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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Jun 26. 202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14장

전통과 혁신 II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돌입하기 직전 미술은 알프스 이북과 이남으로 나뉘어 각자의 특성을 발견하고 발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시기에 전통과 혁신이 이루어지고 전성기로 진입하기 위한 기술적, 도구적 성장을 충족한다. 알프스 이북의 미술은 자신들의 미술적 성취를 더욱 치열하게 시도한다. 알프스 이남의 미술적 성취가 일부 전해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와 고딕 미술을 이어간다. 알프스 이남과 이북의 미술의 소통이 활발해지는 것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가능해졌다. 그것은 판화의 발전이다.


플랑부아양 (Flamboyant)과 수직적 양식(perpendicular Style)

알프스이북의 건축은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적 혁신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들에게 전통은 로마의 유산보다 가까운 과거인 고딕 건축이었다. 고딕 건축의 전통을 심화하여 새로움을 발견하는데 그들은 고딕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첨두아치와 장미창의 장식을 이용했다. 뾰족한 형태의 첨두아치와 둥근 장미창은 화염모양의

장식을 통해 통일성을 갖추었다.

왼쪽: 아미앵(Amiens) 대성당, 1220-69; 오른쪽: <성삼위일체 수도원>, 방돔, 15-16세기

성삼위일체 수도원의 정면부는 이전 고딕 건축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고딕 클래식 시기의 아미앵 대성당의 정면부에 비해 성삼위일체 수도원의 정면은 화려하다. 단순히 화려하다기보다는 장식이 과하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장식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불꽃이라는 의미의 'flamboyant'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장미창의 부분과 측면의 거대한 창의 트라서리(tracery) 역시 화려한 곡선이 상승하는 모양으로 치장된다. 기술적 해법을 찾고 난 이후 보이는 과도한 장식의 단계이다.

윈저성의 성조지 예배당, 14세기

한편 윈저성의 성조지 예배당의 내부는 수직성의 끝을 보여준다. 미끈한 고딕 성당의 다발주는 거침없이 지붕에까지 이른다.


회화에서의 발전

슈테판 로흐너 (Stefan Lochner, 1400-1451)

중세 국제고딕양식의...

왼쪽: <장미 수풀의 마리아>, 슈테판 로흐너, 1448; 오른쪽: <오그니산티 마돈나>, 조토 디 본도네, 1310

슈테판 로흐너는 조토가 세운 국제 고딕 양식의 전통에서 발전했다. 조토보다 자연스러워진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표정과 주변 천사들의 배치와 다양한 각도의 자세는 알프스 이북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얼마나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배경의 장미 수풀은 조토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자연물에 대해 얼마나 정교한 표현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천국의 성모>, 슈테판 로흐너, 1445

성모가 앉아있는 천국은 라틴어로 'hortens conclusus(닫힌 정원)'라는 장르로 불린다. 금남의 구역과 같은 의미로 성모의 순결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천국으로 향하는 문을 좁고 쉽게 들어갈 수 없다. 동시에 아담이 천국에서 추방당한 것은 출산과의 유사성을 나타내어 '죽음'의 시작을 알린다는 해석은 닫힌 정원이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동굴의 구조를 가진다는데서 유래한다. 


로지에 반 데 바이덴 (Rogier van der Weyden, 1399/1400-1464)

<십자가에서 내림>, 로지에 반 데 바이덴, 1435

15세기 알프스 이북 최고의 미술가 중 하나로 꼽히는 로지에 반 데 바이덴은 얀 반 에이크가 성취한 자연에 대한 정교한 묘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의복과 표정, 장신구 등에 대한 세밀한 표현은 당시 알프스 이북 사람들의 풍습을 반영한다.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는 예수와 푸른 옷의 마리에를 제외하고는 수직적 자세를 취한다. 수평적 자세를 취하며 휘어진 몸의 두 사람의 표현은 이 그림을 후원한 석궁조합을 위한 것이다. 예수와 마리아의 자세는 거의 일치한다. 축 처진 오른팔과 부축받은 왼팔, 수평으로 뻗어지는 다리는 인물들 사이를 거쳐 전체의 깊이감을 주는 여러 개의 면을 형성한다. 그림의 전면에 붉은 옷의 사도 요한, 마리아, 예수 그리고 오른편 모서리의 막달레나 마리아가 위치한다. 그 뒷부분으로 검은 옷의 클로파스의 마리아, 녹색 옷의 마리아 살로메, 붉은 옷의 니코데무스,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막달레나 마리아가 위치한다. 그 뒤로 십자가가 서있고, 가장 깊은 곳에 니코데무스의 시종(혹은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위치한다. 알프스 이남의 미술이 과학적 원근법을 통해 깊이감과 공간감을 주는 것과 다르게 좁은 공간에 인물들을 겹쳐 배치하고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여러 겹을 통해 그것에 대체했다.  

<십자가에서 내림> 디테일

인물의 감정은 표정의 세세한 차이를 통해 전달되고 눈가의 주름과 붉어진 눈시울 그리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폭발하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한다.


후고 반 데르 후스

<성모의 임종>, 후고 반 데르 후스, 1480

후고 반 데르 후스는 조토가 보여주었던 중심인물을 둘러싼 배치를 통한 공간감의 형성을 모방한다. 뒤편의 사람들과 앞의 사람들 사이에 크기가 차이가 없음은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공간감을 만들려는 것을 보여준다. 창백한 마리아를 둘러싼 12 사도의 다양한 표정과 얼굴과 몸의 방향을 통해 그림의 전체 공간을 빈틈없이 가득 채우려는 화가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


미술의 전파, 판화

판화는 미술의 정의에 대한 여러 가지 철학적 담론을 다룰 수 있는 장르다. 판화의 판이 원본인지 찍어낸 그림이 원본인지, 찍어낸 그림이 여러 장이라면 원본이 여러 개인지 등의 질문은 미술 자체의 정의를 묻는 것과도 같다. 판화는 오래된 미술의 장르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목판화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기원후 4세기부터 시작했다. 목판화가 미술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중세 후기부터다. 금속의 발달이 동반되지 않으면 세밀한 목판화는 나올 수 없다. 그리고 목판화의 정교함은 곧 등장할 동판화에 의해 의미를 잃고 만다. 동판화의 정교함은 머리카락 한 올의 두께만큼이나 세밀하기 때문이다.

