 폴리스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아가멤논의 주변에 신관이 있다. 신관과 아가멤논의 대사를 보면 그가 얼마나 신으로부터 독립한 존재인지가 드러난다.

늙은 프리아모스 왕은 늘 자신만만하지. 신이 트로이를 지켜준다고... 허나 신이 지켜주는 건 강한 자뿐이오. 트로이가 멸망하면 내가 에게해를 지배할 것이오.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

신이라는 하늘의 운명은 인간이 강력한 의지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인본주의적 태도이다. 그는 신의 의지에 의문을 가지며 미래는 신의 은총이 아닌 자신의 의지라 한다. 아가멤논과 반목하는 주요 인물은 이 영화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주인공 격인 아킬레우스이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압도적 무력, 불사의 신체가 신의 은총에 의한 것이며, 이러한 믿음은 낡아 빠진 것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신은 왜 저런 녀석을 사랑할까?... 난 전 그리스를 통일시켰소. 온갖 종족들을 단일화시켰어! 미래를 만든 건 나요! 아킬레우스는 과거요. 놈에겐 국가도, 충성도 없소.

아가멤논에게 인간의 의지와 업적이 다가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신의 은총을 받은 아킬레우스는 '신탁'에 의존한 존재이고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성취'이다. 아가멤논은 한 국가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인간 공동체의 의지가 신의 의지에 우선한다. 어떤 신도 인간 사회에 방해가 된다면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세계는 '인간의 나라'이다.


신을 모시는 자: 프리아모스

제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가 구분이 되지 않는 국가는 국가의 중대사를 제사장의 결정에 따른다. 그리고 신의 의견에 수용적으로 대하며 복종을 미덕으로 여긴다. 이러한 국가는 고대 국가에서 주로 보이는 특징이며, 우리의 역사에서는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이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왕검이라는 뜻이 제사장이란 의미인데 국가의 정책 결정을 하늘에 기도드리는 제식이란 형식에 맡겼다. 이러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는 비워져 있다. 빈자리는 이미 채워진 자리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정체는 신이다. 이를 "신권정치(theocracy)"라고 한다.

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

트로이의 회의장은 신상들로 가득하다. 회의장의 중심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거대한 신상의 왕좌이다. 이곳은 신이 지배하는 곳이다. 왕의 신의 의지를 받들어 구현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 목소리를 왕에게 전달하는 신관이다. 국가의 위기에서 그가 취하는 태도는 분명하다.


프리아모스: 아가멤논도 신의 상대는 못 돼

헥토르: 신이 활도 쏠 줄 아나요?

프리아모스: 신을 모독하지 마라.


프리아모스는 누구보다 트로이를 사랑하고 트로이 사람들을 아끼는 훌륭한 왕이었다. 그가 훌륭한 왕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가 꿈꾸는 나라의 조건을 얼마큼 충실히 이행했는지로 평가된다. 그는 신의 말씀을 듣고 충실히 따랐다. 그리고 그가 트로이의 미래를 누구보다 걱정했다는 것은 그가 국가의 몰락 전에 했던 이 말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난 많은 전쟁을 치렀다. 영토와 권력과 영광을 위해... 이 칼은 트로이의 혼이야. 트로이 인의 손에 있는 한... 미래는 우리의 것이야.

프리아모스는 국가의 수장으로서 책무를 충실히 이행했으나 시대는 이미 신의 나라의 몰락을 예고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미래, 트로이의 혼을 지키기에 신의 권능을 충분히 상실되었다. 트로이의 목마가 성 안에 도착하고 승리의 파티를 벌이던 중 그리스 군은 트로이를 함락한다. 마지막 순간 프리아모스 왕은 신의 나라의 몰락을 깨닫고 이야기한다.

신은 무얼 하는가!


'신의 나라'의 인간, '인간의 나라'의 신

'신의 나라', 즉 트로이의 최고 영웅은 헥토르이다. 헥토르는 전쟁을 준비하며 자신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사제들과 의견충돌을 보인다. '신의 나라' 최고의 영웅은 신에 대한 믿음을 가장 낮은 자이다. 아버지가 모든 국가 대사를 사제와의 이야기, 신의 조짐 등으로 판단하려 하자 그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프리아모스: 아가멤논도 신의 상대는 못 돼.

헥토르: 신이 활도 쏠 줄 아나요?

프리아모스: 신을 모독하지 마라.


헥토르는 신의 나라에서 인간의 힘으로 시련을 이겨내려는 자이다. 그는 신의 은총을 받은 아킬레우스를 상대로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신의 도움에 기대어 막연한 승리를 소망하는 대신 자신의 군대를 훈련시켜 전쟁에 대비한다. 그의 전쟁은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의 조국, 백성, 가족, 동료를.

한편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나라'에서 최고의 실력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신이 부여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가 전쟁을 이끄는 모습을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병사를 독려하여 사지로 뛰어든다. 그가 그의 병사들에게 한 말은 이렇다.

제군들. 수천 명 병사보다 난 자네들을 믿는다. 용맹을 떨쳐 보라. 우린 사자다! 저 해변에 뭐가 기다리는가? 영원한 승리다! 손에 넣자. 우리 것이다.

명연설을 해내고 그와 그의 병사는 영광을 쟁취한다. 그가 싸우는 동기는 무엇인가? 그는 '영원한 승리'를 원한다. 그에게 전쟁은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전쟁은 '영원'을 위한 갈구이다.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기억을 동경하는 것이다. 이는 신의 그것과 비슷하다. 신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잊히지 않기 위해 햇볕정책을 쓰기도 하고 협박과 공포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두 영웅의 첫 만남에서 나누는 대화는 이 둘의 선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헥토르: 왜 왔나?

아킬레우스: 수천 년 기억될 전쟁이니까...

헥토르: 수천 년 후면 다 먼지로 변해...

아킬레우스: 우리 이름은 남겠지...


아킬레우스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이고, 그의 이름은 '영원'을 지향한다. 헥토르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고, 그에게 그것은 생 속에서 완성되고 사라진다. 헥토르에게 삶은 살아있는 동안의 것이다. 아킬레우스에게 그것은 삶 이후에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전설이 되고자 하는 자와 전설 속에 사는 자의 싸움은 둘 모두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헥토르에게 승리하는 아킬레우스>, 페터 파울 루벤스, 1630-35

진정한 승리자는 이 전쟁에 아킬레우스를 끌어들여 헥토르와 싸우게 하고 두 나라의 전쟁을 완성시켜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게 한 또 다른 영웅일지 모른다.  그의 이름은 오디세우스이다.

-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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