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4>
차라투스트라는 고독한 자가 겪는 '사랑의 발작'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가 느끼는 호의와 연민은 가장 강력한 적으로부터 생겨납니다. 그 적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러나 네가 마주칠 수도 있는 적 가운데 가장 고약한 적은 언제나 너 자신이 될 것이다. 동굴과 숲에서 너 자신이 너를 숨어 엿보고 있으니.
차라투스트라는 가장 극복하기 힘든 적을 자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나약함, 게으름, 습관, 두려움, 기존의 가치관 등은 스스로를 나아가지 못하고 순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적은 자신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 즉 동굴과 숲에서 나 스스로가 나약해지기를 숨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독한 자여, 너 너 자신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구나! 네가 가는 길은 너와 너의 일곱 악마들이 있는 곳으로 나 있고!
너는 너 자신에게 이단자, 마녀, 예언자, 바보, 의심하는 자, 신성하지 못한 자, 그리고 악한이 될 것이다.
고독한 자가 추구하는 자기 극복과 자기 창조의 길에는 일곱 가지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단자와 마녀는 기존의 도덕과 질서를 거부하게 만들고, 예언자와 바보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존재이며, 의심하는 자는 기존의 진리를 의심하고 파괴하려 합니다. 신성하지 못한 자와 악한은 기존의 선(善)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배덕자를 의미합니다. 이 일곱 악마의 환영을 받는 순간 드디어 그는 자신의 길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일곱 악마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존재로, 이들은 기존의 질서와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독한 자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하도록 만듭니다.
너는 너 자신의 불길로 너 자신을 태워버릴 각오를 해야 하리라.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새롭게 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고독한 자여, 너는 창조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너 너의 일곱 악마로부터 신을 창조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 악마들을 만나는 순간 고독한 자는 자신 스스로를 잃을 각오를 마쳐야 합니다. 자신이 알고, 믿던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 새로운 자신은 생겨날 수 없습니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파괴와 창조의 불꽃은 일곱 악마의 도움으로 스스로를 창조의 주체로 만들게 됩니다. 가치를 창조하는 자는 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가 만드는 가치가 세계의 질서가 되고, 모든 존재는 그의 질서 안에서 재배치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태워버릴 각오를 한다는 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저녁에 죽고 일출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 베누를 떠올립니다. 불사조를 뜻하는 phoenix는 '다시 태어난 자' 혹은 '새로 태어난 아들'을 뜻하는 말로 영원한 자기 파괴와 창조를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창조하려 한다. 경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경멸할 까닭이 없었던 자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형제여, 눈물로 간청하노니 너의 고독 속으로 물러서라. 나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창조하려 하며 그리하여 파멸의 길을 가는 자를 사랑하노라.
다시 태어나는 자는 어제의 자신을 경멸해야 새로운 자신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창조가 사랑이라면, 어제에 대한 경멸 없이는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자신에 대한 사랑은 어제의 나를 경멸하여 내일의 나를 마주할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경멸을 받는 오늘의 나는 모레의 나를 꿈꾸며 행복의 소멸 속으로 사라집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장과 발전은 지금까지의 상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비판을 통한 부분적 부정과 부분적 창조는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입니다. 어제의 나를 경멸한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 성장한 나를 환영하는 것이 진정한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고 싶다면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는 의지와 태도로 새로운 자신을 창조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면서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창조하는 자신을 만나보지 못한 자는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이는 스스로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고독으로 나아가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삶은 자기 파괴를 통한 창조를 잘 보여줍니다. 고흐는 화가가 되기 전, 미술상과 성직자, 교사 등의 일을 하며 일반적인 틀에 자신을 맞추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27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스스로 고독과 가난의 길을 선택하여 '세속적' 삶에 대한사랑을 경멸했습니다. 그의 고독한 투쟁은 벨기에의 탄광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며 성직자로 지내던 1879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교구민을 돕기 위해 편안한 숙소를 양보하고 자신은 낡은 오두막의 짚 위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는 '사제직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해고되었습니다. 고흐의 창조에 대한 열정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울증에 고통받던 그는 예술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림을 그리는데 온 열정을 쏟았습니다. 1888년 고흐는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친구 고갱의 방문에 기뻐합니다. 하지만 둘은 종종 다퉜고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버릴까 봐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견디지 못한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자기 파괴적 모습을 보입니다. 그가 남긴 <붕대를 감은 귀와 파이프를 문 자화상>에서 화가는 넋이 나간 듯한 눈빛으로 파괴되어 공허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절망과 실의에 빠진 고흐는 그에게 남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별이 빛나는 밤>(1889), <사이프러스>(1889)와 같은 많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고흐는 자신을 잃는 고통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자신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어제에 대한 경멸을 통해 새로운 오늘을 맞이했고, 어제를 뛰어넘는 오늘의 예술을 완성했습니다.
나는 내 작품에 내 영혼을 걸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정신을 잃었다. - 빈센트 반 고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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