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mo ludens Jul 07. 2024

카프카의 <변신> #12

무쓸모와 구경꾼

줄거리

새로운 가정부의 등장으로 가족으로부터 점점 더 무관심의 대상이 된 그레고르는 세 신사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그레고르 치세(?)의 가족은 이제 충분하지 못한 수입을 채우기 위해 방 한 칸을 임대하는 결정을 내린다. 세 신사는 임차인이지만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내세울 줄 아는 인물들로 가족들이 자신의 영역을 점차 내어주게 된다. 가족의 중심 공간인 거실을 그들에게 내어주고 그들은 주방으로 내몰린다. 그러던 중 그레테는 세 신사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고, 이 소리에 그레고르가 세 신사의 눈에 띄게 되는데...


간섭과 통제


<이 진지한 신사들은 – 그레고르가 문틈을 통해서 확인했는데 셋 다 턱수염이 가득했다 – 자신들의 방뿐만 아니라, 이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이상 전체 살림과 부엌이 잘 정리정돈이 되었는지도 민망하게 간섭했다.>


신사들은 세입자 신세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 세입자가 소위 '갑'의 위치에 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다만 그레고르 가족의 형편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그들은 세입자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 것과 같은 이상한 상황에 처한다. 지배와 종속의 관계는 선택의 자율성이 주어지느냐로 결정된다. 세 하숙생은 자신들의 지위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머무는 방과 공용 공간인 거실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살림과 부엌의 정리정돈 상태까지 간섭한다. 그들에 대한 그레고르의 묘사는 "턱수염이 가득"한 모습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

19세기 초반과 중반까지 턱수염은 혁명의 상징이었다. 대다수의 민중들이 깨끗이 면도한 상태의 용모가 일반적으로 자리 잡던 시기에도 혁명가들은 턱수염을 포기하지 않았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오른편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쓰고 긴 총을 들고 있는 남자 역시 턱수염을 길렀다. 그의 혁명가적인 외모에 실린더라 불리는 높은 모자는 권력을 향한 의지를 의미한다. 지배와 권위에 대한 표현은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현실화된다.

또한 턱수염은 권위와 지배력을 가진 점잖은 모습으로 비치지만 실질적으로 냉혹하고 비도덕적인 문명의 가면과 실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세 신사가 그레고르와 그레테에게 보일 행동은 이러한 이중적 권력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레테에겐 호의와 관심으로 그레고르에게는 경멸과 무관심으로 대한다. 그들의 관심과 호의는 간섭과 통제를 위한 과정 혹은 부드러운 간섭과 통제의 방법론이다. 그들에게 그레고르는 간섭과 통제 영역 밖에 있는 자, 관심과 호의의 대상에서 제외된 자이다. 그들에게 그레고르는 관찰을 통한 구경의 대상일 뿐이다.


쓸모와 예술

관찰자 혹은 구경꾼은 공동체를 둘로 나눈다. 그들에게 공동체는 전체가 아니라 관찰하는 자와 관찰되는 자, 구경하는 방관자와 구경당하는 조롱의 대상으로 구분된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 1920-1996)는 <난파선과 구경꾼 (Schiffbruch mit Zuschauer, 1979)>에서 공동체를 하나의 거대한 배에 비유한다. 침몰하는 거대한 배는 한쪽으로 기울고 가라앉는 쪽은 가난한 자들이 살고 있는 영역이다. 부유한 자들의 영역은 가라앉는 배의 반대편으로 오히려 상승하여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마비상태에 빠진다. 그들은 공동체의 약한 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적자생존의 논리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약자의 죽음은 무능과 나태함의 대가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선택의 과정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의 불만은 일등칸의 관심 밖이며, 꼬리칸의 가치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착취되는 노동가능한 어린이뿐이다. 그들은 꼬리칸을 관찰하고 하층민의 삶과 절실함을 구경한다. 그들에게 하층민의 삶은 고난과 감동의 비극적 감상의 대상에 불과하다.


