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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Feb 01. 2023

내 삶은 무슨 색일까

무지갯빛으로 채워질 그날까지

일본에서 취업을 성공한 언니는 얼마 전 이사를 마쳤다. 도쿄. 세계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번화가이자 성공한 이들로 가득한 도시. 기댈 곳 하나 없는 타국에서 그들의 생활에 적응해 열심히 살아가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존경스럽다. 나에게 언니와 똑같은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언니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묵묵히 뒤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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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성격에 오글거리는 걸 특히 싫어하는 나는 언니의 보고 싶다는 말이 가끔은 어색하다. 한때 유학을 꿈꾼 나로서, 언니만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준 부모님께 원망도 가득했다. 그래서 언니가 "가족들 보고 싶다. 한국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넌지시 던질 때면 못된 심보로 자기가 원해서 간 유학인데 왜 저렇게 힘들어하나 마음속으로 툴툴됐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가족, 친구 하나 없는 무인도에 갇힌 거나 마찬가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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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고군분투할 언니의 삶을 그려보면 분명 빨간색처럼 열정적이게 공부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새벽만 되면 한국에 있을 가족들을 그리워하면서 강렬한 빨간색은 점점 뿌연 회색으로 바뀌어갔겠지. 따뜻한 가족들 품에서 밥을 먹고 심심하면 엄마한테 괜히 칭얼거렸던 나는 분명 분홍빛의 삶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졸업이 다가온 지금은 취업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 우울한 파란색이 낄 때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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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빠, 엄마의 삶은 무슨 색일까.

어렸을 때 결혼해서 그저 자식새끼 잘 키우자는 신념하나로 경주마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살아왔을 것이다. 쥐방울 만한 딸 둘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각성했을 것이다. 부족함 없이 길러주겠다고. 그렇게 칡흙 같이 어둡고 힘들었던 생활이 지나고 우리 자매는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자랐다. 띠동갑 차이나는 귀여운 남동생도 생겼고 부모님의 삶은 보라색에서 남색, 더 나아가 파란색, 노란색까지 칠해졌을 것이다. 얼른 주황색에서 빨간색까지 색칠하실 수 있도록 색연필을 쥐어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효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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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에 색깔을 입히고 있다. 지금 내가 고른 색연필의 색이 비록 어둡고 차갑더라도 완성을 위한 밑바탕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과 같은 밝은 색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더라도 한 줄이라도 그어지면 분명 무지개는 완성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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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는 밑바탕에 놓여있다. 초록색 색연필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괜스레 힐끔 쳐다보지만 다시 내 도화지로 돌아와 색연필을 놓지 않는다. 칠하고 또 칠하다 보면 나에게 초록색 색연필을 쥐어줄 사람이 나타나겠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도화지의 반을 채우다 보면 이제는 빨간색을 칠하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비 온 뒤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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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하다. 그래서 더 강해질 수 있다.

나는 부족하다. 그래서 더 채울 수 있다.

나는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1일 1행의 기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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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삶이 다채로워질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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