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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것들을 위하여

by 임반짝 Apr 01. 2025

 소파에서 벽까지의 거리가 2m가 채 되지 않는 엄마 집 거실에 85인치 TV가 들어섰다. 혼자 사는 좁은 집에 85인치 TV가 웬 말이냐는 나와 동생의 타박에도 엄마는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았다.

 “눈도 잘 안 보이는데 작은 테레비로 보기 싫다.”

육십여 년을 쓴 엄마의 낡은 눈은 신문물을 원한다. 낡은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부조화하다.     


 엄마 집의 장승 같은 새 TV로 우리가 함께 본 것은 낡은 것이었다. 무려 15년 전에 치러진 나의 결혼식 영상. DVD에 쓰인 ‘2010’이라는 숫자가 암호처럼 와 닿았다. ‘비밀의 문을 여시겠습니까? 문을 통과한 후에는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비밀번호는 20101225’. 최신 TV 옆에 유물처럼 덩그러니 자리 잡은 DVD 플레이어에 영상을 재생시키자 85인치 화면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대형 화면을 가득 메운 ‘옛날’은 새것의 해상도를 따라가지 못해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처럼 지지직거렸다. 영상 속 사람들은 저마다 훌쩍 나이를 거슬러 올라갔다. 2010년 안에 박제된 그들은 지금보다 젊고 싱싱했고, 또 살아있었다. 50세의 엄마가 팔딱였고, 54세의 아빠가 살아 움직였다. 지금 내 키를 훌쩍 넘긴 조카는 동그란 바가지 머리를 하고 3등신의 몸으로 제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고, 몇 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회사 동료가 웃으며 남편과 손을 맞잡고 있었다. AI로 구현해 낸 그리움의 세계처럼 어쩐지 증강현실 속을 걷는 것 같았다.          


 요즘 시대에 결혼은 낡은 것으로 치부된다. 먹고사는 일이 숙제여서도 그렇겠지만, 결혼 자체가 낡아빠진 제도일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등록법으로 바뀔 때도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호주제는 집의 주인인 가장이 사망하면 여성의 호적이 아들 밑으로 들어가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라는 것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여성이 해방 후 호주제 폐지를 위해 한평생을 보내다 삶을 마감하였음에도,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21세기를 살아가던 나는 그것에 조금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원가족을 벗어나 새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호적이든 가족관계등록부든 아빠의 등에서 남편의 등으로 옮겨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시대착오적인 제도 속에 안착하고 싶었다. 그 안으로 안전하게 들어가서 착 달라붙고 싶었다. 원가정에서 분리되어 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오래도록 꿈꿨다.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을 치르고 일주일의 신혼여행을 보낸 뒤 한국으로 오니 오랜 소망대로 돌아가야 할 ‘내 집’과 한 해가 나란히 바뀌어 있었다. 태어난 후로 주욱 함께 살아왔던 엄마와 아빠의 집이 아니라 나와 남편의 집으로, 2011년으로. 그해 그 집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매일 보지 않아도 되었고, 더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알지 않아도 되었다.      


 누구보다 그 제도 안에 들어가고 싶었음에도 ‘혼인신고는 살아 보고 천천히 하는 게 유행'이라는 실없는 소리를 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은 ‘가족 수당 2만 원’에 일단락됐다. 나와 남편은 회사로부터 하루빨리 가족 수당을 챙겨 받기 위해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구미시 옥계동은 어째서인지 산동면사무소에서 혼인신고를 해야 했다. 면사무소는 산을 깎아 휑한 벌판 위에 지은 새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눈앞으로 소가 지나갈 듯한 풍경이었다. 새것과 낡은 것이 한 행정구역 안에 묶여 있었다. 혼인신고서를 받아 든 나와 남편에게 면사무소 직원은 실제로 같이 산 날을 적으라고 했다. “실제로 같이 산 날? 결혼식 날짜로 신고하는 거 아닌가? 실제로 같이 살기 시작한 날이라면 신혼여행 다녀와서 이 집으로 들어온 날인가?” 공무원의 사무적인 한 마디에 나와 남편의 혼인신고일은 엉뚱하게 2011년 1월 7일이 되었다. 그날부터 그와 나의 멍청한 소꿉놀이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결혼생활은 소꿉놀이가 아니었다. 바뀐 가족관계등록부와 동시에 태어난 아기는 나와 남편으로 하여금 독립 개체로서 의무를 강요했다. 아빠의 등에서 남편의 등으로 옮겨 업히는, 순진해 빠진 태도로 결혼과 출산을 한 나에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날의 숙제가 도착해 있었다. 개념 풀이가 끝나면 유형 연습, 곧바로 심화 문제까지 쉴 틈 없이 밀려왔다. 문제의 의미에 대한 고찰 없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날의 숙제를 꾸역꾸역 해치웠다. 홀로 선다는 다른 선택지를 몰랐다는 게 나의 과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나? 한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 스스로 항변해 보자면, 지지고 볶아도 가족으로 묶여 사는 낡아빠진 관습밖에 본 게 없는데 말이다. 잘못 끼워진 입학이었을지라도 숙제를 꼬박꼬박 제출해 낸 한 시절의 성적은 숙제 점수는 A가 아니더라도 출석 점수는 A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결혼식 DVD는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지직거리면서도 이 세계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지우지 않았다. 아빠도, 남편의 할머니도,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그 안에서는 모두 살아 움직였다. 그러나 현실 속 DVD가 늙어갈수록 그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주름을 늘리고, 머리카락을 잃고, 살을 얻고, 또 영영 살을 잃었다. 어쩌면 늙는다는 것은 결혼식 단체 사진에서 한 명씩 한 명씩 까맣게 지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낡고 닳고 마모되다가 결국은 지워지는 것. 나 또한 종내에는 누군가의 결혼사진에서 지워질 것이다.      

 얼마 전 열 살 어린 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축하를 전하는 내게 사촌 동생은 “와줘서 고마워요, 누나.”라고 했다. 한 시절 보지 못한 동안에 차마 옛날처럼 반말이 나오지 않는 낡은 외관이 되었나 보다. 동생의 결혼식 영상은 파일로 보관될 것이다. 쉽게 전송되고, 쉽게 재생되는 그 파일 속에서 나는 지금보다 더 낡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고, ‘생활동반자등록부’에도 나와 남편의 ‘생활동반일’은 2011년 1월 7일로 기록되겠지만, 낡은 우리는 새로운 제도 안에서 또 한 시절을 살아낼 것이다. 숙제하듯 열심히. 성적은 장담할 수 없어도 출석 점수는 A를 받기 위하여. 숙제는 다 끝내기 전까지는 마음 한편에 걸려서 놀아도 노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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