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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Jul 17. 202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특집 II

중세의 미메시스

중세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신'이다. 사회 전반으로 봤을 때 신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구조적 이행과정과 그것을 행정 체제의 개편으로 이끌어 내었기 때문에 이 변화는 시대 전반을 관통한다고 볼 수 있다. 사상적으로도 세상에 대한 이해를 '신의 섭리'로 받아들였으며 개인의 도덕적 지침과 규율도 '신의 말씀'인 성경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플라톤에서 그리스도교로

플라톤의 사상은 플로틴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기독교의 중심 철학으로 스며들었다. 플로틴의 '일자'철학과 '유출설'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그리스도교의 신화를 철학적으로 설명한 해제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절대불변하는 진리는 우리가 사는 그림자 세계의 변화무쌍한 원리에 대비된다. 이것은 이데아(idea)라고 불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이도스(eidos)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는 휠레(hyle)와 대응되는 개념으로 '형상'이라고 주로 번역된다. 휠레는 '질료'라고 쓰이고 사물은 '형상'과 '질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변화는 '질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운동에 의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중세를 통해 미술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선택했다. 앞선 중세 편에서 설명되었듯 중세의 미술가들은 신의 본질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성경의 내용을 그려내어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중세의 후반기와 르네상스의 초입을 연결하는 조토(Giotto di Bondone)는 성경의 내용을 눈앞에 재현하는 듯한 회화기법을 탄생시켰다. 이를 통해 고대그리스의 재현기술은 중세의 이야기기술과 결합되어 르네상스 미술의 토대가 된다.


Imitatio Christi (그리스도의 모방)

플라톤 철학을 그리스도교로 정착시킨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고백록>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다. 그는 젊은 시절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문을 갖고 방탕한 삶을 살았었다. 하지만 반성과 참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회귀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고백록에 따르면 플라톤이 말하는 진리에 이르는 길과 같이 종교에서의 진리에 이르는 길 역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에서 말하는 진리를 자각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어려움과 진리를 자각한 후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사회적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종교의 길에서도 똑같이 겪게 된다. 공동체에서 살아가기 위해 개인의 신념과 믿음은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칠 수도 있고 종종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들의 폐쇄적이고 고집스러운 행동, 그리고 신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개인의 도덕적 무결함을 위해 공동체의 단합을 깨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예수>, 제임스 티소, 1890년대

그렇다면 종교의 진리에 이르는 길을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삶이다. 모방을 뜻하는 imitatio에 christus의 소유격인 christi를 붙여서 <Imitatio Christi>라고 한다. 


<왜 너는 교만한가인간이여신이 너를 위해 낮아졌구나너는 아마도 낮은 사람을 본받는 것이 부끄러울 것이다그렇다면 적어도 낮은 신을 본받으라.>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하네스 복음서>, 논고 25장 16절 -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낮아진 신'은 예수를 의미한다. 예수는 신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 격이다. 이것을 Incarnation이라고 한다. 육체화된, 육체에 깃든 신이라는 의미로 신이 우리에게 스스로를 낮춰서 다가옴을 의미한다. 땅으로 내려온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신의 권능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인격으로 우리에게 그의 신성을 증명한다. 예수가 걸어온 길을 따르는 것 그것이 종교적 진리에 이르는 길, 즉 질료를 가진 우리의 육체가 형상으로 향하는 영혼의 구도를 행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외의 다른 성인들도 신의 형상이 아닌 예수의 행위를 따르는 것을 모범으로 삼기를 권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는 <종교적 완전함>이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완전한 삶에 가장 가까운 자들은 예수의 제자인 사도(apostolos)이고 이들의 삶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일차 목표인 <vita apostolica(사도적 삶>이다. 대표적인 제자인 베드로조차도 3번 예수를 부정했다. 그러한 과오를 범하고도 끝까지 믿음을 따르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반성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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