왼쪽: <왕관으로 죽어가는 이를 유혹하는 악마들>, 1460년경; 오른쪽: 착한 사람의 임종, <잘 죽는 법>의 삽화, 1470년경

페스트로 많은 이들이 죽어가자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익혀야 했다.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Vanitas'와 함께 독일에서는 'ars moriendi(죽음의 기술)'이라는 장르가 유행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세기말 현상과 같이 도덕이 붕괴되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미술은 사람들에게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 세계에서의 질서를 도우려 한다. <착한 사람의 임종>과 <왕관으로 죽어가는 이를 유혹하는 악마들>에서 전체적인 구도는 죽어가는 이를 중심으로 악마와 성인 혹은 천사가 둘러싼 원근법이 거의 적용되지 않은 알프스 이북의 특징을 보인다. <착한 사람의 임종>에서 죽어가는 이의 작은 영혼이 천사에게 인도되고 있다. 이를 보증하는 성녀의 축복에 죽어가는 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이에 악마들은 "나는 화가 난다."와 같은 분노의 감정을 기괴한 표정과 함께 표현한다.

왼쪽: <예루살렘의 파괴>, 하르트만 쉐델, 목판화, 1493; 오른쪽: 쾰른, 안톤 폰 보름스, 1531

조잡한 목판화와 달리 <예루살렘의 파괴>와 쾰른 도시의 전경은 목판화가 표현할 수 있는 정밀함의 다음 단계를 보여준다. 


마르틴 숀가우어(Martin Schongauer, 1445/50-1491)

마르틴 숀가우어는 엘자스의 콜마르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이다. 그가 유명세를 얻게 된 이유는 알브레히트 뒤러 이전 알프스 이북에서 가장 중요한 판화가였기 때문이다. 뒤러는 그의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자신의 판화 기술을 갈고닦았다. 그의 별명은 'Martin Schön', 'Hübsch Martin'으로 '잘생긴, 멋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의 작품이 워낙 섬세해서 생긴 별명이다. 

<예수의 탄생>, 마르틴 숀가우어, 1470-90

가운데 그림에서 볼 수 있듯 마르틴 숀가우어는 유화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것은 동판화였다. 교차로 긁어내어 검은 벽을 연출하는 그의 작품은 판화에서도 깊은 공간감과 깊이감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기본적인 회화적 기술을 그대로 판화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유화에서 표현하는 면과 선적인 요소를 모두 선과 점적인 요소로 분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디자인(design)의 어원이 되는 'disegno(디제뇨)'는 르네상스의 중요한 미술 개념이다. 디제뇨는 사물을 관찰하는 추상화의 과정 전반이 표현으로 드러나는 일련의 미술가들의 구상과 표현 과정을 뜻한다. 삼차원의 대상을 이차원의 그림으로  그려낼 때 화가는 눈에 보이는 면과 덩어리를 점과 선으로 구별하는 인식의 과정을 겪게 된다. 반대로 미술가는 자연 현상에 숨겨진 본연의 선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디제뇨는 회화, 조각, 건축 혹은 여러 다른 미술의 총체이자 근원이다. 그것은 모든 학문의 기반이다. 이 위대한 예술을 정복한 자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그에게 주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는 세상의 모든 탑들보다 위대한 것들을 더 이상 붓과 양피지 없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 - <회화에 대한 네 가지 대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미켈란젤로뿐 아니라 조르조 바사리 역시 디제뇨를 "자연의 모든 사물들의 형상이자 이데아"라고 표현한다. 


판화는 알프스 이북에서 시작해 곧장 전유럽으로 보급된다. 알프스 이북과 이남의 미술은 프레스코화나 건축물의 조각처럼 그 장소에 (in situ) 가지 않으면 절대 경험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판화는 여러 장을 찍어내어 작품의 공적 소장을 사적 소유로의 이행을 도왔다. 이제 미술은 판화라는 대중교통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된다. 이를 통해 알프스 이북과 이남은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준비한다. 이러한 예는 이후 인상파의 등장에서도 발견된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가쓰시카 호쿠사이, 1830년경

호쿠사이의 우키요에는 일본의 도자기를 수출할 때 유럽으로 흘러들어 갔다. 유럽의 미술가들은 단순한 선으로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본의 판화에 주목했고, 기교와 화려함에 빠져있던 미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알프스 이북의 한 미술가는 마르틴 숀가우어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그를 찾아갔으나 그는 이미 죽고 없었다. 그는 그의 작품을 수집하여 마르틴 숀가우어를 독학(?)한다. 이후 베네치아에서 짧게 생활하며 이탈리아의 미술을 익히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수많은 판화 작품을 통해 그가 익혀온 알프스 이남의 미술을 접목하고 발전시킨다. 그는 위대한 알프스 이북의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다. 그는 목판화, 동판화, 유화, 스케치의 모든 회화 분야에서 걸출한 실력을 보인다. 뒤러에 대해서는 17장 <새로운 지식의 확산>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 왼쪽: <묵시록의 기사>, 목판화, 1498; 가운데: <아담과 에바>, 동판화, 1504; 오른쪽: <멜랑콜리아>, 동판화,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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