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미메시스
고대 그리스의 미메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론에 따른 "자연의 모방"을 의미하고 중세의 미메시스는 <Imitatio Christi(그리스도의 모방)>과 <Vita apostolica(사도적 삶)>을 의미한다. 각 시대의 미메시스는 그 시대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플라톤이 강하게 비판했던 모방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poetik)>에서 "모방(mimesis)"이 모든 시의 특징이며 인간의 본성임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생산적 측면에서도 수용적 측면에서도 모방의 본성을 가진다. 생산에 있어서의 모방은 학습의 기본방식이며 수용에서의 모방은 예술적 창조에 있어서 이미 계획된 것으로, 창작자가 의도한 감정이 공유되고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교육적 효과로 비참함(eleos)과 공포(phobos)를 통해 영혼을 정화하는 기능(katharsis, 카타르시스)을 수행한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적 모방론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재발견되고 발전된다.
한편 기원전 1세기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우스 (Dionúsios Alexándrou Halikarnasseús)는 <모방에 관하여>라는 책을 남긴다. 여기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른 미메시스 개념을 설명한다.
문학적 방법에 있어 디오니시우스적 모방은 "자연의 모방"이 아닌 "다른 작가들의 모방"을 의미했다. 그는 수사학적 측면에서 모방론을 다루고 있는데 모방 문학적 접근은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다"는 사고에 기반한다. 따라서 디오니시우스의 모방론은 독창적 창조가 아닌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이전 세대의 문학을 점진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을 이상적 목표로 삼는다. 문학에서의 역사적 진보의 관점은 르네상스 최고의 지성 에라스뮈스가 1512년 출간한 <De copia rerum(풍부한 스타일에 대해)>에서 발견된다. 그는 여기서 문학과 학문의 다양성을 높은 가치로 놓고 그 방법론을 논한다. 이러한 방식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콰트로첸토(Quattrocento) 예술가들의 기법과 관점은 친퀘첸토(Cinquecento) 예술가들의 학습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증법적 방식으로 예술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콰트로첸토 예술가들의 예술관은 자연을 관찰하고 재현하는 기법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과 건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눈에 보이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하나의 틀을 완성하고자 했으며 브루넬레스키를 필두로 한 이들 예술가들은 투시도법, 단축법 등을 개발하여 그들의 목적에 다가섰다. 이어지는 친퀘첸토의 예술가들은 이들의 업적을 이어받고 보다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해 '자연스러움보다 더욱 자연스러운' 기하학적 조화와 비례를 창조해 냈다. 르네상스와 이후 이어지는 매너리즘, 바로크 예술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잇는 역사적 역할에 그들의 업적을 인정한다. 예술가들은 이전 세대로부터 학습하고, 빈틈을 찾아 메우고,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예술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들의 모방의 대상은 자연 그 자체였던 고대 그리스, 신이었던 중세와 달리 인간이 남긴 것과 인간이 바라본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계몽주의에서는 백과전서파(encyclopedia)의 달랑베르(d'Alembert)가 지식의 세 가지 하위 영역으로 역사(memoria), 과학 및 철학(ratio), 상상력(imaginatio)으로 구분하여 기억과 이성 사이의 빈 곳을 예술의 역할로 규정했다. 또한 칸트는 <판단력 비판(Urteilskritik)>에서 예술가의 창조적 역량을 법칙을 만들고 그 법칙을 스스로 따르는 존재라고 말했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모방의 대상은 규정불가능한 자연과 신이 아닌 자연과 신이 행하는 규칙을 부여하는 힘이다. 자연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를 이루어내듯 예술은 기존 예술로부터의 탈선을 감행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선택에 의해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