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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Jun 17. 2023

달의 뒷모습

김연수, <진주의 결말>을 읽고


 한 명의 인간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중 어떤 생각에 줄을 긋고, 어떤 이야기를 엮어갈지는 자기 몫으로 주어진 선택의 문제다. 줄을 긋지 않고 남긴 그 선택의 방향과 속도가 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든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속 단편 <진주의 결말>에서 주인공 유진주는 타인이 줄을 그어 지운 생각과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고, 또 상대의 무엇을 이해하는 것인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유진주는 아버지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패륜의 굴레가 씌워진 유진주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요구하는 범죄 시사프로그램의 재료가 되기에 마침맞았다. 프로그램의 자문을 맡은 범죄심리학자는 열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성장 환경, 인간의 도리를 패대기친 말들 위로 흉하게 줄이 그어진 일기장,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오랜 기간 돌보면서도 어쩐 일인지 갈수록 밝은 모습이었다는 이웃들의 증언, 아버지가 사망했는데 응급실에서 태연히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한 태도를 토대로 유진주를 ‘수동적인 희생자’로 분석한다.      


 아버지로부터 억눌려왔던 감정이 어느 순간 폭발한 것이라는, 한 코로 실패 없이 짠 담요 같은 이야기에서 고유한 유진주는 사라지고 범주화된 하나의 인물형으로 뭉뚱그려진 유진주만 남았다. 방송을 본 진주는 심리학자에게 메일을 보내 선생님이 말한 마음이 분명 제 마음일 텐데 어째서인지 제 마음 같지 않다는 말을 전한다. 빈 코 없이 직조된 이야기에서 얼크러진 실은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소설 속 범죄심리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의 상처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은 도마의 후예’처럼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만 믿었다. 상황과 증거라는 타인이 남긴 흔적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추론한다. 인간의 진심 대신 현상의 진실을 지향하는 그의 태도는 달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는 우리가 매일 변하는 달의 그림자만으로 달의 모양을 짐작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할 때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이라고 유진주는 말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각자의 렌즈가 끼워져 있다. 카메라 필터처럼 자기가 선택한 필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틈입과도 같다. 이해한다는 알량한 말로 느닷없이 타인의 이야기에 끼어들어 등짐을 진 채 상대의 결말을 동강내는 것이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진주의 머릿속에서는 가까이 가기 두려운 흉물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감로수처럼 흘러넘치는 끔찍한 생각들을 공책에 받아 적었을 때 진주를 이해해준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아빠는 진주에게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지만 그 생각들이 너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들에 줄을 그어 지울 수 있다고, 어떤 생각을 지우고 어떤 생각을 남길지는 진주의 선택이라고 알려주었다. 나쁜 생각을 지우고, 가장 좋은 생각을 남긴 그 선택이 진주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치매에 걸려 자신의 생각에 줄을 그을 수 없게 된 아버지를 마주한 현실에서 진주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한 명의 인간이 내보이는 수많은 이야기는 그의 선택에 타인의 눈이 더해져 지어진다. 진주는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한 존재가 된 아빠를 자신이 만든 이야기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이 지난한 이야기의 결말을 바랐지만, 아빠가 죽어야만 끝나는 이야기에서 진주가 선택할 수 있는 결말은 없었다.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p.73)     


 범죄심리학자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들려준 위의 달 이야기는 광막한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진주에게 볕뉘 같았다. 진창에 빠졌어도 자신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그쪽으로 한 발을 뺄 수 있다는. 그럼에도 어느 날 갑자기 사고처럼 끝나버린 아버지의 이야기는 진주가 이해할 수 없는 낙망이었다. 그리하여 진주는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치매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쁜 생각에 줄을 긋지 않아 어느 날 느닷없이 재앙이 일어나게 하는 신을, ‘치매에 걸려 우연히 떠오른 생각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믿는 아빠의 마음을,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사전 경고도 없이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처럼 살아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에 불을 질렀다. 달까지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가는 것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이해만 있었던 이 행위로 진주는 간명한 자유를 얻었다. 그것은 모든 이야기로부터의 자유였다.     


 밤 산책을 하는 여러 날 동안 천천히 변해가는 달을 마주친다. 잘 다듬은 손톱 같은 초승달이 점점 차올라 이지러진 미완성의 원이 되어 다가온다. 달은 지구의 둘레를 돌기 때문에 태양 빛을 반사하는 부분이 매일 달라진다. 달의 공전은 마치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같이 매일 달의 모습을 바꾼다. 달의 그림자가 달라지는 것이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게 아닌 것처럼, 원형 그대로의 달이 존재하듯 겉모양이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는 원형의 진주가 있다. 진주의 결말은 진주가 선택한 방향대로 흘러갈 것이다. 달의 이면처럼 우리가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진주가 줄을 긋지 않은 생각들은 올올이 엮여 고유한 진주의 이야기로 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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