<필요 없는 것이나 심지어 더러운 잡동사니를 차마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가구를 가지고 왔다. 이러한 이유로 물론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리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이 넘쳐났다.>


구경거리로 전락한 그들은 쓸모없지만 버리고 싶지는 않은 것들로 취급된다. 그들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념품 정도로 여겨지는 격이다. 쓸모와 무쓸모의 경계로 구경꾼과 구경거리가 구분되는 것은 근대의 새로운 모토로 표현된다.

Form follows function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의 말로 유명한 이 문구는 조각가 호레이쇼 그리너프(Horatio Greenough, 1805-52)가 건축의 유기적 법칙과 관련하여 최초로 사용했다. 모든 형태는 기능을 잘 구현하기 위해 드러난 것이다. 또한 기능이 가장 잘 발현되도록 한 형태가 가장 '좋은'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아름답다.


<그런 다음에 그들만 남자 대화도 없어 그저 먹기만 했다. 특이하게도 그레고르에게는 다양한 모든 음식의 소리 중에서도, 그들이 음식을 씹는 소리가 가장 잘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사람은 먹기 위해서는 치아가 필요하며, 이가 없는 턱은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하는 듯했다.>


그레고르의 변해버린 신체는 정상적인 인간의 그것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문 밖에서 들리는 세 신사의 음식 씹는 소리는 그들이 가장 쓸모 있는 것으로 쓸모 있음을 주장하는 듯하다. 그들의 정상적인 치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소리로 증명한다. 마치 그들이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치아와 같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한편 그레고르에게는 더 이상 '기능적 음악'인 씹는 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무쓸모의 음악'이 필요하다


<음악에 사로잡힌 그는 과연 짐승일까? 마치 갈망하는 낯선 음식으로 가는 길이 그에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그녀의 연주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동생 그레테의 음악에 귀 기울이는 이는 그레고르 밖에 없다. 그는 그녀에게 정식 음악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 그녀의 음악은 쓸모의 세계에 속하지 않기에 '낯선 음식으로 가는 길'로 비유된다. 쓸모의 세계에 머무는 다른 모든 이들은 '무쓸모의 예술'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이 예술의 가치는 아는 이는 무쓸모 세계의 거주민인 짐승 그레고르뿐이다.


구경꾼


<신사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고 바이올린 연주보다 그레고르를 더 재미있게 하는 것 같았다. … 그들은 조금 화가 났는데 그 이유가 아버지의 행동 때문이지, 아니면 그레고르 같은 이웃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가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쓸모의 세계의 거주민에게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와 그레고르의 존재는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그레고르에 대한 아버지의 제재는 그들의 흥을 깨는 행위다. 구경꾼에게 구경거리의 상실은 실망을 불러온다. 사실 그들에게 구경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서커스의 말 타는 여인>, 루드비히 키르히너, 1913

18세기 근대 서커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에스틀리(Philip Astley, 1742-1814) 이후로 서커스는 유럽 전역에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19세기와 20세기로 이어지며 서커스는 엄청난 규모와 다양한 공연들로 채워졌고 일상적으로 볼 수 없는 구경거리들을 제공했다. 이국적 동물뿐 아니라 심지어 기괴한 모습으로 변형된 인간까지 모든 것을 구경거리로 취급하고 도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했다. 이러한 과장된 연출은 다른 지역과 문화에 대한 이해보다는 '냉소적 구경'을 부추겼다.


가정부와 세 신사의 등장은 그레고르에게 가족으로부터의 분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세 신사의 권위적이고 거만한 태도는 그레고르의 존재 자체를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리고 그의 무쓸모를 부각했다. 가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등장은 새로운 시작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한 혁명의 시작이다. 다음 시간은 혁명의 관점에서 카프카의 <변신>을 읽어보도록 한다.

이전 11화 카프카의 <변신>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