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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Jul 18. 2023

노란 무을의 노래

수다사 은행나무

  십여 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이방의 도시, 구미. ‘구미에는 가볼 만한 곳이 없다’라는 생각이 이 도시의 이방인들 머릿속에는 공기처럼 부유한다. 몇 년 전 가을, 구미에서 갈 만한 은행나무 명소를 찾던 중 검색 끝에 어렵게 ‘수다사’의 이름을 알게 됐다. 춤추는 새, 무을. 생경하지만 언뜻 세련된 구석이 물든 이름의 마을에는 25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품은 천년의 사찰이 고요하게 숨 쉬고 있다.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춤추는 새의 모양을 닮은 이 마을의 초입에는 키 작은 집들 사이에 무릎을 낮춘 파출소가 마치 한 가족처럼 자리잡고 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다 보면 마당에 둘레가 너른 나무를 자식처럼 품은 상가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어느 집의 자손이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현수막이 나무에 상장같이 걸린 마을. 동네의 사정이 라디오 사연처럼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마을. 어린 날 추석에 찾아가던 외갓집 냄새가 나는 곳. 온기 어린 시골의 정취가 풍기는 이곳은 ‘찐’ 시골이다.      


 마을의 시작에는 울창한 연악산의 풍광을 반영하는 ‘무을저수지’가 있다. 내리쬐는 햇빛에 반짝이는 저수지를 뒤로하고 과수원을 지나면 키 큰 은행나무들 뒤로 소담하게 자리잡은 수다사를 만날 수 있다. 신라 문성왕 때 진감국사 혜소가 창건한 이 절은 연악산 봉우리에 하얀 연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연화사’로 불리었다. 화재와 수해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지만, 조선 선조 때 재건되면서 ‘수다사(水多寺)’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관음보살의 감로법수(甘露法水)가 흐르는 절’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처럼 천년의 시간 동안 모든 중생의 고통과 병고를 어루만져주는 구세수(救世水)의 역할을 해왔다.      


 임진왜란 당시에 일 만여 명의 의승이 이곳 수다사에 모여 의국법회를 개설하였다. 선산 부사 정경달과 사명대사는 수다사를 거점으로 의승과 의병을 집결시켜 왜적들이 한양으로 가지 못하게 길을 막았다. 조선 영조 때 수다사의 승려 정재진이 전수한 가락은 이후 이군선 상쇠가 집대성하여 현재의 ‘무을농악’으로 이어졌다. 수다사 경내에 세워진 무을풍물유래비가 보여주듯 수다사에서 시작된 풍물은 농번기 백성들의 시름을 가락과 놀이로 달래주었다. 시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생을 사른 봉률 스님은 1936년 수다사의 주지를 맡은 후에도 광복에 대한 불꽃을 꺼트리지 않았다. 


 오늘날 수다사는 가을의 한가운데에 들어설 무렵 절의 경내에서 ‘수다사 무영문학제’를 개최한다. 노란 은행나무 아래 무을농악이 식전 행사로 치러지고 시와 음악이 감로수처럼 넘쳐흐른다. 시인이기도 한 주지 법매 스님은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려 코로나19로 시름 중인 사람들을 위로하고,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며 시대와 조우하고 있다.     

   

 수다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된 은행나무가 영험한 수호신처럼 뿌리내리고 있다. 가을이 그득하게 들어찬 때 수다사 대웅전의 밑 마당은 온통 노란색이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에는 노란 은행잎이 은하수처럼 박혀 있다. 노란 은하수 사이 얼비치는 파란 하늘이 찬연하다. 소슬한 가을바람에 연신 노란 비를 흩뿌리는 나무의 모습이 손주들에게 쌀 튀밥을 거푸 내어주는 할머니의 얼굴 같다. 

 키 큰 은행나무 아래에서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수런거린다. 마실 나온 할머니들이 대웅전과 아래 마당을 가르는 돌담 뒤에 나란히 앉아 은행잎 사이로 비치는 가을 볕뉘에 몸을 쬔다. 두 살배기 아기는 손에 은행나무잎을 꼭 쥐고 카펫처럼 깔린 은행잎 위를 아장아장 거닌다. 주인과 산책 나온 강아지는 눈을 홉뜨고 노란 은행잎 비를 눈인 양 맞으며 노닌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들은 책갈피에 단풍을 끼우듯 서로의 사진을 찍으며 가족의 추억을 그러모은다. 


 무해한 풍경들이 전하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환희롭다. 천년고찰 수다사는 그 이름처럼 시대마다 사람들을 올올이 품어왔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운집하여 나라의 안전과 평온을 희구했다. 농사일의 고단함을 가락과 놀이로 치환하여 백성들의 흥취를 끌어올렸다. 오늘날 도심에서 만끽하기 어려운 가을 일상의 정취를 화려한 색감을 머금은 산사의 고아함으로 채워주었다.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고통을 없게 하려는 불교의 지극한 사랑의 마음, 자비. 수다사는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중생과 하나 되는 자비를 베풀어왔다.     


 천년의 세월 동안 곡진히 자리를 지키며 생몰하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품은 곳. 시간과 사람이 녹진하게 자물리는 곳. ‘구세수’로서 수다사가 쌓은 시간의 지층에 스며든 사람들을, 앞으로도 이어질 이 시간의 더께를 수다사의 은행나무는 깊게 내린 단단한 뿌리로 짊어질 것이다. 날아가는 새도 춤을 추고 쉬어가는 마을, ‘춤새마을’ 무을이 부르는 곡진한 가을의 노래. 가을의 안온함을 오롯이 담아낸 무을의 노래에 신산한 생의 부침은 날려 보내고 한 자락 춤추며 쉬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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