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식탁에는 밭에서 따온 상추, 고추, 가지나물, 호박잎이 놓여있다. 도장을 찍듯 된장에 고추를 꾹 찍어 앞니로 깨물어 먹는다. 경쾌하게 울리는 아삭한 소리. 싱그러운 채소들을 입 안 한가득 넣으니 여름의 향기가 온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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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모종과 씨를 심어야 할 때 비가 오지 않았다.
4-5월 가뭄과 함께 땅은 메말랐고, 땅에 물을 주며 모종을 다독였다. 보이지 않아도 땅 속 모종의 뿌리가 마치 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꾹 잡아 버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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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무심하시지.
몇 주간 뜨거운 햇빛이 밭을 점령해버렸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간신히 햇빛에서 살아남은 상추 몇 개들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 밥상이 꽤나 푸짐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선풍기를 앞에 가져다 놓고 야들야들한 상추 잎을 잘 펼쳐서 큰 고기 한점. 여기에 마늘, 된장, 파절이까지 한 입에 집어넣는다. 여름 최고의 가수 매미와 우걱우걱 씹는 입 안의 합주는 참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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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월에는 비가 꽤나 내렸다. 메말랐던 땅도 물을 꿀꺽꿀꺽 마시더니 어느새 축축해졌고 나는 여기에 고추와 가지, 고구마를 심었다. 잘 자라길 기원하면서 여름 특유의 주황빛 노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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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지냈을 때쯤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얼른 밭으로 뛰어갔다. 어느새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와 가지.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처럼 정말 몰라보게 컸다.
신나게 비닐봉지를 들고 하나씩 딴다. 할머니에게 이렇게 따는 게 맞는지 연신 묻다 보니 비닐봉지는 꽉 차다 못해 넘칠지경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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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오늘의 수확물을 흐르는 물에 시원하게 씻겼다. 고기 굽는 소리는 비가 내리는 소리랑 참 닮았다. 상추를 씻으며 참고 있었던 더위를 마침 이 소리가 없애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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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식탁은 더욱 푸짐하다. 무엇을 싸 먹을지 이리저리 고민하며 가족끼리 자신의 쌈이 더 크다며, 더 맛있다며 자랑을 해본다. 입안에 울려 퍼지는 아삭한 소리와 상추 잎에 매달린 물방울 터는 소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된장찌개 퍼먹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